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랑 선생님이랑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초승달문고 20
김옥 지음, 백남원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품절


여덟살 기백이 눈엔 12시가 넘어서 일어나 느즈막하게 밥을 먹고 과자를 삼키며 TV를 시청하고, 밤을 꼴딱 세워 게임을 하거나 무협지를 읽는 백수 삼촌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런 삼촌을 본받고 싶어하면 엄마에게 불호령이 떨어진다.
엄마는 법대를 졸업하고서 사법고시에 떨어지고 집에 돌아와 내내 놀고 있는 삼촌이 못마땅해 죽겠다. 기백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기백이네 담임이신 김성환 선생님이 아프셔서 새 선생님이 오셨다.
김성환 샘은 기백이의 엄마와 아빠 모두를 가르치신 선생님이다.
시골 학교니까 가능한 이런 시스템! 뭔가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대를 이어 같은 선생님께 배워서 엄마 아빠 어릴 적을 함께 기억해주고 제자의 자녀들을 보면서 옛 추억을 반추할 수 있는 선생님이라니....

새선생님은 통통하고 둥근 얼굴의 아가씨 선생님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새로 오신 것보다 덕분에 받아쓰기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 것에 더 열광한다.
아이들답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첫번째 맞이하는 소풍이어서 따라가고 싶었지만, 녹차밭으로 녹차 따러 다니느라 바쁘신 엄마는 기백이를 따라갈 수가 없다.(이곳은 보성이다!)
그 바람에 삼촌이 대신 따라가게 되었다.
군소리 없이 따라갈 삼촌이 아니다.
엄마는 미끼로 만원을 제시하셨다.
백수 삼촌으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다.(대부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집에서는 쓸모없다고 구박받는 삼촌이지만 소풍 장소에서는 할 일이 생겼다. 김소명 선생님이 보물찾기 종이를 숨겨달라고 부탁하신 것이다.
좀처럼 보물을 못 찾는 기백이와 달리 단짝 친구 혜진이는 보물찾기 선수다.
자신이 찾은 보물을 나눠주기까지 하는 마음씨 착한 혜진이는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어서 얼굴이 까맣다. 친구들이 많이 놀리고, 그보다 먼저 혜진이의 주먹이 날아가기도 하지만 기백이와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다.
두 아이의 우정이 예쁘고 정겹다.

선생님들이 이웃 학교와 배구 시합을 하게 되었다.
연습 게임 중에 기백이 삼촌이 학교에 불려와 경기 상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집에서는 빈둥빈둥 논다고 늘 구박만 받던 삼촌이 모처럼 날쌘돌이가 되어서 주가를 올렸다.
게다가 경기 당일에 차 시동이 걸리지 않는 교감 선생님 차 대신 기백이네 트럭을 삼촌이 운전해 주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면 뭔가 쓸모가 많아지는 삼촌이었다.
볼품없는 트럭이라 할 수도 있지만 탁 트인 배경을 뒤로 하며 다 함께 올망졸망 모여 앉아 시합 하러 가는 장면이 따스하다.
시합에서 이기지 못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장면들이다.

봄바람이 가득한 어느 날에는 야외 수업을 가졌다.
저렇게 멋진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이곳이 시골 학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많지 않고 또 어린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림이 주는 힘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림을 수채화로 그린 것일까? 우리의 자연이 주는 색을 제대로 옮긴 듯하고, 나무 그림자 하나하나에서도 들풀의 향기가 날 것만 같다.
저 속에 끼어서 나도 '꽃'이라는 글씨를 배우며 바람도 익히고 싶다.

여름 방학이 되어 광주 집으로 돌아가신 선생님이 학교로 놀러오셨다.
선생님과 짜장면도 시켜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기백이는 오후 늦게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삼촌과 마주쳤다. 삼촌이 그냥 운동장에 들어선 것은 아닐터!
제목을 생각한다면 분명 무슨 썸씽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저렇게 아름다운 별밤에 삼촌이 모처럼 분위기를 잡았다.
어릴 적 꿈을 설명하며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나.
반칠환 시인의 시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에서 인용했다고 작가가 밝혔다.

찾아보니 이런 시다.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 반칠환

보도 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제목의 힘이 더 큰 시다.
선생님과 삼촌의 사이가 급격히 가까워지게 만든 결정적 계기의 꽃 한송이 이야기는 굳이 밝히지 않으련다. 거기에서 기백이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도...
그건 독자의 보너스니까.

사이사이 혜진이에게도, 삼촌에게도 위기가 있었지만, 모두 바람직하게 해결되었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이 사랑스럽다.
저 모습에서 내가 위로를 얻고 안도하게 된다.

제목이 너무 길다는 것이 쪼끔! 불만이지만, 이야기가 참 예뻤다.
조카는 내 책장의 이 책을 뽑아서 절반 정도 읽었다고 하던데 뒤가 궁금해서 어떻게 참았나 모르겠다.
시골적 정서에 대한 어떤 그리움과 동경 같은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나중에 다시 한 번 권해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사르 2011-08-2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페이지로 연결되는 해변가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도 좋구요, 바닥에 온통 떨어진 빨간 꽃잎인가..석류인가..를 담으며 보물찾기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좋아요. 동화작가의 글도 좋지만 그림작가 백남원씨의 작품은 정말, 멋지네요. 실지로 떨어지는 벚꽃나무 옆에 환히 웃는 아이들이라니요..와~

ㅎㅎ 역시나 독자의 보너스, 궁금궁금!

마노아 2011-08-28 21:07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좋지요? 이번에 남도 답사 여행길에 석류나무를 처음 보았어요. 저는 석류 열매가 그렇게 클 줄 몰랐거든요. 완전 신기했답니다.^^
독자의 보너스는 얘기하는 순간 너무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참았어요. 아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