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분명한 차이라면 구제금융 상여금은 납세자에게서 나왔고, 잘나가던 시절에 받은 상여금은 회사 수익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분노가 상여금이 부당하게 지급되었다는 확신에서 나왔다면, 상여금의 출처는 도덕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들어 있다. 상여금이 납세자에게서 나오는 이유는 회사가 망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불만의 핵심이다. 미국인이 사여금과 구제 금융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탐욕을 포상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실패를 포상했다는 사실이다.
-29쪽
사람들이 실패에 지급된 상여금에 분노하자 최고경영자들은 금융 수익은 전적으로 자기들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통제 불능의 힘에도 좌우된다고 주장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잘나갈 때 지나치게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행위에도 얼마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냉전종식, 무역과 자본시장의 국제화, 개인용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 그 외에 수많은 요인이 1990년대와 21세기 초 금융 산업 성공에 기여하지 않았던가.
-32쪽
아이를 출산하는 행위와 전쟁을 수행하는 행위만큼이나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행위도 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인도의 대리 출산과 앤드루 카네기가 남북전쟁에서 자기 대신 싸울 군인을 고용한 사례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생각하다 보면, 정의의 개념을 서로 다르게 규정하게 하는 두 가지 질문에 직면한다. 자유시장에서 우리의 선택은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상에는 시장이 존중하지 않는,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과연 존재할까?
-143쪽
소수집단우대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정책의 요지가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돕는 것이라면, 인종이 아니라 계층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종별 우대정책의 목적이 노예제와 인종차별정책이라는 역사적 부당함을 보상하려는 것이라면, 그 부당 행위에 가담하지도 않은 홉우드 같은 사람에게서 보상을 끌어내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소수집단우대정책을 지지하는 보상 논리가 이 반박에 답할 수 있을까? 이는 집단적 책임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달렸다. 우리는 과거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보상할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도덕적 의무가 어떻게 생기는지부터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 우리는 개인의 의무만 다하면 되는가, 아니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거 역사에도 책임을 느껴야 하는가? -239쪽
모든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찬양하는 시민권을 누리지는 못했다. 여성은 자격이 없었고 노예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여성과 노예의 본성은 시민이 되기에 적절치 않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봐도 부당한 일이다. 그런데 이 부당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주장을 한 뒤로도 2000년 이상 지속되었다. 미국에서도 노예제는 1865년까지 폐지되지 않았고, 여성은 1920년에야 비로소 투표권을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당함이 끈질기게 이어졌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부당함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용서되지는 않는다.
-280쪽
애국심은 논란이 많은 도덕 감정이다. 이를 반박의 여지가 없는 미덕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각 없는 복종, 국가 우ㅜ얼주의 발상, 전쟁의 근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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