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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병과 들국화 ㅣ 마음이 예쁜 아이들이 사는 세상
남미영 글, 정수영 그림 / 세상모든책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책이 주는 장점이 많이 있지만 내가 유독 높이 사는 장점은 중요한 이야기를 쉽게 이야기해 준다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더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하기 마련이기에 쉽고 간결하게, 그렇지만 강렬하게 설명해주는 힘이 있다. 그걸 해내지 못하면 좋은 그림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무척 좋은 그림책이다. 소년병을 통해서 한국 전쟁의 참상과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을 잘 표현해 내었으니까.
어린 소년병은 국군이었다. 사흘 간 뺏고 빼앗기는 모진 전투가 끝나고 남은 총알은 그의 총에 들어있는 단 한 발 뿐이다. 상대방에게서도 총격이 중단되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야겠기에 정탐꾼을 보내야 했고 소년은 자원했다. 가야 하는 길목에 제 고향 집이 있기 때문이다. 피난을 떠난 어머니는 자신이 돌아올 것을 알았는지 비밀 몰래몰래 손가락으로 찍어 먹곤 했던 꿀단지 밑에 편지를 남겨두셨다. 소년의 마음에 파문이 인다. 원래 북쪽이 집이었던 소년은 공부하러 남쪽에 왔다가 전쟁이 나서 군인이 되었던 것이다.
언덕을 기어서 높다란 나무 둥지까지 가는 그의 눈에 들국화가 밟혔다. 어머니가 개울가에서 빨래하고 돌아오실 때에 옷섶에 단추처럼 꽂고 돌아오시던 그 들국화. 소년병은 자신의 철모에 들국화를 꽂아놓는다.
또 다른 군인이 있다. 그는 인민군이다. 고향이 남쪽인 그는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들국화로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했던 설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한데, 약혼녀를 두고 의용군에 의해 강제 징용되었다. 그도 갑작스레 중단된 교전에 상대방 진영을 정탐하고자 언덕을 오르다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들국화 한송이를 철모에 꽂았다. 추억에 너무 젖었던 탓일까. 나무 위로 오르던 그는 귓가를 스치는 장전 소리에 덜컹 놀라고 만다. 먼저 나무 위에 올라서 주변을 살피던 소년병과 맞닥뜨린 것이다.
아직 한참 앳된 얼굴.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과 또래의 모습이다. 원래 남쪽 출신이던 그로서는 남쪽 군복을 입고 있는 소년이 자신의 적이 아니라고 여기지만 설명할 도리가 없다.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이다.
이런 일촉즉발의 순간에 총성이 울리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들국화 때문이었다. 서로에게서 발견한 들국화가 서로의 추억을 건드렸고, 서로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북쪽 병사는 주머니에 가득 담아온 산딸기를 남쪽 소년병과 나눠 먹었다. 서로 가야할 곳이 달랐던 그들은 각자의 고향 가족에 소식을 전해주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렇게 살벌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았을 사람들인 것을, 아프고 아픈 일이다. 이 책의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엮은 것이다. 어디까지 직접 겪은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적군을 그렇게 놓아둔 채 헤어진 사실을 그때 당시에는 밝히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오래 가슴 속에 묻어야 했을 비밀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도 때로 그렇게 감출 수밖에 없는 비밀이 되는 것이다.
결코 꾸미지 않고 결코 뽐내지 않는 저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들국화처럼 우리가 있는 그대로 빛날 수 있을 텐데, 그래야 마땅한데 아직은 멀고 멀어서 안타깝다. 저렇게 맞잡은 손이 따뜻함을 알아차려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