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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Silenc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작품에 대한 충격은 이미 소설을 읽으면서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명백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두 해 전에 넘치게 울었던 소설은, 다시 영화를 통해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눈물을 쏟게 만듭니다. 이 아이들이 당한 무참한 폭력 앞에 완충제 따위는 없었던 것입니다.
무진의 자애 학원에 새로운 미술교사로 부임하게 된 강인호는 걸음이 무겁습니다. 사별한 아내가 남기고 간 아픈 딸 아이를 노모께 맡기고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그의 새 직장에서는 당당하게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보이며 '학교발전기금'이란 명목으로 5천 만원을 요구합니다. 그나마 그의 은사이신 교수님 소개 덕분에 많이 봐준 거라나요. 노모는 전세금을 빼서 아들의 통장에 돈을 부쳐줍니다. 전세금을 빼면 어쩌냐고 목소리를 높여보지만, 인호 역시 어머니의 선택을 전혀 짐작 못한 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도 그 돈이 뇌물인 건 공공연히 아는 사실, 그래도 수화까지 배워서 청각장애인 학교에 온 것을 보면 강인호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 학교에는 10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치고도 수화 한마디 못하는 교사들이 있었거든요.
부임 첫날부터 인호는 학교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낍니다. 퇴근 무렵 여자 화장실에서 울려퍼진 비명에 가까운 소리, 과하게 폭력적인 동료교사, 그리고 멍 투성이의 아이들과 그들의 겁에 질린 눈동자가 평범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설마하니 이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 거라고 감히 짐작하지 못합니다.
인호의 미술 시간. 지체 장애와 청각장애를 함께 겪고 있는 유리는 식탐도 많고, 해맑게 잘 웃기도 하는 아이입니다. 짝꿍 연두가 학교에 나오지 못해서 선생님과 짝이 되어 그림을 그리던 날, 유리가 보여준 해맑은 미소는 참 시리도록 아팠습니다. 이렇게 맑고 고운 아이들의 미소를, 대체 누가 무슨 자격으로 빼앗는 것일까요.
인호는 오래지 않아 이 학교의 쌍둥이 형제인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박보현 교사가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휘둘렀음을 알게 됩니다. 그가 부임해 오던 첫 날 열차 사고로 죽은 아이 역시 그 피해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건은 어마어마하게 커졌고, 그들이 구성해 온 권력의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한지 인호와 인권운동가 서유진은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그 거대한 힘 앞에서 이들의 힘은 지극히 작아 보이기만 합니다. 게다가 인호는 가난한 가장입니다. 노모와 어리고 병든 딸, 게다가 전세금까지 쏟아부어서 얻은 이 자리였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세상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몰라서 입 다물고 사는 건 아닌 거라고, 모난 돌이 정 맞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그쳐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지점에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인호도 몹시 흔들립니다. 그의 갈등이 충분히 이해가 되고, 그랬기에 더더욱 아팠습니다. 그건 인호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그런 시험 앞에 무수히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장렬하게 지고는 합니다. 애석하게도...
소설을 이미 읽었기 때문에 인호의 선택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고 있었음에도, 방황하고 갈등하는 인호를 두 주먹 꼭 쥐고 응원했습니다. 그건 인호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보내는 응원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연기를 참 잘해 주었습니다. 연기 후유증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될 만큼 리얼했다고 봅니다. 그랬기에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아 마땅한 영화이지만, 어른들도 부끄럽고 참혹한 이 영화를 청소년들에게 감히 권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 아이들이 이런 영화를 소화할 때가 되면 그때는 실화였던 이 이야기가 그저 과거의 사건일 뿐이기만 했으면 합니다. 더는 이런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간절히 꿈꿔봅니다.
현실 속의 인물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고 심지어 버젓이 학교로 돌아가 여전히 이 아이들과 함께 있습니다. 겨우 벙어리 아이들 때문에 검사 앞길을 막을 수 있겠냐는 현직 검사의 말이 공지영 작가로부터 이 이야기를 세상으로 꺼내게 만드는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지요. 영화에서도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도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이 사건을 계기로 나도 보호받아 마땅한 소중한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아이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당연한 인권을, 이렇게 비참한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나서야 깨달았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그런 세상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에 분노와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낍니다. 민수의 할머니가 받은 합의금은 민수의 할머니가 이 사회가 부끄러워해야 할 몫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그런 모욕과 수모를 당하지 않게, 그런 불의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는 거지요.
친구 하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불편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랬냐고 하니 공지영 작가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좀 더 나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회적 파장만 일으켜놓고 뒤로 빠졌다나요.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일을 충분히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 효과가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지 특정 인물이 대표해서 지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요.
불의한 일을 바로잡고자 저렇게 앞장 서서 뛰어다니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에겐 늘 경외감을 느낍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차마 비난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나의 가족이, 내 친구가, 내 이웃이, 혹은 누군가가 저렇게 앞장 서서 바위에 계란이라도 던지려고 한다면, 기꺼이 응원해 주기를 소망합니다. 바위를 뚫지는 못할지라도, 그 바위에 침이라도 뱉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있는 그 앞선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무책임한 비난 뒤에 숨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그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해서 미리 포기하지 말고, 이미 충분히 더럽다고 해서 그 더러운 세상에 검은 점 하나를 더 추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이 분노와 절망의 도가니가 아니라, 기쁨과 감격의 도가니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우리가 같이 만드는 겁니다.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우리 말입니다.
끝으로 하나 더, 굳이 이 영화를 엄마와 함께 보고 싶었던 것은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자칭 독실한 크리스천들에 대한 경종이 되었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부디 다음에는 장로님이라고 해서 기꺼이 한 표를 던지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악마보다 더 잔인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용서'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피해자에게 먼저 구하지 않은 용서는 하나님도 내주시지 않습니다. 영화 '밀양'이 함께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더 많은 이들이 보고 더 많이 함께 울어주기를 소망합니다. 그 눈물이 변화를 촉구하는 한 힘이 될 거라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