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렇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날 밤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를 보면서 둘 사이에 흐르던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 엄마는 살아 계셨을 때 윤기나는 내 머리카락을 빗겨 주고,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내 팔에 골고루 발라 주고,나를 포근하게 감싼 채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그래서 다른 엄마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때 받은 넉넉한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사탕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9쪽
오하이오에서는,항상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숙제 같은 신세였던 그 곳에서는 먹는 일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내가 잠깐씩 지냈던 집들은 하나같이 음식에 대해 몹시 까다로웠고,내가 먹을 음식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랬다.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쨌든 나는 어느 단추를 눌러야 컵 속에 먹을 것이 떨어질지 몰라 허둥대는 실험실 속의 생쥐가 된 심정이었다. 우리에 갇힌 채 먹이를 구걸하는 생쥐. 바로 그런 심정이었다.-14쪽
클리터스가 왜 나를 자기 집에 데려오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클리터스네 부모님 때문인 줄만 알았다. 자기 부모님이 부끄러워서 내게 보여 주기 싫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상냥한 두 분을 만나고 보니,클리터스는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바로 나였다. 클리터스는 나라는 아이를,쌀쌀맞은 내 태도를 부끄러워했고, 자신의 특이한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부모님에게 보여 드리기 싫었던 것이다. 자기를 벌레 보듯 하는 나를 차마 보여 드릴 수 없었던 것이다.-88쪽
한때는 왜 하느님이 너를 이제야 주셨을까 의아해하기도 했지. 왜 이렇게 다 늙어서야 너를 만났을까? 나는 집 안이 좁을 만큼 뚱뚱한데다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고,아저씨는 해골처럼 삐쩍 마르고 관절염까지 앓고 있으니 말이야. 3,40년 전에 너를 만났다면 쉽게 해줄 수 있었던 일들을 이제는 해주지 못하잖니. 하지만 그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니, 어느 날 답이 떠오르더구나. 하느님은 우리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길 기다리신 거야. 아저씨와 내가 젊고 튼튼했으면 넌 아마도 네가 우리한테 얼마나 필요한 아이인지 깨닫지 못했을 테지. 넌 우리가 너 없이도 잘살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가 늙어서 너한테 많이 의지하고, 그런 우리를 보면서 너도 마음 편하게 우리한테 의지할 수 있게 해주신 거야. 우리는 모두 가족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었어.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꼭 붙잡고 하나가 되었지. 그렇게 단순한 거였단다.-124쪽
일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부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부재인 동시에 한 공간 속에서 그와 함께 있었던 '나'의 부재를 뜻한다. 곧 그 존재의 상실과 더불어 '나'의 상실이 초래되는 셈이다. 그 상실과 부재의 공간을 메우고, 살아남고, 살아가는 것은 이제 살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는 부재와 상실의 아픔과 화해해야 한다. 작가는 그 화해의 열쇠를 '사랑'에서 찾는다.-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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