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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자 - The Conspirato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865년 4월 14일, 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마무리가 되어가던 즈음,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극장에서 암살된다. 대통령 암살에 가담한 8명의 음모자 중 한 명은 그들에게 장소를 제공한 셈이 되어버린 여관 여주인 메리 서랫이다. 남부 출신의 그녀는 남편을 잃고 딸과 아들과 함께 여관을 꾸려나가던 중이었다. 정부측 증인들은 그녀가 암살에 가담했다며 증언을 하고 있고, 정작 암살 음모에 한 축이 되었던 그녀의 아들은 도주한 상태다. 군사재판이 열렸고, 피고측 변호인으로 프레데릭 에이큰(제임스 맥어보이)이 지정된다. 그는 전쟁 영웅으로 변호사지만 아직 재판 경험은 없다. 대다수의 국민들처럼 그 역시 대통령의 암살에 큰 분노를 느끼고 있었고 피고인의 변호를 맡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변호사로서의 본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맡았지만 초기의 그는 경멸을 가득 담은 채 피고인을 바라볼 뿐, 그 안의 진실에 다가서지 못했다.
(이 사진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삘이 난다.)
허나, 재판이 계속 진행되어 가면서 정부 측 증인들이 위증을 하고 있지만 판사와 검사 모두 그걸 덮어두고 있으며 자신이 내세운 증인조차도 정부측 압력에 의해서 증언을 바꾸는 일이 생기자 에이큰은 중요한 본질이 왜곡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피고 메리 서랫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그녀에게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아들이었다. 그 아들이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자신이 살고자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누이 안나도 동생을 감싸느라 처음엔 진실을 감추고 얘기하지 않는다.
여주인공 역을 맡은 로빈 라이트는 무척 절제된 연기를 잘 해내었는데, 언뜻 보고는 '피아노'의 주인공으로 착각했다.
동생과 엄마 사이에서 갈등을 겪은 딸 안나. 엄마와 분위기가 닮아 있다. 눈매가 강단있어 보인다.
이 재판은 에이큰에게 몹시 불리한 것이었다. 이기면 공공의 적이 될 것이고, 지면 그의 경력에 큰 흠집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보다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 자신을 내던진다. 이런 그를 친구들과 애인, 그리고 정부측 인사들 모두 말린다. 국민들이 사랑하는 대통령이 비참하게 죽었고, 그 범인들이 현재 눈앞에 있다. 모두의 눈에 복수의 불꽃이 일렁이고 있는 시점이다. 메리 서랫의 집은 공공연히 테러를 당하고 있고, 에이큰은 사교계에서 자격 박탈을 당하며 보이콧 된다. 사랑하는 여인도 그에게서 신뢰를 거두어 가고 있다. 더불어 재판 역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분명히 모든 증거는 메리 서랫이 대통령 암살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가 전쟁에서 지키고자 했던 가치는 인권이었다. 헌법에서 분명히 명시한 그 인권은 누구에게라도 공통으로 지켜져야 마땅했다. 메리 서랫 아니라 총을 직접 쏜 존 부스라고 할지라도 부당한 재판을 받아서는 안 되었다. 복수 그 자체가 정의는 아니니까. 지금 하나의 희생자를 내어서 잠시 속이 시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인류의 진보에 장애가 된다는 걸 우린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 번쯤 질문하게 된다. 피의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서 말이다. 누구라도 자신이나 혹은 가족이 연루된 사건이라면 진실을 눈감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저 사람은 욕 먹어 마땅해, 혹은 죽어 마땅해 이러면서 말이다.
영화는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게 하면서 차분하게 진행된다. 이 세기의 재판은 미국 역사에 또 한 줄을 그었으니 전시 중에라도 마땅히 보호해야 할 인권에 대해서 한 발자국을 나아가게 만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의 이름이 나오는데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감동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급하게 고른 영화여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기막히게 운이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온 노래가 참 좋았는데 아직 ost 정보가 없어서 노래 제목도 모르겠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음악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데, 그래서 마지막에 영화가 다 끝나고 흘러나오는 노래에만 집중하게 된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작년에 본 '원티드'에서 처음 알게 된 배우다. 그 사이 일 년 동안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과 'X맨'에서 그를 또 만났다. 제법 다작을 하는 듯하지만, 그래도 영화 고르는 눈이 있는 배우인가 보다. 앞으로도 그의 선택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