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5 호/2011-05-16
레이저 발사하는 횡단보도가 있다?
“공상과학(SF) 영화에 나오는 미래사회를 보는 것 같다”, “조명쇼를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에 설치된 게 맞나요?”

최근 인터넷에서 횡단보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설치된 ‘발광다이오드(LED) 횡단보도’ 시설물을 사진으로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이다. 이 시설물은 2010년 5월 19일 ‘발명의 날’을 맞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LED 횡단보도’를 발명한 사람은 광주시 남구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박광만(42) 씨다.

어느 날 신문기사를 읽던 박 씨는 보행자 교통사고의 절반 정도가 횡단보도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특히 해가 뜨기 전 새벽이나 해가 진 저녁 시간에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교통사고 소식에 가슴이 아팠던 그는 ‘운전자에게 횡단보도를 밝게 비춰주면 보행자 사고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순간 며칠 전 책에서 본 ‘필라멘트 전구와 형광등, 할로겐램프와 달리 LED 전구의 빛은 직진성이 강하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박 씨는 “유레카”를 외쳤다. 전구의 밝기가 세더라도 빛이 사방에 분산된다면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부추길 수 있다. 반면 LED 전구의 빛은 주변에 분산되지 않고 레이저처럼 빛이 직진하는 성질을 지녀 하얗게 칠해진 도로의 무늬만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IT 기업들을 수소문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줄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찾아 나선 것이다. 박 씨는 기업 측 연구원을 만나 LED 전구가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횡단보도가 잘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해 꼼꼼히 물어봤다.

박 씨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탓에 LED 전구와 같은 전자공학에 대한 지식은 많지 않았다. 구청에서 담당하는 일도 과학기술과는 무관한 ‘경제과’. 현재 그는 일자리 창출 관련 주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만큼 시제품이 나오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제가 이공계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지 발명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주변에선 ‘쓸데없는 공상’으로 여기기 일쑤였죠. 하지만 발명은 ‘지식’이 아닌 ‘관심’에서 생겨납니다. 언제나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면 누구나 발명을 할 수 있습니다.”

발명에 관심이 많은 그는 이제껏 수천 건의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물론 대부분은 메모 수준에 불과하지만 박 씨는 ‘교통사고 예방’을 주제로 관련된 서적을 찾아 읽으며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 끝에 ‘LED 횡단보도’가 탄생한 것이다. 보통 횡단보도 양 끝에 4개의 LED 조명장치가 1기로 짝을 이룬다. LED 조명장치는 크게 발광부, 발열장치, 제어장치, 알루미늄 합금구조물(외형) 등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발광부는 LED가 내뿜는 빛의 강한 직진성을 약화시켜 횡단보도를 걷는 보행자가 눈부시지 않도록 특수 광학렌즈를 사용했다. 이와 함께 CCTV가 내장돼 어두운 밤에도 선명한 화질의 영상을 얻을 수 있어 혹여 있을지 모를 뺑소니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발열장치는 LED 전구에서 나오는 열을 식혀주는 부분이다. 해가 지면서부터 해가 뜰 때까지 오랜 시간 자동으로 작동하는 LED 조명장치의 내부가 과열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이다.

제어장치는 횡단보도에 설치된 신호등과 연계해 어두운 밤 시간 내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시간에만 작동하도록 조절할 수 있다. 그만큼 전기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LED는 전력소모가 백열전구의 12분의 1정도로 매우 적어 효율성이 높다.

현재는 광주 남구 보건소 앞, 봉선동 어린이집 앞, 유안초교 후문, 제석초교 후문 양촌마을 입구 등 11곳에 총 44기가 설치됐다. 제품이 설치된 공간에서 실효성이 검증됨에 따라 부산과 대전, 전북 전주, 정읍, 전남 무안 등지에서도 시범적으로 설치되고 있다.

현재 2건의 특허를 출원한 박 씨는 “생활 속의 불편을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을 개선하려는 의지와 자신의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야간 교통사고가 빈번한 건널목에서 중앙선이나 보도블록을 야광페인트로 코팅하는 것도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쉽게 인식하도록 도와줄 것”이라며 “이처럼 일상에서 쉽게 얻은 아이디어로 특허를 출원했다”고 설명했다.

20세기 천재 물리학자로 손꼽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8건의 특허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생활 속의 불편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은 파이프 담배를 좋아해서 보트를 타다가 물에 빠졌을 때도 담배를 놓지 않았다. 여기서 착안해 발명한 것이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회전 나침반이다. 또 헝가리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와 함께 소음 없는 냉장고와 빛의 양을 자동으로 계산해주는 자동노출카메라를 개발해 특허를 획득했다.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하고 오래된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다루기 위해서는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며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발전하는 과학기술 지식이 아니라 SF 소설을 쓸 수 있는 상상력이 아닐까?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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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5-1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왕이면 저 선을 넘어가는 차들을 레이저가 "지져" 버리는 효과도 함께 있었으면 대박일텐데...

마노아 2011-05-16 11:18   좋아요 0 | URL
오, 달달달 데워지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후덜덜 합니다. 이름값 하시는 메피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