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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3
강풀 글 그림 / 문학세계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강풀의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은 계보가 있다. 아파트가 시작이었고, 타이밍, 이어서 이웃사람, 그리고 어게인으로 이어졌다. 첫 시리즈에는 저승사자라고도 불리는 메신저가 한 명 등장했지만, 타이밍에서 한 명 더 추가 되었고, 그리고 어게인에서 또 한 명이 추가되었다.
각각의 저승사자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듣게 되면 사람이 죽고, 누군가는 눈이 마주치면, 또 누군가는 손에 닿으면 죽게 된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는 했는데, 가끔 별종이 나올 수가 있다. 어게인에서 등장한 목소리 저승사자가 그랬다.
첫 시작에서 그는 교통사고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내버려두면 곧 죽을 터였다. 그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가 목소리로 사람을 잡는 인물이었는데, 어차피 곧 죽을 터였기에 사자는 그의 목숨을 당장 거두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겨서 사자의 능력은 죽어가던 이 남자에게 옮겨갔고, 그는 어게인이자 메신저로 부활한다.
어게인. 사람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면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온전히 살아내지 못한 자신의 생만큼을 더 살아간다. 어게인은 자신이 어게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데, 박태민은 메신저이면서 어게인이기 때문에 누가 어게인인지, 또 누가 언제 죽을 것인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때 생명은 누군가가 죽으면서 또 누군가가 태어나는데 그 주기가 10개월이다. 엄마 뱃속에서 태아가 자라는 기간. 어게인을 죽이면 태어나야 할 아이가 죽게 된다. 반대로 아이를 죽이면 어게인의 생명이 연장된다. 박태민은 어게인들을 모아서 지속적으로 수명을 연장해 왔지만, 임산부 연쇄살인을 덮기 위해서 대형참사를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 더불어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사명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바로 타이밍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시간 능력자들이다.
첫번째 남자는 시간을 10초 전으로 돌리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으로도 가스 폭발 사고로 죽은 아내와 아이를 살리지 못한 충격에 능력을 쓰지 않고 침울하게 살아가고 있다. 두번째 기형이는 손으로 만지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저승사자이고, 세번째 박자기 선생님은 꿈을 통해 대형참사를 미리 예측한다. 기형이와 박선생은 어차피 벌어질 참사를 막을 수는 없지만,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일에 힘쓰고 있었다. 물론, 사전에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 받고, 사후에는 범인으로 몰리는 수모를 지속적으로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구하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네 번째 영탁이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갖고 있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그 혼자만 움직일 수 있지만, 공기도 멈춰버리기 때문에 호흡이 가빠지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에 오드아이를 갖고 있는 여자는 기면증이 있는데, 잠이 들면 10분 후에 벌어지는 일을 미리 보게 된다.
이렇게 다섯 사람이 뭉쳐서 어게인들의 임산부 살해 사건을 해결하고자 뭉쳤다. 그 와중에 박태민의 생과 연결된 아이가 곧 태어나려고 한다. 산모는 인도네시아 사람이다. 아이 아버지도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는 항상 죽음을 비켜가는 사나이였다. 지뢰밭에 들어가도 지뢰 하나 밟지 않고 나올 수 있었고, 그는 늘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차렸다. 크리스마스에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갔는데 쓰나미가 덮쳤고, 그때 목숨을 건져준 인연으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현재 쌍둥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태어날 아이 하나는 아버지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고, 또 하나는 박태민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아이의 아버지도 사실은 어게인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살리려면 아이가 죽어야 하고, 아이를 살리면 아버지가 죽어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어게인 박태민과 곧 태어날 아이가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그 속내용까지 드러나고 났을 때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어야 했다. 강풀의 이야기는 늘 보여지는 것 이상의 뭉클함을 던져주곤 했는데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 시리즈에도 예외는 없었다. 누구보다 인간적인 저승사자가 등장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으로도 제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소시민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임산부를 계속 죽이게 만든 무시무시한 인간 박태민에게조차 두 손 내밀어 잡아주고 싶은 사연이 등장한다.
와우 아파트 붕괴! 거기서 출발할 거라고는 상상 못했다. 그렇게 서럽게 죽은 목숨이라면, 작가의 상상처럼 어게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게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시간을 멈추고, 또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특별한 능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람의 간절한 염원, 그 지극한 마음의 둘레를 보고 말았다. 연민을 넘어 뜨거운 감동이 솟았고, 정해진 숙명을 벗어날 수 있게 내 마음 한 조각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사실 작가는 타이밍2를 쓰고 싶었는데 외전 격으로 이 작품을 먼저 썼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타이밍은 예전에 읽고서 중고로 팔아버렸는데 뒤늦게 후회가 된다. 스포일러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다시 찾아보고 재차 감상할 만한 책이었는데 너무 가볍게 떠나보냈다. 다시 구입해서 모아야겠다. 그래야 나중에 타이밍2가 나오면 연결해서 다시 보고 또 폭풍감동을 받을 게 아닌가.
강풀 작가의 주인공들은 모두 따뜻했다. 버릴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가장 '연민'을 느낄 사람으로 어게인의 박태민을 꼽겠다. 그의 강한 염원에 진심으로 동조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