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신데렐라 초승달문고 21
고재은 지음, 윤지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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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작가님의 경험담이 묻어난 네 편의 단편 동화가 실려 있다.  

킹파워 딱지가 너무도 갖고 싶은 인섭이는 보리차 사오라는 심부름을 하늘 2천원을 들고 가다가 눈에 티끌이 들어가서 멈추고 만다. 눈을 비비는 와중에 하얀 사람이 다가와서는 천원 지폐의 이황 선생님은 보리차가 싫다고 말씀하신다고 속삭인다. 인섭이는 정말로 보리차가 싫다는 소리를 듣고는 놀라서 돈을 떨어뜨린다. 잃어버린 돈을 찾느라 헤매다가 가로등 아래에서 킹파워 딱지 두 개를 줍게 된 인섭이. 이제 내일 자신을 비웃던 현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 심부름을 완수하지 못하고 돈까지 잃어버렸으니 이를 어쩌나. 

다음 날, 엄마가 요란스럽게 인섭이를 깨우신다. 점퍼 주머니에 딱지가 든채 세탁기를 돌린 나머지 킹파워 딱지는 너덜너덜해졌다. 엄마는 아이가 심부름값을 제멋대로 썼다고 판단하고 단단히 야단을 친다. 친구들과의 내기도 지킬 수 없고, 아끼던 킹파워딱지도 망가지고, 엄마한테 잔뜩 혼나고, 인섭이의 일진이 아주 사납다.  

며칠 뒤 시장 가는 길에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대는 엄마. 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가던 엄마는 바람이 불어와 눈에 티끌이 들어간다. 얼마 뒤 엄만는 초록색 만 원짜리 두 장을 귀에 대고 외쳤다.  

"나는 고기가 싫어, 나는 고기가 싫다고!" 

만 원짜리 속 세종대왕이 엄마에게 속삭였대나 어쨌다나... 소고기는 사지 못하고 엄마는 예쁜 블라우스를 들고 계셨다. 돈은 잃어버린 거고 블라우스는 주웠다고 말씀하시는 게 인섭이의 과정과 똑같다.  

엄마는 이제라도 인섭이의 마음을 과연 이해하셨을라나? 

첫 번째 이야기가 무척 재밌었다. 엄마 입장의 목소리와 인섭이 입장의 목소리가 대등하게 부딪히는데 두 사람 모두 편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작가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있기에 엄마의 목소리가 더 실감났나 보다.  

두 번째 이야기는 다소 슬프다. '2학년 3반 이주희'라는 제목인데, 엄마가 공장에 가 계신 동안 혼자 집에 있던 주희가 온 방안과 방안의 소지품에 온통 제 이름을 적어놓은 것이 문제였다. 아이가 쓸 수 있는 글자는 고작 제 이름뿐이었고, 늘 혼자 있던 시간 속에서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해준다는 것을, 어른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지나친 낙서로 연필과 매직까지 모두 압수당한 주희. 그런 주희의 방문을 두드리는 바람. 주희는 허공 속에서 맨 손으로도 글씨를 쓴다. 그렇게 쓴 제 이름을 바람이 실어다 주었다. 바로 주희와 엄마를 버리고 간 아빠의 등에 말이다. 물건에 이름을 써 두면 잃어버리지 않는다던 선생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실천하는 주희였다. 그렇게 찾고 싶은 아빠였고, 그렇게 갖고 싶은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시큰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세 번째 작품이 표제작인 '내 이름은 김신데렐라'다.  

네 살 때 처음 신데렐라 이야기를 알게 된 김진우. 진우는 제 이름을 김신데렐라라고 대답하곤 했다. 어릴 때는 귀여운 멋에 모두들 웃고 넘어갔지만, 유치원에 들어가자 공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핑크색에 집착하며 자기 이름을 신데렐라라고 하는 진우는 곧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엄마는 선생님과 상담을 받은 뒤에 진우의 생각을 교정하기로 결심하셨다. 이후 진우의 옷은 온통 파란색으로 도배가 되었고, 아빠가 사다주시는 장남감은 모조리 자동차였다. 게다가 엄마는 진우가 그린 신데렐라 그림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하셨다. 진우가 슬퍼한 것은 당연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가방을 사러 갔을 때도 진우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마법천사 씽크'가 그려진 분홍 가방이었지만 엄마는 남색 로봇 가방을 사주셨다. 그리고 그때 여자인지 남자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 아이가 자기처럼 똑같이 로봇이 그려진 남색 가방을 사갔다. 알고 보니 같은 학급 친구인 장유미였다.  

진우는 유미네 집에 초대받아 갔다가 그 동안 감췄던 본능을 맘껏 풀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유미는 왕자보다 더 힘센 공주도 있다고 생각하는 호탕한 친구였다. 유미 앞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신데렐라라고 소개할 수 있었다. 유미는 비웃지 않고 멋지다고 말해 주었다.  

이번 이야기는 좀 난감했다. 아이가 자랄 때 지나치게 남자/여자를 구분하지 않는 게 좋다고 알고는 있지만, 자기 이름을 신데렐라라고 부를 정도면 내가 엄마라고 해도 걱정스러울 것 같다. 혹시 아이의 성 정체성이 남다르다는 의문이 들지 않을까. 몇 해 전에 CA에서 만난 중학생은 위로 누나만 셋이던가 다섯이던가... 암튼 그랬던 아인데 핑크 색만 좋아하고 웃을 때도 호호호 웃고, 몸가짐과 손동작 등등이 모두 지나치게 여성스러웠다. 실제로 여학생들하고만 친하게 지냈고 툭하면 삐져서 아주 난감하기도 했다. 오늘 이 작품을 읽으면서 그때 그 학생이 떠올랐다. 정말로 성 정체성의 문제라면 그것이 신호일 테니 차라리 다행일수도 있지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취향일 뿐이라면 학창시절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어휴, 이 이야기는 생각을 많게 하지만 딱 잘라서 뭐라 말하기가 힘들다. 이야기는 무척 재밌게 읽었지만 말이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마지막 작품 '희철 선인장'이다. 구구단 외우다가 조금만 긴장하면 자꾸 틀려버려서 나머지 공부하기 바쁜 희철이. 그런 희철이가 속상해서 더 다그치는 엄마, 희철이가 사실은 다 외워놓고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선생님이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희철이가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주는 선인장의 가시가 위험하다고 선생님은 큰가위로 가시를 모두 쳐냈다. 대머리가 되어버린 선인장이 안타까운 희철이였다. 

구구단은 이제 7단으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잘 외워놓고도 누가 웃거나 남다른 반응을 보이면 금세 머릿 속이 비워지고 만다. 결국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버린 희철이는 제 안에서 선인장의 가시가 툭툭 자라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만다. 수없이 눈을 깜박이고, 입이 멋대로 움직여 생각치도 않은 말이 튀어나오는 희철이. 본인은 그러고 싶지 않지만 제어가 되질 않는다. 갑작스레 돌변한 아이를 보고 선생님도 충격을 받고 엄마도 놀라서 내내 우신다. 희철이는 미안한 마음에 더 잘해보려고 하지만 몸에 솟은 가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희철이에게만 보이고 희철이만 느낄 수 있는 발톱같은 가시.  

책의 은유가 너무 훌륭해서 더 오싹했다. 정말 이런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마음의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을 것 같다. 아이에게 그 원인이 되어놓고는 아이의 진심까지 몰라주는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 재차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제 마음의 울림을 크게 외치고 있었지만, 엄마와 선생님, 어른들은 귀를 막고 자기들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애정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을 위한 애정은 아니었는지 서로 돌아볼 일이다.  

작가의 맺음말에는 30년 전의 일기가 실려 있다.  

1981년 7월 30일 금요일 

나는 오늘 엄마가 미웠다.
더워서 하드를 사 먹고 싶은데,
엄마가 돈 없다고 했다.
돈이 없다면서 콩나물이랑 파를 샀다.
엄마는 거짓말쟁이다.
나는 엄마가 되면 하드부터 사 줄 거다. 

저렇게 속상하게 하는 엄마는 되지 않을 거라고 마음 속 깊이 외쳤지만 분명히 그런 엄마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저건 하드 하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찔하다. 한때 모두가 갖고 있었을 그 '어린 마음'을 알아보는 어른이 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 그렇지만 그 마음 바라보기를 포기하지 않는 어른은 되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다짐해 본다. 좋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아서 마음이 훈훈하고 눈은 뻑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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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3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3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찬샘 2011-12-19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 반에 한 명 정도씩 유난히 여자 아이들하고만 노는 남자 아이들이 있더라는...

마노아 2011-12-19 10:34   좋아요 0 | URL
중학교에서도 그런 학생들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놀면 좋은데, 여자애들하고만 놀면, 그것도 또 걱정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