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22 호/2011-04-11

작은 꿀벌이 큰 뱀보다 더 무섭다고?


산등성이 하나를 구름처럼 뒤덮은 새하얀 벚꽃의 향연, 산들산들 부는 바람 따라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 부드럽게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 모든 게 완벽한 봄날이었다. 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엄마가 아침부터 맛있게 싼 도시락을 먹으며 강아지 몽몽이의 재롱을 보는 것 까지도 완벽했다. 시원하고 달달한 사이다를 한 모금 캬~ 마시다가 실수로 옷에 쏟기 전까지는 말이다.

“앗, 몽몽아. 언니한테 그렇게 달려들면 어떡해! 사이다 다 쏟았잖아.”

그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불쑥 튀어나온 말벌 세 마리, 특유의 무시무시한 윙윙 소리를 내며 태연의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태연, 손을 마구 휘저어 말벌을 쫒는다. 아빠, 위급한 목소리로 태연을 말린다.

“태연아 안 돼!! 네가 그러면 벌이 더 심하게 공격한단 말이야!!”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아야!” 소리와 함께 태연의 손등이 금세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아빠, 잽싸게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더니 손등을 바깥쪽에서부터 세게 밀에서 독침이 피부 밖으로 밀려나오게 한다. 그리고는 얼려온 물병을 물린 곳에 대고 수건으로 고정시킨다. 언제나 과체중 몸매를 과시하듯 거북이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느렸던 아빠, 오늘은 슈퍼맨 보다 빠르다.

“앙앙~~ 아파, 아프다고!!”

“좀 참어! 그러니까 벌한테 덤비지 말라니깐! 그리고 꽃놀이 갈 땐 사이다나 콜라같이 벌이 좋아할만한 달달한 음료는 가져가지 말라고 어제 아빠가 그랬지! 이 벌침을 그대로 두면 2~3분 이상 독을 계속 품어내기 때문에 증상이 훨씬 악화된단 말이야. 그래서 카드나 칼등 같은 납작한 물건으로 밀어내서 빼야만 한다고. 또 곤충의 독이 더 이상 퍼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 얼음찜질을 하는 것도 좋은 응급처치 방법이야.”

아빠의 넘치는 지식과 빠른 몸놀림에 엄마는 ‘어머, 어머’를 연발하며 감탄과 애정의 눈길을 마구 보낸다. 말벌에 물린 태연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어머, 여보는 정말! 어쩜~ 그렇게 해박한 건지~~. 독이 있는 곤충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어요?”

“크흠, 내 박학다식이야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아무튼! 독이 있는 곤충에는 나비나 나방종류, 노린재류, 개미류 그리고 벌 종류(꿀벌, 개미벌, 쌍살벌, 말벌)가 있어요. 그 중 가장 독성이 강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태연이를 쏜 벌 종류에요. 특히 장수말벌은 우리나라 벌 가운데 가장 크지요. 꿀벌이 1cm 정도에 불과한 반면 이놈은 3cm가 넘고 덩치로 보면 꿀벌의 열 배쯤 돼요. 머리가 큰데다 배마디는 노란색이고 각 마디에 1개의 검은 띠를 두르고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죠.”

“어마, 무서워라!”

“꿀벌의 경우 침이 작살처럼 생겨서 한 번 쏘면 침이 피부에 박혀 내장까지 다 빠져나오기 때문에 결국 죽게 되죠. 그래서 꿀벌은 사람이 잡으려고 하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공격을 잘 안 해요. 하지만 장수말벌은 침이 송곳같이 생겨서 피부에 박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쏠 수 있어요. 게다가 공격성까지 대단해서 한 번 공격을 시작하면 계속해서 반복공격을 하죠. 독성도 꿀벌보다 15배나 강하기 때문에 장수말벌에 쏘였을 땐 침을 빼내고 무조건 병원에 가는 게 최선이에요. 심한 벌독 알레르기가 있거나 40~50차례 이상 반복해서 장수말벌에 쏘였을 때는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죠. 독성 곤충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가 뱀에 물려 사망하는 사람보다 20배나 높다는 통계까지 있을 정도니, 곤충 독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알만하죠?

“어쩜, 어쩜~~. 말벌 같은 곤충에 쏘이면 어떤 증상을 보이는데요? 증상을 알아야 급히 병원에 가든 말든 할 거 아니에요!”

“일단 온몸이 가렵고 열이 나며 두드러기가 생겨요. 입이나 혀가 붓고 숨을 잘 못 쉬거나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배가 아픈 등 여러 증상을 겪게 돼요. 평소에 아토피성 피부염 등 알레르기 질환을 앓던 사람은 증상이 더 심할 수 있어요. 체질적으로 벌독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더더욱 위험하고요.”

아빠와 엄마가 박학다식한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태연의 손등은 물론 온 몸 군데군데가 두드러기로 호빵만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저, 저기요. 두 분~. 아빠가 똑똑한 것도 좋고… 헥헥… 엄마가 똑똑한 아빠를 좋아하는 것도 알겠는데요… 헥헥… 제가 지금 바로 그 증상이걸랑요… 헥헥”

엄마, 여전히 태연은 쳐다보지도 않고 의기양양한 아빠만 바라본다.
“알았어, 태연아. 엄마가 이따가 약 발라 줄게. 태연 아빠, 그래서요? 그럼 어떡해야 해요?”

“아, 쫌!! 제발 저 좀 봐달라고요. 뱀보다 20배나 무섭다는 그 곤충 독에 감염된 사람… 헥헥... 여기 있다고요!! 부부 금슬도 좋지만 가끔은 딸도 좀 살려가면서 사랑하시라고요!!!”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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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방 2011-04-11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더와 미니모이)에 나오는 아더도 벌침 알레르기가 있다고 나와요.
제겐 그런 알레르기가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봄이 오니까 꽃소식과 함께 벌소식도 날아오네요..ㅎㅎㅎ

마노아 2011-04-11 23:21   좋아요 0 | URL
아더와 미니모이가 뭔가 검색해 보니 영화군요.
꽃과 벌, 봄의 상징이에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