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17 호/2011-08-22
태연이가 강아지 몽몽이와 집안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놀고 있다. 꺄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몽몽이도 신이 났는지 태연의 손바닥을 핥으며 장난을 친다. 이 모습을 본 아빠는 뜻밖에 엄한 목소리를 낸다.
“태연아, 몽몽이 입에는 손대지 말라고 그랬지!”
“에구에구, 우리 아빠는 정말 못 말리는 딸 바보라니깐~. 몽몽이 입에서 제 손으로 세균이 옮을까봐 걱정이 되시는 거죠? 제가 그다지도 소중하셔요?”
“그 반대야.
잘 씻지도 않은 더러운 손 때문에 몽몽이가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허걱…. 아빤 정말 너무하셔. 나보다 몽몽이가 더 소중하신 거예요? 흥!!”
“서운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오늘 네가 한 행동들을 쭉 떠올려 봐. 친구들이랑 수영장 갔다가, 배 아프다고 병원 갔다가, 약 먹고 다 나아서 다시 배고파졌다고 마트까지 다녀왔잖아. 그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잡았던 손잡이를 계속해서 만졌고 말이야. 그 동안 손은 몇 번이나 씻었니?”
“당연히!! 제로번이요….”
“내 그럴 줄 알았다. 손은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부위지만 가장 위험하고 더러운 부분이기도 해.
실제로 호흡을 통해 바이러스나 세균이 옮는 것보다 손을 통해 옮아서 병에 걸리는 경우가 더 많단다. 물론 냄새로 치면 삼 만년 썩은 청국장 냄새가 나는 네 발이 더 끔찍하겠지만, 세균만 가지고 생각하면 손이 발보다 훨씬 더러워요.
한 사람당 손바닥 한 개에 평균 150 종류의 세균이 있는데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양 손에 있는 세균의 83%가 다른 종류란다. 그만큼 손에는 어마어마한 종류의 세균이 산다는 거지. 이렇게 다양한 세균이 무럭무럭 자라는 손을 씻지도 않은 채 몽몽이를 만지면 되겠니?”
“그럼 손가락으로 코를 후벼도 세균이 몸으로 들어갈까요?”
“당연하지! 또
아까부터 모기 물린 데를 손톱으로 꾹꾹 누르고 있던데, 그건 ‘세균아, 제발 몸에 들어가 염증을 일으켜 줘’라고 기도를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야.”
“앙~. 코딱지 파서 목표물에 명중시키기와 모기 물린 데 십자가 모양으로 손톱자국 내기는 제 소중한 취미생활인데, 도대체 어떤 세균들 때문에 그토록 아름다운 취미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냐고요!”
“
손에 가장 많이 사는 세균은 황색포도상구균이야. 식중독은 물론이고 피부염, 중이염, 방광염 같은 질환을 유발하는 못된 균이지. 이 세균은 인체의 대장이나 식품에서 번식하면서 장독소(Enterotoxin)라는 물질을 만드는데, 장독소는 심한 구토나 복통을 일으키는 아주 독한 물질이란다. 더구나 섭씨 100도 이상에서 오랫동안 가열해도 죽지 않아요. 아까 네 배가 아팠던 것도 어쩌면 더러운 손에 살던 황색포도상구균이 입으로 들어가서 장독소를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또 뉴모니아균, 대장균, 인플루엔자간균, 살모넬라균 등 여러 종류의 병원균들도 손에 살고 있지. 이 균들은 폐렴이나 기관지염, 식중독, 감기 등을 일으키고 전염도 아주 잘 된단다.”
“제가 아팠던 게 이 손 때문이라고요? 에잇~ 나쁜 손, 더러운 손, 미워요!”
“왜 손을 미워하니? 손 씻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너의 게으름을 미워해야지. 걱정 마.
손만 잘 씻으면 병원 갈 일이 최소 70% 이상 줄어들 테니까. 또 대부분의 병원성 세균들은 섭씨 25~40도에서 활발히 번식하는 중온성 세균이야. 그렇기 때문에 요즘 같은 날씨엔 더더욱 손을 잘 씻어줘야 한단다.”
“알겠어요, 앞으론 잘 씻을 테니까 젤로 비싸고 좋은 손세정제, 아니 손소독제를 사 주세요. 빨리요~.”
“아이고, 성질 급하기는. 그런 것보다 얼마나 꼼꼼히 씻는가가 훨씬 중요해요. 식약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비누로 손을 씻을 경우 99%, 손소독제는 98%, 물로만 씻어도 60%의 세균제거 효과가 있다고 해. 또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누를 이용해서 30초 이상 구석구석 꼼꼼하게 손을 씻는 게 가장 좋다고 얘기하고 있어.”
“그런데 손세정제랑 손소독제랑 정확히 뭐가 다른 거예요?”
“
손소독제는 알코올 소독성분이 함유된 의약외품으로, 물로 씻어내지 않아도 되는 제품을 말한단다. 물이 필요 없어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너무 자주 사용하면 알코올 성분이 피부 보호막을 상하게 해서 주부습진이나 자극성피부염에 걸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해. 반면에
손세정제는 물로 꼭 씻어내야 하는 제품으로, 화장품으로 분류된단다. 일반 비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구나.”
“그렇구나…. 암튼, 이번엔 진짜 결심했어요. 항상 손을 깨끗이 씻고 많은 사람들이 만지는 물건은 되도록 손에 대지 않는, 아주 청결한 생활을 가꾸어 볼 테예요!”
“아이고 우리 딸, 착하구나. 그래서 말인데 태연아…. 세상에서 가장 세균이 많은 물건이 바로 돈이란다. 내 주머니에 오기 전까지 누가 어떻게 돈을 다뤘는지 전혀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아빠는 이 더러운 돈을 사랑하는 너에게 용돈으로 주지 않고 내가 갖고 있으려 한단다. 그냥 아빠 한 몸 세균에 노출되고 말테니, 넌 더러운 돈 없이 건강하고 청결한 삶을 영위하렴!”
“아빠의 마음 천 배 만 배 이해해요. 절 그리도 아껴주시다니 너무나 감사해요. 그래서 용돈은 꼭! 인터넷 계좌이체로 받을게요. 메롱~.”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