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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 ㅣ 돌개바람 3
유은실 지음, 전종문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멀쩡한 이유정’으로 배꼽을 잡게 했던 유은실 작가는 ’우리 동네 미자씨’로 내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책 ’우리 집에 온 마고 할미’는 그 두가지 감정을 모두 갖게 했다.
사건의 시작은 도우미 할머니가 집에 오시면서부터였다. 엄마는 결혼 기획 전문가 일을 하시느라 집안 일은 통 안하시고(못하시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아빠가 집안 일을 더 잘했다. 하지만 그 아빠도 이젠 집안 일을 하기 싫어하시게 되어서 도우미 할머니가 오시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세 가지를 지킬 것을 당부(명령)하셨다.
첫째, 내 방에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서 내 물건 뒤지는 사람이 제일 싫어. 할머니 방에 절대 들어오지 않는다.
둘째, 집안일은 내 맘대로 한다. 내가 해주는 대로 먹고, 내가 정리한 대로 살아. 나는 세상에서 돼지우리같이 지저분한 집이 제일 싫어.
셋째, 나한테 책 읽어 달라고 하지 마. 눈도 아프고 목도 아파. 나는 세상에서 책 읽는 게 제일 싫어.
이렇게 세 가지만 지키면 된다고 하니 어려울 것도 없다. 기분이 좋으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아빠의 수줍은 모습이 재밌다.
할머니는 골목대장같이 으름장부터 놓고 일을 시작하셨지만 슈퍼할머니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셨다. 고작 1시간 20분 동안 무려 12가지 반찬을 해내셨고, 모두 맛도 좋았다. 게다가 집이 반짝반짝 빛나도록 청소도 해놓으셨다. 이 모든 걸 할 수 있으려면 호박으로 마차를 만드는 요정 쯤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단 며칠 만에 집안은 대변신을 거듭한다. 할머니는 찌개를 끓이면서 버섯을 볶을 수 있고, 동시에 생선을 구우면서 왼손으로 나물을 무치고 발로는 걸레질도 할 수 있다. 우렁 각시가 변신한 것은 아닐까 또 의심하게 만든다.
용무늬가 새겨진 커다란 밥그릇에 밥을 잔뜩 담아 모두 소화시키고, 트림도 크게 하고 코고는 소리도 천둥 소리 같은 할머니. 게다가 힘도 좋아 무거운 상자도 번쩍 번쩍 드시는 할머니. 도대체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주인공 윤이는 이렇게 이상하고 신기한 할머니가 제주도 설화의 주인공 마고 할미라고 단정짓는다. 할머니와 나눈 대화 속에선 그렇게 믿어도 좋을 만큼의 신비함이 있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 전혀 아닐 수도 있었지만 이미 윤이의 눈에는 할머니는 마고 할미다.
걸핏하면 뭐뭐 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라고 말씀하시지만 할머니의 속 사람은 참 따뜻하다. 할머니는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보살핌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실현해내시는 분이다. 비밀도 많고 완고한 고집도 있으신 할머니.
윤이가 할머니더러 마고 할미라고 부른 것은 자신이 알아차린 것을 뽐내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이 할머니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할머니는 더 이상 이 집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열흘 만에 떠나셨다.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지신 것이다.
윤이는 우리 집에 오셨던 마고 할미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할머니가 그렇게 떠나신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윤이에겐 좀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소중한 만남을 잃어버리게 된 거라고 자책할까 속상하다.
동시에, 마고 할미의 출연 덕분에 윤이는 소중한 추억을 안게 되었다. 좀처럼 누군가에게 이해시키고 인정받긴 어렵겠지만 윤이만 알고 있고 윤이에게만 특별한 마고 할미를 만났으니까.
마고 할미는 지금도 다른 어느 곳에서 그 놀라운 능력을 선보이며, 이런 게 제일 싫어~라고 투덜거리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라도 좋지만, 부디 윤이에게처럼 인사도 없이 가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편지는 남겼짐나 그런 이별 통보 말고, 눈을 보고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아쉬움과 고마움의 포옹 쯤은 나누고 헤어졌으면 좋겠다. 그 정도의 마음은 부디 당신을 위해서도 베풀어 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