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94 호/2011-03-07
‘꽃피는 봄이 오면….’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개나리 벚꽃 목련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얼굴을 드러내며 봄의 축제가 시작된다. 꽃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려고 꽃망울을 틔운다. 하지만 올봄은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에서 나온 침출수로 인해 아름다운 축제가 자칫 얼룩질 수 있겠다.
2011년 2월 26일까지 구제역으로 매몰된 소와 돼지의 수는 342만여 마리. 국내에서 사육하는 숫자의 25%가량이다. 현재 이들의 무덤은 전국 4,400개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여기서 나오는 침출수가 6만 3,000톤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1.5L 페트병 4만 2,000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이렇게 생긴 침출수는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지상으로 유출돼 ‘2차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침출수는 정확히 무엇이고, 왜 위험하다고 하는 것일까?
침출수는 매몰지 안에 묻은 가축의 사체가 부패되면서 나오는 썩은 물과 핏물 등이 합쳐져 만들어진다. 음식 쓰레기가 썩을 때 나오는 물과 비슷하다. 소나 돼지 등의 가축은 몸무게의 70%가 물로 이뤄져있다. 물은 세포나 혈액, 체액을 이루는 주요 구성성분이다.
사체가 부패되면 세포나 혈관 등이 파괴된다. 이 때 안에 있던 수분이 밖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무게가 500kg인 소를 묻었다면 몸무게의 70%인 350L의 물이 만들어진다. 특히 소는 수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기 쉽다. 내장에서 발생한 가스로 인해 사체가 부풀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배를 갈라 묻기 때문이다.
침출수는 사체를 묻은 지 일주일 뒤부터 서서히 생긴다. 구제역 매몰 매뉴얼에 따르면 가축을 묻기 전에 매몰지 밑바닥에 이중비닐을 깔도록 하고 있다. 침출수가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매몰지보다 낮은 곳에 작은 구덩이를 만들어 고인 침출수를 재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최근 침출수가 문제가 된 이유는 구제역 매몰 매뉴얼에 따라 매몰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축을 매몰지에 묻기 전에 가축을 안락사 시키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산 채로 묻는 경우가 많았다. 매몰 가축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는데 매몰지에 투입되는 인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가축을 산 채로 묻으면 가축이 발버둥치면서 매몰지 바닥에 깐 이중비닐이 찢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축 사체가 부패하면서 생긴 침출수는 찢긴 비닐 사이로 유출돼 지하로 흘러든다.
이렇게 지하로 흘러든 침출수가 문제가 됐다. 그 이유는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나 돼지의 장(腸)과 장 속 배설물(분변)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서식한다. 전문가들은 분변(糞便) 1g 안에는 1억 마리 이상의 미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는 인간에게 설사병이나 장염을 일으키는 대장균, 살모넬라균 등도 포함돼 있다. 가축 사체가 부패하는 동안 해로운 미생물이 증식을 하다가 침출수에 섞여 나온다.
만약 침출수가 지하로 흘러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킨다면? 이 지하수를 마신 사람들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O-157’ 대장균에 감염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며 가축에게 설사병을 일으키는 ‘K88’ 대장균은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에게 치명적이다.
특히 날씨가 따뜻해져 얼어있던 땅이 녹으면 가축 사체의 부패가 더욱 빨리 일어난다. 3월이 되면 더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사체의 부패가 빨라지면 침출수 역시 더 많이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봄비, 장마 등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비가 내려 대량의 물이 매몰지로 들어가면 이 물에 침출수가 섞여 지하수나 인근 하천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산비탈 등에 만든 매몰지가 무너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우려와는 달리 사람들이 마시는 수돗물은 안전하다. 침출수가 상수원으로 흘러들어가도 염소 소독 등 해로운 미생물을 죽이는 정수과정을 여러 번 거쳐 수돗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하수다. 지하수는 별도의 정화시설을 거치지 않는다. 매몰지 인근에 흐르는 지하수에는 해로운 미생물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굳이 지하수를 마셔야한다면 100도 이상에서 끓여 마시는 편이 좋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열에 매우 약해 온도가 높아지면 모두 죽기 때문이다. 가령 구제역 바이러스는 70도에서 15초만 노출돼도 사멸(死滅)한다.
구제역 침출수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침출수로 오염된 지하수를 지상으로 끌어올려 정화시킨 다음 다시 지하에 넣는 ‘양수처리법’을 하나의 대안으로 본다. 이 방법은 하수처리장에서 사용하는 여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정수효과가 뛰어나다. 오염된 지하수가 흐르는 지하 3~5m에 ‘반응벽’을 설치하는 방식도 있다. 톱밥 크기의 작은 철로 만든 반응벽은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한다.
이외에 ‘차단벽 설치’와 ‘화학물질 직접 주입법’도 있다. ‘차단벽’은 오염된 침출수가 더 이상 흐르지 못하도록 벽을 세워 막는 방식이다. ‘화학물질 직접 주입법’은 침출수가 고여 있는 곳에 관으로 화학물질을 넣어주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침출수를 직접 처리할 수 있지만 침출수가 고여 있는 곳을 정확히 찾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2010년 11월 경북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 사태가 아직도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여러 언론에서 ‘침출수 대재앙’이 올 수 있다고 앞다퉈 보도한 덕에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정확한 사태 파악과 침착한 대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 : 변태섭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