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한때 꽤 잘 나가는 극단이었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연극을 못 세우고 시간이 흘러버린 극단 명우. 그 명우의 홍보 직원이자 극작가인 장유안은 얼마 뒤 자신의 첫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되어 있었다. 인생의 제법 중요한 순간이었던 그때에 극단의 살림을 책임지던 실장이 사라져버렸고, 그녀는 졸지에 실장 임무까지 맡게 되지만 극단 식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5년 동안 사귀어 온 남자 친구는 이렇다 할 직업은 갖지 않은 채 아르바이트로 연명 중이었고, 두 사람은 만나서 밥 먹고 모텔을 찾는 순서만 되풀이하며 서로의 감정을 소모시키고 있었다.  

한편 극단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동료 작가는 알고 보니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때도 글을 잘 써서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그 친구 앞에서 십여 년이 지났건만 주인공 유안은 여전히 열패감을 느낀다. 

위장이혼을 했던 아빠는 따로 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생겼다며 영영 엄마와 헤어져버렸고, 언니 재영은 동호회에서 만난 싱글맘과 전세금을 반씩 부담하며 동거 중이었다. 엄마는 재영을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려고 무지 애를 섰지만 재영의 결심은 확고했고 그들은 자주 충돌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서로를 원망하며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에 바빴다. 엄마는 재영 때문에 아빠가 집을 나간 것이라고 하고, 또 그런 그들을 보며 유안은 엄마 때문에 아빠와 언니가 모두 떠난 거라고 탓을 한다.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누군들 자기가 가장 중요하고 먼저 생각하는 대상이 아니겠냐만은, 이들은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상대가 지나치다고만 생각한다. 거기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찾을 때도 있지만 머리로 아는 것이 가슴으로 체득되는 것은 아니다.  

왜 항상 우리는 상대보다 더 많은 걸 주고 더 많은 걸 실망하게 되는 것일까. 나의 오랜 친구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너이기 때문에 네가 실망스러운 거라고. - 200쪽 

내가 열을 주었기 때문에 상대도 똑같이 열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관계는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무척 냉랭하게 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제까지의 평정심을 무너뜨리고 만다. 배우인 엄마는 아이의 학교 운동회에 갈 때도 완벽한 메이크업을 고수하는 분이시건만 할머니가 심장 마비로 홀로 계시다가 돌아가시자 헝클어진 모습을 보이고 만다.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할머니의 시골 집에서 딸들과 함께 잠든 날, 엄마는 왜 그동안 할머니에게 냉랭했는지를 고백한다.  

내가 사랑받지 못해서가 아니야. 엄마는 그런 식으로 자꾸 나한테 들켰어. 그럼 털어놓든지. 그게 너무 서운한 거야. 하나뿐인 딸자식한테 친구처럼 터놓을 수도 있었잖아. 부모 노릇도 하고 싶고 자기 사랑도 지키고 싶었던 거지. - 263쪽  

할머니가 마음에 둔 사람은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출산을 하고 몸을 풀러온 딸을 위한 미역국이 아닌 그 사람을 위한 메주가 동동 띄워져 있었을 때 엄마가 느꼈을 노여움은 충분히 짐작 간다. 고백한 대로 감정을 들키면서 자꾸 아닌 척하는 게 서운했을 것 같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가 더 있지 않았을까? 엄마의 1순위, 엄마의 가장 큰 사랑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 말이다. 더구나 외동딸이었으니 그 사랑을 독점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부모 노릇도 하고 싶고 자기 사랑도 지키고 싶었을 거라는 추측도 틀리지 않겠지만, 자식에게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쉽게 꺼낼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할머니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했고,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할머니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도 모두 '나를 더 생각한' 사람들이다. 

언니 재영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딸이다.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것은 말없이 다 사주었지만 재영에게는 왜 그것이 필요한지부터 묻곤 했다. 재영은 아버지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아버지는 재영에게 상의하여 신중하게 골랐다. -248쪽 

재영은 자신이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무심하게 행동했고 그것은 아빠를 서운하게 만들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유안은 집 안에서도 또 열패감을 느껴야 했다.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속으로 생각할 때는 늘 '재영'이라고 이름을 부른 것도 그런 감정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우연히 만난 아빠에게서 빨래 냄새를 맡고 그것으로 현재의 아빠가 자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확인을 하고 싶었던 재영은 아빠의 냄새가 안정된 새 가정의 냄새로 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진짜 이별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밤, 유안은 오랫동안 방치해뒀던 자신의 블로그에 아빠에 관한 글을 쓴다. 

전체 공개, 스크랩 허용, 검색 허용 버튼에 체크하고 글쓰기 저장 버튼을 클릭한다. 아버지를 비공개 카테고리에 넣지 않은 건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바깥, 전체 공개 카테고리에 있는 게 더 나았다. 아버지는 내 블로그에서 깨어나 모락모락 숨을 토해 낸다. new 표시가 달린 아버지 글은 24시간 후에 new를 떼어 버리고 고요히 침잠할 것이다. 내가 컴퓨터를 부팅할 때마다 야금야금 전기를 먹으며 살아나는 내 아버지. 아. 따뜻한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있었던 기억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참 이상하다. 몸이 사라진 곳에서 마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252쪽

나는 이 글을 보면서도 유안이 아버지를 위해서 썼다고 밝혔지만,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로가 필요한 것은 그녀였다. 그리고 이렇게 씀으로써 정리가 되어 그녀가 평안을 찾은 것은 퍽 다행이라고 여긴다. 

등장하는 캐릭터 중 가장 화를 돋우는 인물은 승원이었다. 그가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한 것은 속상한 일이지만, 구하려고 애도 쓰지 않은 것은 더 속상한 일이었다. 공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가 계시지만 그 곁을 도우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속상하다. 제3자가 곁에서 본다면 유안이 왜 그 관계를 지속하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실도 답이 없지만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오늘을 견디며 살아온 연인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   

“어떻게 살래? 이 말이 제일 싫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건 어떻게 살 거냐는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거잖아.” -292쪽 

연극계를 떠나 카페를 차린 한 사장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뭐냐는 질문에 답한 것이다. 나는 저 답이 가슴에 콕 박혔다. 오랜만에 전화 통화하는 사람이 묻는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과 맥락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승원의 열패감도 이해가 가고, 그가 유안에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는 마음가짐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방법이 나빴다. 비겁했고 저열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찌질함을 보태어 더 화가 났다. 유안이 다시 그에게로 가서 주저앉고 같은 패턴을 반복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유안은 승원보다는 건강했고 용감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시를 저평가한 친구의 말을 듣게 된 후 다시 시를 쓸 수 없었던 그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극작가로 일어선 것이 고마웠다. 그것도 배고플 게 뻔한 연극 세계에서 살아남았으니 더 대단하다.  

솔직히 작품은 중간까지는 몰입이 쉽지 않았다. 시각적으로 가장 임팩트가 컸을 레스토랑의 정전 씬은 극적인 상황에 비해 너무 싱겁게 지나갔고, 고교 때 단짝 친구 정민의 자살 소식을 전하는 장면도 무덤덤하기만 했다. 건조한 것도 아니고 무심한 것도 아닌, 뭔가 밍숭맹숭하고 양념이 덜 된 느낌으로 진행되던 소설은 중반을 넘어서면서 긴장감과 궁금증을 같이 자아냈다. 승원이 유안을 밀어내고 난 다음부터일 것이다.  

택시는 쉬이 오지 않았다. 승원의 연락이 오지 않는 휴대전화 액정 화면은 막막하고 맹랑했다. 이토록 작은 세상이 나의 전부를 거머쥐고 있었다. – 224쪽  

휴대전화의 작은 액정 화면에 매달려 그것이 그녀의 온 세상을 지배했던 것처럼, 그 순간에는 독자도 작은 책의 두쪽 화면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서 몰입했다. 클라이막스가 늦게 찾아오긴 했지만, 꾸준히 언덕을 향해 올라갔고, 무리수를 두지 않고 차분히 내려오며 작품은 완성되었다.  

어제까지 내 삶의 중심이 나였던 인물이, 오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내일부터는 나를 향한 사랑을 타자로 옮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람직하다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이제는 나를 사랑하는, 나만 생각하던 나를 조금은 벗어나 그 생각에, 그 마음에, 그 행동반경에 또 다른 사람이 깃들 여지가 생겼다면 그 사람의 삶은 보다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원하던 사랑 곁에 머물 용기를 얻고, 새롭게 다가서는 사랑을 향해서도 좀 더 기꺼이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나만 생각하던 내가, 이제는 나도 생각하는 나로 바뀔 때가 되었다. 그런 나를 응원하는 나를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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