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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포로 아크파크 3 : 프로세스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절판
세상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서 정교하게 돌아간다.
그래서 때로 아주 미세한 오작동이 뜻하지 않은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미묘한 변화, 미세한 균열, 그것이 아크파크 씨에게도 일어났다.
그의 시간이 침입을 받은 것이다. 바로 그 자신으로부터 말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크파크는 침대에서 쿵! 떨어지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의 세계는 언제나 주거 위기가 심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법에 의해서 그에게 동거인이 생겼다.
그처럼 침대에서 잠들지 못하고 벽장 속에서 잠이 드는 사내.
불편하지만 불편을 내색할 수 없고, 그런대로 살 만하다고 여기는 두 사람이다.
문제는 그 동거인이 아니라 자신의 침대에서 자신처럼 일어나버린 아크파크 씨다.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차린 늦게 나타난 아크파크 씨.
벽시계는 3시 16분인데 현재 시각은 사실 2시 50분이었던 것이다.
앞서의 빠른 시간에 맞추어 공장의 호출에 나가버린 아크파크 씨.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버린 늦게 일어난 아크파크 씨가 먼저 떠난 아크파크를 따라잡이 위해 총알 택시를 탄다.
심각한 거주 위기는 도로 사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하나의 줄을 도로처럼 사용하는 사람들.
택시는 남의 집 식탁 위를 우회로로 사용하기도 하고
외줄 사이에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곡예를 펼치기도 한다.
증권거래소에 붙은 간판은 '투기하여라'
섬뜩한 문장이다.
주식시세가 일제히 떨어져버렸는데, 그 주식의 이름들이 놀랍다.
의지/충성/정직/용기/인내/올바름/관용
자비/겸손/솔직함/너그러움/소박함/노력/신실
조국/가족/일/연대/나눔/자질
이 중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나눔'과 '연대'다.
역시 섬뜩한 일이다.
공장은 42차 5개년 계획의 실현 무대였다.
그 계획은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생활 공간인 꿈을 통제하겠다는 야무진 목표를 안고 출발했다.
심각한 거주 위기가 이제는 꿈의 공간마저도 침범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장의 주된 기능은 꿈을 제조하는 것.
도시형 문제들(무단 결근, 공격적 행위 등)을 일으키는 스트레스와 좌절에 대응하기 위해서란다.
놀라운 주객전도다.
원래 먼저 출발한 아크파크 씨는 단순 재진을 위해 3시 30분까지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빨라진 그의 시간 때문에 그는 3시 10분에 진료받기로 되어 있던 요주의 환자로 착각된다.
이 환자는 천장 증후군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오인받은 아크파크 씨는 천장 꿈을 강제로 주입하는 수술을 받게 된다.
이어서 그에게 펼쳐지는 천장 악몽!
눈을 떴을 때 그의 침대 위로는 천장이 보이지 않았다.
훤히 뚫려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천장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쫓아 올라가자 온통 새장처럼 똑같은 빵으로 나열된 공장같은 집에 서 있는 자신을 만나고 만 아크파크 씨.
잃어버린 꿈을 찾기 위해서 계속 빙빙 돌고 마는 아크파크 씨다.
이곳에서 길을 잃은 사람은 아크파크 씨만이 아니다.
모래장수 아저씨는 회오리를 찾고 있다고 했는데 아크파크 씨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리저리 휘둘리고 안내를 찾아 헤매고 또 길을 잃고를 반복하다가 어떤 원심력에 의해 자신이 중심으로 당겨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아크파크 씨.
드디어 회오리를 만난 것이다!
매 권마다 하나씩 놀라운 편집과 연출로 독자를 놀래켰는데, 이번엔 그것이 회오리의 차례였다.
나선형 회오리가 달려들어 주인공을 끌어당기는데, 그것이 3차원 종이로 연출이 된 것이다.
바로 뒷장과 연결된 그림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뒷장의 그림은 실사 사진과 합성이 되어 있다.
아크파크 씨의 모습을 한 모래 조각상 사이에서 헤매던 아크파크 씨는 정신 없이 도망치다가 자신이 방금 전까지 지나쳐온 그 만화 세계에 닿고 만다.
앞서 자신이 마주쳤던 잠깐의 까메오(?)가 곧 자신임을, 그러니까 시간이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아크파크 씨.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 이야기의 뒷부분을 찾아 간다.
그렇게 하면 이 악몽같은 꿈에서 깨어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행히 꿈에서 깨어난다. 자신의 침대 위에서...
하지만 이번엔 앞서 늦게 일어났던 아크파크 씨가 되어 있는 자신을 알아차린다.
아까의 아크파크 씨가 지금의 아크파크씨와 역할이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까 자신을 말렸던 아크파크 씨처럼, 이번엔 늦게 일어난 아크파크가 되어버린 그가 먼저 일어나 공장으로 떠나려는 아크파크를 붙잡지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제 손길을 뿌리치고 떠나버린다.
필시 그도 자신처럼 수술대 위에 오를 것이고, 꿈의 세계를 방황하다가 이 침대 위에서 다시 뒤바뀔 것이다.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림보의 세계가 연출된 것.
이 정도면 만화판 인셉션이랄까.
마지막 컷처럼 표지의 그림처럼 나선형으로 회오리 치면서 강한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연출이다.
작가의 천재적 연출에 권을 넘길수록 더 혀를 내두르게 된다.
꿈의 포로 아크파크라는 전체 표제에도 딱 알맞는 내용이었다.
당신의 세계에서는 이런 프로세스에 갇혀있지는 않은가?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아닐지라도 분명 스스로 깨기 힘든 악순환의 고리를 분명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깨고 싶은 꿈, 꾸고 싶지 않은 꿈 속에서 꿈의 포로가 된 서로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