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반양장)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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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는 아이가, 말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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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오명랑의 이야기 듣기 교실- (7쪽)

 
   


저런 광고 문구로 작품이 시작된다. 칠 년 전에 동화작가로 등단했지만 그 후 완벽하게 잊혀진 작가 오명랑, 일이라도 좀 하면서 글쓰라는 식구들의 구박을 받다가 찾아낸 일거리가 바로 '이야기 듣기 교실'을 여는 것이다. 직접 아파트에 광고지를 붙여가며 어린이들을 모집했는데 들어오는 문의 전화는 모두 엄한 내용들이다. 

"거기 혹시 웅변 교실인가요?"
"논술 과외 하는 곳인가요?"
"이야기 듣기 교실이 뭔가요?"
"거기, 뭐 하는 뎁니까?" 

그렇게 답답한 전화를 받다 보니 오작가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해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각종 다양한 이야기들이 떠올랐지만 첫 시간에 마음을 여는 이야기를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간 이야기 한 자락! 바로 작가 자신의 가슴에 깊이 박힌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너무 소중하고, 또 지나치게 아팠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집으로 찾아온 아이는 셋이었다. 5학년 나경이는 동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인 아이였고, 역시 5학년인 종원이는 성격이 하도 급해서 어머니가 보내셨고, 동생인 1학년 소원이는 가는 길에 딸려보낸 느낌이었다. 아무튼, 조촐하지만 그렇게 세 아이를 두고서 이야기 듣기 교실이 시작되었다. 제목은 '그리운 건널목 씨' 

건널목 아저씨가 아리랑 아파트 후문 앞에 나타난 것은 쌍둥이 형제가 무단횡단을 하려던 찰나였다. 아저씨는 쌍둥이들을 말린 다음 배낭 속에서 둘둘 말린 카펫을 꺼내어 바닥에 펼쳤다. 카펫은 건널목 무늬가 그려져 있어서 순식간에 폭신폭신한 길이 되고 말았다. 아저씨가 쓴 모자는 빨강색과 초록색 원이 그려져 있어서 흡사 신호등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이때부터 건널목 아저씨가 하는 일은 도로 가운데에 건널목을 만들고 중앙선에서 운전자들에게 신호를 보내며 보행자와 운전자에게 신호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후 건널목이 먼 아리랑 아파트 앞에 선 인간 신호등과 카펫 건널목은 명물이 되었다. 수줍고 착하게 생긴 아저씨는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비어 있는 경비실에 조촐한 보름자리를 마련하게 되었고 아파트 주민들의 낮과 밤을 도와주는 좋은 이웃이 되었다. 쌍둥이 형제에게도 그랬고 부모님이 싸우실 때마다 아파트 밖으로 나와서 오돌오돌 떨던 도희에게도 그랬다.  

알고 보니 아저씨의 아내 분은 쌍둥이 아이들을 낳다가 죽어버렸고, 쌍둥이 아이들은 무단횡단을 하다가 한꺼번에 잃고 말았던 슬픈 사연을 가진 분이셨다. 늘 아이들을 데려다 주었는데 딱 하루 데려다 주지 못한 날에 그런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 후로 아저씨는 건널목이 없어 위험한 길목에서 교통 정리를 하며 아이들을 돕는 일들을 해왔던 것이다.  

오작가는 일주일에 세 번씩 두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해주었고, 아이들은 집중해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가 꿈인 나경이는 마치 기자라도 되는 양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고, 말썽쟁이 종원이는 얄밉게 대꾸를 해서 뒷통수를 한 대 치고 싶게끔 만드는 매력을 지녔다. 어린 소원이는 순수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좋은 청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부엌에서 지켜보시는 오작가의 어머니는 내내 불편한 마음 뿐이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그녀 가족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좀처럼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는 법. 오작가가 그랬던 것이다. 그녀가 꺼내어 놓는 이야기는 그녀 자신과 어머니의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의 과정이 되었고 서로가 화해하고 용서하는 다리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 사람, 정말로 찾고 싶은 그리운 건널목 아저씨의 행방을 독자들도 내내 궁금하게 만든다.  

오작가는 이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인지, 혹은 가상의 이야기인지 다 듣고 난 다음에 맞춰보라고 했지만, 아이들도 이야기 속 실제 주인공이 하나씩 나타나자 이 이야기의 숨은 뜻을 눈치 채기 시작한다. 답은 알아차렸지만 여전히 이야기는 궁금해 한다. 건널목 아저씨의 도움으로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겨우겨우 보냈던 태석 태희 남매의 이야기 말이다.  

엄마 아빠의 부재 속에서 어린 남매는 세상의 무서움과 비정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 추위는 영혼을 얼릴 만큼 강렬해서 오랜 시간이 흘러도 깊은 상처로 남아 가슴을 콕콕 찌르곤 했다.  

사람들은 지하가 지상보다 더 시원하다는데, 그 집은 미치도록 더웠어. 여름에는 땀띠가 두드러기처럼 온몸에 돋았다니까. 그래도 태석이와 태희는 창문을 열지 못했어. 창문으로 보이는 발들이 너무 무서웠거든. 저벅저벅 걸음 소리, 끼익! 오토바이 멈추는 소리...... 아빠가 돌아가신 것보다, 엄마가 떠난 것보다, 창밖에서 들리는 그런 소리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어. – 130쪽

"거지 거지 땅거지! 또랑 건너는 쥐새끼. 한 푼 줍쇼!"
그랬어. 태석이와 태희는 한 번도 구걸한 적이 없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노래를 불렀어. 아이들은 알고 있었지. 놀리고 놀려도 달려와 혼내 줄 부모가 없다는 걸. 태석이와 태희도 알고 있었어. 같이 싸워도 혼나는 건 늘 자신들이라는 걸. 아이들이 잔인하게 놀리고 괴롭혀서 싸웠는데, 태석이 얼굴도 까지고 퉁퉁 부었는데, 부모들은 태석이만 혼냈어. 태석이한테 동네 깡패라는 거야. 그건 혼낸 게 아니야. 어른들까지 찾아와서 괴롭힌 거지. 그래서 태석이는 엄마를 기다렸어. 처음에는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언제부턴가는 나서서 싸워 줄 엄마를 기다린 거야. 어른이 따지러 오면 어른이 나가 주는 집,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지. 무조건 자식 편인 부모가 있는 집, 그런 집 말이야. – 145쪽 

그러니까 이 작품은 일종의 액자식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오작가가 아이들에게 이야기 듣기 수업을 하는 이야기 하나와, 그때 들려주는 건널목 씨와 그의 사랑을 받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축을 이룬다. 몹시 슬픈 이야기이지만 또 몹시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였다. 작가의 마지막 질문처럼 나도 똑같이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건널목 아저씨는 사랑을 심어주고, 아이들에게 안도의 미소를 심어주고는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심어놓은 그 사랑의 씨앗이 어느덧 무성한 가지를 자랑하는 나무로 자라버렸다. 그 사람을 영원히 추억하는 아름다운 나무로 말이다.  

꽤 심각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지만 곳곳에서 캐릭터의 특성을 살린 유머가 긴장을 팍팍 덜어주었다. '문밖동네'라는 출판사에서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라는 동화를 썼다는 오명랑 작가. 이는 김려령 작가가 문학동네에서 낸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의 변형이다. 띠지에도 같은 문구가 있는데 바로 전작은 '우아한 거짓말'이지만, 이는 타 출판사 책이니 그보다 훨씬 전에 출간한 책 제목을 뽑았어야 했을 것이다. 

히트작이자 출세작이었던 '완득이'에서도 캐릭터의 생동감이 무척 빼어났었다. 작품의 서사보다도 캐릭터의 힘이 더 컸고,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바람직한 결말의 구성이 약간 맥을 빼게 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야기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캐릭터도 훌륭하고 그들의 사연도 구구절절하지만, 어쩐지 그런 결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역으로 엮어낸 서사 같다는 느낌이랄까? 태석이와 태희, 그리고 도희의 이야기를 해내기 위해서 꼭 '이야기 듣기 교실'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게 목표인데, 그 실마리를 풀어주기 위해서 가져온 설정이 덜 자연스럽다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고발하는 엄마 아빠 없는 아이들의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짙은 서러움이 잘 표현되었고, 어리고 무지하다는 것을 핑계로 아이들이 또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확인도 가능했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에게 '건널목 씨'와 같은 의지처가 되어준다는 것,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벅찬 감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 사람을, 너와 내가 먼저 되어보는 상상을 해본다. 벌써부터 가슴이 따뜻해지지 않던가?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않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이 번쩍 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 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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