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간다
윤동주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72쪽
내가 쓴 글자
문명래
내가 나 때문에 부끄럽고
내가 나 때문에 속상한 날은
눈 덮인 들판으로 달려가 시린 손가락으로 하얀 눈 위에 글씨를 쓴다
'하느님, 제가 또 그랬어요'-78쪽
눈 내리는 밤
강소천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82쪽
호수1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88쪽
우리 엄마
임길택
밭둑에 앉아 "엄마, 이 꽃 좀 봐요" 해도 꽃 볼 새 어딨냐며 뒤도 안 돌아본다.
엄마 눈에는 마늘과 그 옆의 풀들만 보이나 보다.
노랑나비를 보아도 표정이 없고 무당벌레를 보면 징그럽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떠나 산다.-104쪽
키 작은 아이
노여심
그 애를 쳐다보고 싶지만 쳐다볼 수가 없다. 부끄러워할까 봐.
그 애 곁을 지날 때마다 내가 앉아서 손을 잡아 주고 싶지만 그만두고 만다. 울어 버릴 것만 같아서
짓궂은 아이가 그 애를 불렀다. "야, 숏다리! 너의 아빠도 난쟁이지?" 나는 덜렁 겁이 났다.
키 작은 아이는 씨익 웃고 지나갔다. 나는 그때서야 말을 했다. "야. 같이 가자."-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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