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에게 물을 (양장)
새러 그루언 지음, 김정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2월
절판


"벌써 점심시간이야? 방에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로즈메리가 시계를 본다. 바늘이 있는 진짜 시계다. 디지털 시계는 한때 유행하다 사라졌다. 천만다행이다. 뭔가를 만들 줄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언제나 깨달을까?-295쪽

"나이를 먹다 보면-얀콥스키 씨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 얘기에요.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요. 아무튼, 나이를 먹다 보면,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 오랫동안 소망해온 것이 진짜처럼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그것을 진짜라고 믿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정말로 인생의 일부가 되잖아요. 그런데, 남들이 거짓말 말라고 다그치면-나는 상처를 받겠지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다 잊어버려도, 누가 나더러 거짓말쟁이라고 하면 절대 잊을 수가 없겠지요. 얀콥스키 씨의 말대로 맥긴티 씨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맥긴티 씨가 왜 화가 나셨는지 이해할 수 있으시겠지요?"-298쪽

"그런 유태인 새끼는 쓸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입 조심해!" 내가 소리친다.
월터가 말을 멈추고 나를 쳐다본다. "대체 왜 그래? 이봐, 너는 유태인도 아니잖아? 유태인이야? 이런,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다들 하는 욕이잖아." 그가 말한다.
"그래. 그냥 다들 하는 욕이야." 나는 고함을 지른다. "다들 하는 욕인데, 나는 다들 하는 욕에 아주 질렸다고. 배우는 일꾼에게 욕을 하고, 일꾼은 폴란드 사람에게 욕을 하고, 폴란드 사람은 유태인에게 욕을 하고. 난쟁이는-자, 말해 봐, 월터. 그냥 유태인과 일꾼이 싫은 거야? 아니면 폴란드 사람이 싫은 거야?"
월터가 얼굴을 붉히며 바닥을 내려다본다.
"싫어하지 않아. 싫어하는 사람 없어." 잠시 후에 덧붙인다.-355쪽

나는 쓸쓸하게 사십팔 호 차 창문을 바라본다. 우리에게 코끼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말레나에게 어떻게 꺼내야 할는지. 난감하다. -520쪽

"굉장했지. 맞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나. 제길, 어제 일은 기억이 안 나도, 그때 일은 기억나."-535쪽

그 당시 뉴욕의 공식적인 사형집행 방법은 전기의자였다. 교수대에서 전기의자로 바뀐 건ㅅ이었다. 톱시가 목이 매달리는 대신 감전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소동을 멈추었다.
첫 번째 처형은 실패로 돌아갔고, 두 번째 처형은 성공했다. 톱시가 청산가리를 섞은 당근을 먹은 것이 첫 번째 처형 때였는지 두 번째 처형 때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에디슨이 처형장에 영화 카메라를 들고 온 것만은 확실하다. 에디슨은 톱시의 네 발에 샌들을 신기고 구리 전선으로 잡아맸다. 그러고는 육천육백 볼트의 전류를 연결했다. 오천 명이 넘는 구경꾼이 보는 앞이었다. 에디슨은 이 실험을 통해서 교류 전기의 위험성이 증명되었다고 믿었으며, 전국 각지를 돌며 이 필름을 상영했다.-549쪽

제이콥은 로지(코끼리)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코끼리는 지상에서 가장 몸집이 큰 동물이자, 상당히 똑똑한 동물이다. 거울에 비친 자기를 알아보는 동물은 인간, 원숭이, 돌고래, 그리고 코끼리뿐이다. 가죽도 꽤 두꺼워서(2.5cm), 서커스단 동물 감독 오서스트가 갈고리로 마음껏 찍어도 생명에는 지장 없다. 한편, 코끼리는 술을 좋아하고 복수심이 강한 동물이다. 1998년 12월, 1999년 10월, 2002년 12월, 인도에서는 불만을 품은 코끼리들이 마을을 쑥대밭을 만드는 사건이 있었는데, 최소한 몇 마리의 코끼리는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끝으로,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인데, 그것이 코끼리의 잘못은 아니다.-553쪽

소설의 주인공 제이콥은 지금 아흔 살 혹은 아흔세 살의 노인이다. 자신의 나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나이, 정확히 말해서, 올해가 몇 년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나이. 더 정확히 말하면 알 필요가 없는 나이. 내가 있길 기대하며 거울을 볼 때마다 웬 낯모를 노인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곤 하는 나이. 희미한 눈동자 뒤에서 아무리 열심히 나의 흔적을 찾으려 해봐도 소용없는 나이. 야단맞는 것에 익숙해지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데 익숙해지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나이. 온전한 정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 되는 나이. "이제부터 내리막길이야. 금방 끝이 나겠지만. 그래도 끝까지 정신만은 온전하길 바랐는데. 정말 바랐는데."-554쪽

노인 제이콥은 한탄한다. "사실 이제 내 진부한 이야기를 가지고는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 그것을 그들의 잘못으로 돌릴 수도 없다. 내가 겪은 이야기는 모두 다 유행이 지났다. 나는 스페인 독감, 자동차의 첫 등장, 일이차 세계대전, 냉전, 게릴라전, 스푸트닉을 직접 경험했고 그에 대한 경험담을 들려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봤자 이 모든 것은 이제 오래전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한테는 오래전 이야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제 더이상 새로운 경험을 할 가능성이 없다. 그게 바로 늙는다는 것의 실상이다. 그게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나는 아직 늙고 싶지 않다."-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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