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라는 말이 정말 마음에 든다. 가출이라는 말은 왠지 불량스러워 보이는데, 출가라는 말은 자존감 높아 보이며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는 느낌이다. 나는 나를 욱하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일어날 때마다 참을성을 기르는 것이 곧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무언, 무반응으로 대처한다. 인내의 열매는 달다는 것. 단언하건대 나는 조만간 출가에 꼭 성공할 것이다.-12쪽
할매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뉴스 시작 전에 방송되는 홈드라마다. 그 시간대 드라마에는 노인이 빠지는 법이 없고, 대부분 노인의 권위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드라마를 볼 때면 할매가 어찌나 앙탈을 부려 대는지 귓속의 달팽이관을 빼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22쪽
삼촌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이든 주식이든 사연이 많은 건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니라고.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하기야 사연으로 따지면 나처럼 사연 많은 아이도 없을 거다.-57쪽
두꺼비 같은 아빠의 손맛은 무척 맵다. 아빠는 화가 나면 고릴라처럼 변하면서 몸과 마음을 제어하지 못한다. 어른이 되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마법에라도 걸리는 걸까.-94쪽
미하일은 세몬과 살면서 그 질문의 답을 얻는다.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사랑이며,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 게 그 답이었다. 미하일은 지극히 종교적인 이 세 가지 답을 깨닫고 하늘로 올라간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서 얻은 답이다. 모두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한 명도 없다.-103쪽
이 집에서 삼촌 하나만은 엄마를 나쁘게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엄마를 나이트클럽 댄서라는 이유로 괄시하고 그녀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소외시켰는데, 삼촌은 엄마를 사정이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해 주었다. 삼촌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게 한마디를 더 했다. "그런데 여울아, 너 혹시 돈 가진 거 있니? 주식 오르면 팔아서 갚을 테니, 가진 돈 있으면 좀 꺼내 봐라."-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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