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소나무와 굴뚝새 동화가 좋은 친구들 3
권정생 외 지음, 김혜영 그림 / 여우오줌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권정생 선생님의 단편을 모은 건줄 알고 읽었다가 어째 느낌이 좀 다르네? 하고 살펴보니 권정생 외 글이라고 적혀 있다. 모두 네 편의 이야기가 각기 다른 작가님에 의해 쓰여졌다. 이주홍 선생님은 1906년생인데, 권정생 선생님은 1937년생, 그리고 조장희/이준연 선생님은 모두 1939년에 태어나셨다. 모두 우리나라 동화책의 스승님들이시구나.  

첫번째 이야기는 표제작 늦가을 소나무와 굴뚝새다. 가을이 되자 모두 울긋불긋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었건만, 사시사철 푸른 옷만 입고 있는 것이 불만스러운 소나무가 주인공이다. 숲속 친구들이 알려주기를, 소나무가 늘 푸른 옷을 입는 것은 아주 오래오래전 소나무의 큰 조상님이 무척 고집스런 분이었기에 늘 푸른 옷을 입고 있는 거라고 했다. 이때의 고집은 그냥 똥고집이 아니라 의리와 절개를 뜻한다. 소나무는 아직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다가 모두가 겨울을 나러 떠난 뒤 홀로 남은 굴뚝새에게 자신이 큰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고집센 할아버지를 닮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가 딱 권정생 선생님 스타일이다. 그게 너무 정형적이어서 두 번째 작품의 유머와 해학과 비교가 되어 다른 사람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이주홍 선생님의 '가자미와 복쟁이'다. 두부 장사를 하는 가자미와 기름 장사를 하는 복쟁이는 앞뒷집에 사는 친구지만, 무늬만 친구이고 서로의 집에서 상대 물건을 외상으로 갖고 와 절대 갚지 않는 욕심쟁이들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서 더 큰 손해를 입힐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만 물난리가 났을 때에 사고를 일으킨다. 그 바람에 가자미는 몸이 잔뜩 납작해지고 복쟁이는 몸이 뚱뚱하게 불어버렸다. 복쟁이가 뭘까 검색을 해보니 '복어'의 의미 같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나무 물고기와 가재와 개똥벌레 등등이 왜 지금의 그 모습으로 남아있게 된 것인지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가는 이야기들이다.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바로 조장희 선생님의 '게가 되고 싶은 새우'다. 이 이야기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게가 되고 싶었던 새우는 커다란 집게발을 갖게 되어 몹시 우쭐했지만, 게 사회에서도 새우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개울 바위 그늘에 숨어 지내게 된 이야기이다. 어릴 적에 읽었던 기억이 뚜렷이 난다.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남을 부러워하고 비교만 하다가 오히려 큰 손해를 본 이야기인데, 그래도 나름 자신이 매력적이라 여기는 부분에 투자를 해서 성공한 것인데 어째 가재가 된 새우가 불쌍하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는 '들국화와 반딧불이'다. 길섶에 핀 들국화가 너무 고와서 곤충들이 모두 공주처럼 떠받들었다. 반딧불이는 특이하게도 들국화를 밤하늘의 별님으로 생각했다. 풀숲 곤충들 사이에서는 외톨이였던 반딧불이가 들국화가 친구가 되는 장면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별을 사랑하지만 달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슬픈 반딧불이의 이야기도 함께 나온다.  

자연 속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생기 있게 잘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그림이 글과 아주 잘 어우러져 있다. 네 명의 작가가 글을 썼지만, 통일된 분위기의 그림이 작품들을 더 하나의 주제로 묶어준다.  

문득, 바로 기억해내지 못하지만 기억 언저리에 남아있는 이야기 보따리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나 궁금해졌다. 이런 식으로 불현듯 떠오르는 조각까지 합하면 무수한 이야기들이 한데 엉키어 있을 것이다. 가끔씩 그것들을 풀어서 하나씩 꺼내놓을 때면 반갑고 즐겁다. 나이가 들수록 선명도는 떨어질 수 있지만, 그 풍성함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이야기 보따리가 내 안에 가득 들어왔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이렇게 곱고 예쁜 이야기들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