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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포로 아크파크 4 : 끝의 시작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절판
꿈의 포로 아크파크 시리즈 네번째 이야기
제목은 '끝의 시작'이다.
서로 양끝에 가 있는 제목이 나란히 있는 걸 보니 이번에도 아크파크 씨의 고생이 어째 눈에 훤해 보인다.
또 어떤 기막힌 역설로 독자를 놀라게 할 것인가!
아크파크 씨의 꿈이다.
검은 바다 위에 '선택'이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지나가던 아크파크 씨는 물 아래 달 배를 타고 있는 한 남자와 마주친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남자,
아크파크 씨는 뒷면을 선택했지만 남자의 동전은 앞면이 나와버렸다.
그러자 웃어버리는 사내.
이 게임에선 결코 질 일도, 이길 일도 없다면서 페이드 아웃!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아크파크 씨.
뭔가 수상쩍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잠옷 차림이 아니라 옷을 다 차려입은 상태다.
제목을 보니 '부조리의 논리'란다.
지금 이 상황도 몹시 부조리하기 짝이 없다.
아크파크 씨의 고생길이 훤하다고 한 내 말이 들어맞는 것인가?
꿈에서 깨어보니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면도를 하니 면도를 할 때마다 거품이 더 많이 일어나고,
면도를 마치니 이틀간 자란 수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주 문제로 함께 방을 쓰는 동거인에게는 또 보세!라고 인사해 놓고는 나가라고 이어서 말한다.
아크파크 씨의 어법에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8시 약속인데 7시밖에 안 됐다고 투덜대는 아크파크 씨의 표정은 너무 늦었다는 의미이건만, 입밖으로 나오는 말은 너무 일러서 탈이라고 한다.
걸음도 뒤로 걷고, 면도도 거꾸로 하고 말도 거꾸로 하는 이 요지경을 벗어나려면 일단 출발할 수밖에!
3권에서는 자전거가 택시 역할을 했는데, 이번엔 웬 수레칸 같은 것이 버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주택난과 마찬가지로 도로난도 심각한 이 사회에선 이 정도 급경사는 놀랄 거리도 되지 않는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도로를 질주하다가 가까스로 다른 차에 올라탄 아크파크 씨.
시계탑 아래에 '시간은 시간이다'라고 적힌 명제가 우습고도 철학적이다.
결국 모든 일이 섞이고 뒤집혀버린 아크파크 씨는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 기이한 일들을 다루는 전문가를 찾아간다.
뒷걸음질치는 그로서는 문을 향해 등지고 서서 똑똑 두드릴 수밖에.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아크파크 씨를 전문가는 거울 앞에 서게 했다.
놀랍게도 아크파크 씨의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
하지만 전등을 비춰보면 그림자가 생긴다. 그것도 하얀 그림자가!
전문가는 아크파크 씨가 꿈을 꾸고 있다고 진단하고, 그에게 필요한 치료법을 쓰기 시작한다.
바로 머리 위의 지퍼를 내려서 온 몸을 뒤집는 것이다.
팔을 빼고 다리도 빼고 마지막에는 머리를 뒤집어버리는 전문가!
그러자 온통 시커먼 아크파크 씨가 등장하고 말았다.
시커멓게 변했지만 앞으로는 걸을 수 있게 된 아크파크 씨.
방향은 잡았지만 식사를 시작하면서 계산서를 달라고 하고,
의자 밑에 앉고 글씨도 거꾸로 쓰고 마니 그는 완전히 사회부적응자가 되고 말았다.
결국 보다 전문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그의 명함은 거울이라고 적혀 있고 좌우가 대칭되어서 쓰여 있었다.
그가 거울을 통과할 때 그와 정반대로 하얀 아크파크 씨가 반대 방향에서 걸어나온다.
그에게 또 다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이제부터는 책을 뒤집어서 반대로 읽어야 한다.
반대편 표지는 앞서 보았던 표지의 반대다.
제목도 뒤집어졌다. 끝의 시작이 '시작의 끝'으로 변했다.
꿈속에서 만나는 사내의 흑백 명암도 바뀌었고,
앞과 뒤를 선택하는 것도 바뀐다.
하지만 결과도 달라질까?
사내는 여전히 단언한다.
이 게임에선 이길 일도, 그리고 질 일도 없다고...
이번에도 꿈에서 깨어난 아크파크 씨!
파자마 차림은 정상이지만 이번엔 가구의 위치가 바뀌었다.
모두 천장에 매달려 있지 뭔가.
제목을 보자.
부조리의 논리가 '논리의 부조리'로 바뀌어 있다.
이번에도 뭔가 단단히 바뀌어 있을 게 분명하다!
지난 번엔 아크파크 씨만 거꾸로 말하고 거꾸로 걷고 있었지만, 이번엔 세상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안녕하지 마시오!라고 인사를 하고,
벌금을 물릴 경찰이 오히려 벌금 800프랑을 주고 있다.
다시 걸리면 1600프랑을 줄 거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앞서의 제목은 '사실의 반사'였다.
이번엔 '결과의 반사'다.
역시 아크파크 씨의 앞날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전문가를 찾아보니 진료실이 똑바로 위치해 있다.
본인이 뒤집어 놓았다고 하는데, 자신을 뒤집다가 실수를 해서 그만 지퍼에 주름이 끼었다고 하는 전문가.
이번엔 아크파크 씨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지만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전화번호부는 아무 데를 펼쳐도 모든 이름이 다 좌로 읽으나 우로 읽으나 대칭되어 있다.
이 세계가 반사되어 있음을, 사실이든 결과든 똑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대변한다.
앞서서 멀쩡한 세상에 혼자서 바뀌어 있었다면,
이번엔 혼자 멀쩡한 대신 세상이 바뀌어 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았을 때 그만 실수로 거울을 깨버리고 만 아크파크 씨!
깨뜨린 것은 거울인데 앞에 서 있던 전문가까지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크파크 씨는 꿈을 산산조각 낸 것이다.
자신이 박살 낸 선생의 정신을 대체하기 위해서 서둘러 '거울' 명함을 들고 또 다른 전문가를 찾아간 아크파크 씨.
이제 어떤 결말이 다가올지 짐작이 가는가?
그렇다. 아까 앞부분에서 시작되었다가 끝난 거울 지점에서 다시 꺾이고 만다.
아까 거울을 통과할 때 반대편에서 넘어왔던 아크파크 씨가 지금 이쪽에서 다시 넘어가려고 하는 그 아크파크 씨다.
뫼비우스의 띠! 아크파크 씨의 시간은 계속 회전할 것이다.
3편에서 시간의 띠를 계속 돌고 돌았던 것처럼, 이제는 꿈의 띠를 돌고 돌 차례다.
사실이 반사되든, 결과가 반사되든 모두 똑같았다.
꿈속의 사내가 말한 것처럼 이 게임에선 이길 수도, 질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아크파크 씨가 감당해야 할 것 그 자체다.
그러니 이 책의 전체 제목과도 통하지 않는가.
꿈의 포로 아크파크, 네번째 이야기 '끝의 시작, 시작의 끝'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