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 여씨와 유씨 - 건설과 숙청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한나라 이야기 3권은 여씨와 유씨가 소제목이다. 나라의 주인이 된 후의 이들 부부의 모습인데 서로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는 꽤 궁합이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향하는 바가 같았달까. 다만 유방은  유씨 천하를 원했고, 그의 사후 여후는 여씨 천하도 가능하다고 믿었던 게 다르지만. 

역사의 패배자로 사라졌지만 인간적인 매력으로는 항우가 유방을 더 앞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사마천의 영향일 것이다. 이 위대한 역사가는 또한 문학가이기도 해서 정치적 패배자였던 항우와 한신 등에게 문학적 영생을 안겨주었다.  

 

척씨 부인과 여후의 대립 구도도 비슷하다. 척부인의 행보를 보면 담대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지혜는 부족했던 듯하다. 하지만 사마천에 의해서 그녀는 가련한 여인으로 재탄생했다. 그림속 척부인의 입술에 세모꼴 연지가 발라져 있다. 당시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에선 이런 소소한 것들을 챙겨보는 재미가 제법 크다.  

오른쪽의 여후는 척부인과 대조적으로 새하얗게 샌 머리가 세월의 힘을 보여주지만 눈빛은 여전히 강렬하고 투쟁적이다. 

 

토사구팽의 어원은 한신이 시작이 아니지만, 한신으로 인해 이 고사성어가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한신의 죽음에 대해 후대인들은 또 안타까움을 표현하곤 하지만, 그의 처신이 현명했던 것은 분명 아니다. 그도 나름대로 열심히 계산하고 재고 발도 빼가면서 유방을 상대했다. 철저한 충성을 바쳤던 것은 아니다. 물론, 그의 도움으로 천하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렇게 차갑게 버린 비정한 처사를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한신이 자신을 낮추고 몸을 사렸다 하더라도 유방과 여후가 그를 살려뒀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장량이 역시 훌륭하다. 신선이 되겠다며 정계를 은퇴한 것이다. 사마광은 그가 몸을 사리느라 그랬다지만, 장량이 신선사상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역시 일석이조를 챙길 줄 아는 장량이다. 

유방의 눈은 매우 음흉하게 보인다. 꽤 능글맞고 능청스러운 그의 성격을 표현하고자 그랬나보다. 그런데 눈동자의 저 색은 공포 영화 '주온'을 떠올리게 해서 자꾸 놀라게 된다.  

유방은 군사나 나라 살림이나 모든 면에서 자신이 거느렸던 신하들보다 능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그 사람들을 거느리며 움직였다. 그게 유방의 능력이고 또 그가 제왕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이다. 지극히 동양적인 지도자의 자질이다.  

사마천이 보기에 리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이른바 용인(用人), 즉 사람 쓰는 능력입니다. 지도자 본인이 모든 능력을 고루 갖출 필요는 없으며, 다만 각 분야 능력 있는 인재들의 마음을 얻으면 충분하다는 사상이지요. 이러한 생각이 2천여 년을 내려오면서 동아시아의 독특한 지도자상을 형성했어요. <삼국연의>의 유비나, <수호지>의 송강, <서유기>의 삼장법사 등, 이렇게 무능력한 리더들이 다른 문화권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37쪽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체제로 지쳐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한나라의 내버려두기 통치 정책은 차라리 편안했을 것이다. 역시 역사는 거울이 되어준다. 그 체제로 백년을 이어갈 수는 없지만 서두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나라의 초기 재상들은 현명했다. 

후세의 어떤 연구자들은 장량을 전형적인 도가 지식인으로 이해합니다. 이전 세대 법가 지식인과는 처신이 사뭇 다르기는 하지요. 법가라면 얼핏 모질고 야박하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회 개혁 세력이었습니다. 어쩌면 사회가 서구화된 요즘, 우리에게 더 익숙한 지식인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한비자>에도 나오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버려도 좋다는 의식이 있었어요. 상앙이니 이사니 실제로 개혁에 나섰던 법가 지식인들 가운데 제 명에 죽은 사람도 없어요. 그들 덕에 바로 민중의 삶이 나아진 것만은 아니었지만요.
그러나 도가 지식인은 달라요.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거꾸로 자기 몸부터 챙겼답니다. 노자는 난세를 피하여 인간사회를 등졌지요. <장자>에는 벼슬살이에 묶였다가는 자기 몸을 망칠 수도 있다는 철학이 등장합니다. 도가 지식인은 소하나 진평처럼 절묘한 처세술로 복이란 복은 다 누리기도 하며, 장량이나 ‘상산사호’처럼 은일지사가 되기도 하죠. 개인을 중시하는 도가 지식인의 모습은 이후로도 동아시아의 독특한 전통을 형성하였답니다. -97쪽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세워질 때, 새 왕조 조선을 인정하지 않고 숨어 지내던 많은 처사들. 그들의 후계자들이 훗날 사림을 계승한다. 마지막의 고려 왕조가 그렇게 의리를 지킬 만큼 훌륭했었냐고 생각한다면 전혀 동의할 수 없기에, 충신의 대명사로 꼽히는 정몽주 등은 그저 보신주의자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조선 초의 혁명파 세력들은 보다 건강했다는 느낌이다. 초기 훈구파의 모습은 훗날의 사림보다 훨씬 열린 마인드였는데 역시 시간이 지나 부패하면 더럽기는 다 마찬가지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권은 작년에 선물을 받았는데 저자 사인본이었다. 은색 매직으로 분홍 바탕에 사인을 했는데 고대의 한자를 연상시키는 사인이 재미있다. 원래 이런 사인을 썼는지, '한나라 이야기'답게 나름 각색을 한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앞서 2권에서는 초한쟁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가 읽으면 너무 듬성듬성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는데, 3권의 말미에는 특별부록으로 '열두 꼭지로 읽는 <<초한지>>'가 실려 있다. 이 부분을 먼저 읽는다면 좀 더 이해가 잘 될 테지만, 책의 끝부분에 실려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마지막에 읽게 되지 싶다.  

4권의 주제는 '문경지치'다. 5권의 한무제에 비해서 좀 평화로운 색채가 나타날 것인가. 사뭇 궁금하지만 책의 출간 간격을 생각할 때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래도 십자군 이야기보다는 빨리 나오겠지...

은둔생활하던 도가 지식인들을 떠올리면 자연과 더불어 욕심없이 사는, 혹은 속세를 초월한 느낌이 강하지만, 지적한대로 오히려 그들은 방관자이자 제 몸의 안일만 생각한 이기주의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리어 법가 사상가들이 제 몸을 던져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 혁명적 인물로도 비친다. 물론, 그 어느쪽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지만...  
관중의 생각과도 관통한다. 그가 제 환공에게 요구했던 지도자의 조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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