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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 빈센트 ㅣ 쪽빛그림책 7
이세 히데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6월
절판
내가 참 좋아하는 이세 히데코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양장본에 같이 겹쳐 나오는 이중 커버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렇게 책 표지와 겉껍데기의 표지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질 때는 어쩐지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노란 겉표지는 빈센트하면 떠오르는 강렬한 노란색이지만,
커버를 벗겨낸 뒤의 푸른색 표지는 그의 우울했던 정서와 고독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색감을 보여주고 있다.
리뷰 쓰려고 사진을 찍어둔지 꽤 되었는데 그사이 바빠져서 잠시 방치해 두었더니 언니가 노란 겉표지로 부채질 하다가 하단 부분을 찢어먹었다. 아, 부들부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의 화자는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다.
빈센트에게 있어서는 영혼의 반려자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테오에게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나에게는 형이 있었습니다.
-라며 이 책은 시작한다. 형의 무덤 앞에 형이 좋아했던 해바라기를 놓는 테오의 그림자가 무척 어둡고 무겁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황금빛 밀밭 춤추는 물결 속에서 베어진 밀 냄새와 형의 냄새를 모두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형은 어디에 있는가?
서늘한 느낌으로 첫 장을 열어본다.
시작은 네덜란드, 그들의 고국에서 출발한다.
마을에 하나밖에 없던 조그만 교회의 목사였던 아버지는 서재에서 늘 성경을 읽고 계셨지만 밤이 되면 어린 형제들에게 디킨스와 안데르센의 책을 읽어주곤 하셨다.
형이 유난히 좋아하던 크리스마스 캐럴...
봄이 지나고 밀이 쑥쑥 자라는 여름이 되었다.
형과 함께 밀밭 사이를 뛰놀던 추억이 어른거린다.
형은 지금 그 밀밭 사이에 숨어 있는 것일까.
나처럼 떠나지 못하고 내 곁을 서성이는 것일까.
형은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했다.
기숙학교로 떠날 때 형은 열한 살, 나는 일곱 살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아갈 것에 대해 형은 불안과 외로움으로 떨었겠지만, 나는 형이 아버지와 단둘이 비밀 여행을 떠나는 줄 알고 부러워했다.
철없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형은 도시의 화랑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림에 둘러싸여 일하는 즐거움이 편지에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형이 화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아버지는 형이 가난한 목사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나 역시 열여섯 살이 되자 곧바로 화랑에 취직했다.
하지만 형은 끝내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했다.
화집에 숨겨 몰래 성서를 읽고, 하숙집 벽을 종교화로 가득 메우던 형은 화랑에서 쫓겨났고, 몇몇 직장에서도 정착하지 못했다.
마치 세상에는 형이 앉을 의자란 없는 것만 같았다.
가난한 탄광 사람들을 위해 전도사가 되겠다는 형의 주장에 아버지는 한숨을 쉬셨다.
형은 탄광에 들어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 가까이 다가갔다.
가진 것을 모두 내주었고 맨발로 설교했다.
하지만 태양을 잊은 칠흑 같은 땅 속에서 형은 오히려 자신의 참 바람을 찾고 말았다.
화가가 되겠다는 형의 외침 속에는 자유의 냄새가 나기까지 했다.
스승이 없었던 형은 자신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칭찬하는 살마도, 갖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는 그림이었지만 형은 열심히 그렸다.
내가 보내주는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형은 여행을 계속했다.
풍경 속을 떠도는 눈은 화가로서 형을 성장시켰지만, 고독은 더욱 깊어갔다.
나는 파리에서 그림을 파는 장사꾼이 되었다.
형은 파리의 내 아파트에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며 논쟁을 벌였다.
아파트는 그림들로 가득찼고, 형은 쉴 새 없이 자화상을 그려댔다.
그 얼굴은 형이었고, 곧 나였다.
내게 있어 이기적인 형은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미움의 대상이었다.
형은 다시 남쪽으로 떠났다.
남프랑스에 정착한 형은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내가 보내준 돈을 작품으로 돌려보냈다.
감사와 요구의 편지를 보내는 형은 타고난 화가였고,
그림을 파는 나는 슬픈 장사꾼이었다.
나는 형의 그림을 한 장도 팔 수 없었으니까...
형의 아틀리에를 찾았던 유일한 한 사람이 있었다.
두 예술가는 서로를 질투하며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고, 양보하지 않았다.
마침내 싸움이 벌어졌고, 친구가 떠난 자리에는 텅빈 두 개의 의자와 형의 오른쪽 귀가 남았다.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없었던 형은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내 영혼에 조그만 난로가 있는데, 아무도 불을 쬐러 오지 않는구나."
형은, 자신만이라도 그 조그만 난로의 열기로 몸을 녹일 수 있었을까.
부디 그랬었으면 한다.
형의 열정과 고독과 외로움은 형을 파고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림 속에서만 형은 자유로워 보였다.
보이나요, 소나무 숲과 안개에 둘러싸인 마을의 교회가,
구름을 가르고 쏟아지는 봄빛이, 솜털 같은 밀의 새싹이,
역광에 금빛으로 빛나는 히스 들판이며 까치둥지가.
들리나요, 새의 노랫소리가,
하늘 높은 곳에서 형, 형, 형 하고 부르는 노랫소리가.
아아, 단 하나뿐인 나의 형......
알다시피... 빈센트 반 고흐가 죽고 나서 그의 동생 테오도 6개월 만에 형의 뒤를 따른다.
그래서 더더욱 그둘 사이는 영혼의 반려자라는 느낌이 강렬하다.
이 그림은 고흐가 그린 자화상인데, 왼쪽의 인물은 테오라고 암스테르담 박물관이 결론을 내렸다.
실로 닮은 두 사람이다.
이세 히데코는 오래도록 고흐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가 그려낸 그림은 고흐의 느낌을 잘 살렸으며 자신의 색깔을 잃지도 않았다.
어딘가에서 이세 히데코가 한쪽 눈을 잃었다고 보았는데, 그래서일까 더더욱 한쪽 귀를 잃은 고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
그리움과 외로움을 가득 담아 이 책을 재차 읽어본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제의 이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