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이 사는 나라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8
신형건 지음, 김유대 그림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품절


그림자

친구야, 우리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함께 노래하며 걸을 때
작은 내 키만큼 낮은 네 목소리와
큰 네 키만큼 높은 내 목소리
곱게 섞이어 푸른 하늘로 울려 퍼지고
네 뒤를 따라다니는 긴 그림자와
내 뒤에 붙어다니는 짧은 그림자
하나로 포개어지는 걸
넌 본 적이 있니?
친구야, 그렇게 포개어진 그림자가
우리 손 흔들며 헤어질 때
서로 바뀌어
내 그림자를 너희 집으로
네 그림자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는 걸 알고 있니?
떨어져 있어 보고픈 동안
우린 서로 바뀐 그림자를 가진다는 걸
난 오늘에야 알았단다.-10쪽

연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새 연필
칼로 한 겹 한 겹 깎아 내도
여전히 잠만 잔다.
까만 심이 쪼끔 드러나자
그때서야 바스스 눈을 뜨고,
심을 뾰족이 갈고 손에 꼭 쥐니
나릿나릿 기지개를 켠다.
흰 종이에 가져가자
눈부신 듯 눈을 깜작거리다가는
종이와 닿는 순간, 비로소
소스라쳐 깨어난다.-114쪽

어른

내가 아주 어렸을 땐
키가 크기만 하면 다
어른인 줄 알았는데,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많으면 다
어른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이도 저도
다 아닌 것 같아.
어른? 어른?
아른아른.-138쪽

들길에서

들길을 가다
바람의 집에 세들어 사는
풀꽃들을 만났다.

-너희들은 방세로 무얼 내니?

내 말이 우습다는 듯
풀꽃들은
가늣한 허리를 잡고
깔깔거리고

대신 대답이라도 하듯
바람이
나눠받은 향기 한 움큼을
코끝에 뿌려 주었다.-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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