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면 문지아이들 24
윤동주 외 지음, 최윤정 엮음, 한유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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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고 간다

윤동주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72쪽

내가 쓴 글자

문명래

내가
나 때문에
부끄럽고

내가
나 때문에
속상한 날은

눈 덮인
들판으로 달려가
시린 손가락으로
하얀 눈 위에
글씨를 쓴다

'하느님, 제가 또 그랬어요'-78쪽

눈 내리는 밤

강소천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82쪽

호수1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88쪽

우리 엄마

임길택

밭둑에 앉아
"엄마, 이 꽃 좀 봐요" 해도
꽃 볼 새 어딨냐며
뒤도 안 돌아본다.

엄마 눈에는
마늘과 그 옆의 풀들만
보이나 보다.

노랑나비를 보아도
표정이 없고
무당벌레를 보면
징그럽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떠나 산다.-104쪽

키 작은 아이

노여심

그 애를 쳐다보고 싶지만
쳐다볼 수가 없다.
부끄러워할까 봐.

그 애 곁을 지날 때마다
내가 앉아서
손을 잡아 주고 싶지만
그만두고 만다.
울어 버릴 것만 같아서

짓궂은 아이가
그 애를 불렀다.
"야, 숏다리!
너의 아빠도 난쟁이지?"
나는 덜렁 겁이 났다.

키 작은 아이는
씨익 웃고 지나갔다.
나는 그때서야 말을 했다.
"야. 같이 가자."-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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