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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의 노래 ㅣ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7
미스카 마일즈 지음, 피터 패놀 그림, 노경실 옮김 / 새터 / 2002년 10월
구판절판
애니는 나바호라는 인디언 마을에 살아요.
나바호는 간간이 잔물결을 일으키는 넓은 모래밭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애니의 집은 아늑하고 편안한 호간이지요.
호간은 북미 인디언의 집으로 진흙이나 때 등으로 덮어 만들었어요.
호박들이 노랗게 익어 가고 옥수수 수염은 갈색으로 변해갔어요.
아침이 되면 애니의 부모님은 울타리 문을 활짝 열어서 양들이 풀을 뜯어 먹게 했어요.
애니는 양들을 지키는 일을 돕고, 옥수수밭으로 물통을 날라요.
일이 끝나면 애니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서 노란 스쿨버스를 기다린답니다.
할머니는 애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자주 들려 주었어요.
애니는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 할머니가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할머니와 애니는 재미난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할머니가 힘없이 가만히 계실 때에는 애니도 할머니가 이젠많이 늙으셨다는 것을 깨닫곤 해요.
할머니는 넌지시 말씀하십니다.
"애니야, 너도 이제 베틀 짜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됐구나."
할머니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 거지만 애니는 아직 받아들일 때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애니의 가족은 모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요.
아버지는 은과 불을 가지고 멋지고 묵직한 목걸이를 만드셨고, 엄마는 베틀에서 천을 짰지요.
엄마도 애니에게 베틀 짜는 법을 배우겠냐고 물으셨지만 애니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직 애니에게는 베틀을 짜는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이 더 익숙한 것이지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 짜고 있는 양탄자가 완성될 즈음에 땅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요.
애니는 충격을 받았어요.
할머니가 미리 주시는 유품으로 베틀 짜는 막대기를 고르긴 했지만 아직 이별을 준비할 마음을 갖지 못한 거예요.
다음 날, 양탄자가 애니의 허리보다 높이 짜여져 있는 것을 보고 애니는 충격을 받았어요. 양탄자를 천천히 짜주기를 바랐지만, 양탄자를 짜서 팔아야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엄마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지요.
애니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합니다. 엄마가 양탄자를 짤 수 없게 만들 묘안을 짜내려는 것이지요.
일부러 학교에서 말썽을 피워도 봅니다. 엄마가 학교에 불려오느라 양탄자를 짤 수 없기를 바라면서요.
울타리 문을 열어서 양들을 풀어버리기도 합니다.
또 다른 날에는 엄마가 열심히 짜놓은 양탄자를 일부러 풀어버리기도 하고요.
셋째 날 밤에도 한밤중에 일어난 애니는 살금살금 베틀로 가려했어요.
그때 부드러운 손이 애니의 어깨를 잡습니다.
바로 할머니였던 거죠.
애니는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설명하고 싶었지만 울음이 나올 것 같아 얼른 담요 속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이미 애니의 마음을 알고 계실 테지요.
아침에 애니는 할머니를 따라 옥수수밭으로 갔어요.
할머니는 천천히 걸었고, 애니도 할머니의 느린 걸음에 자기의 걸음을 맞추었지요.
이제 할머니는 손녀에게 자신이 가야 함을, 남겨진 자와 가야 하는 자의 시간에 대해서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이 영영 이별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어야 했죠.
할머니는 분명 온화한 목소리로 애니에게 말씀해 주셨을 겁니다.
애니도 이제는 할머니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할머니가 땅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땅의 어머니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요.
애니와 할머니는 말없이 손을 꼭 잡은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애니는 베틀 짜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할머니께서 미리 물려주신 베틀 짜는 막대기와 일체가 되어야 할 때라는 것을요.
언젠가 시간이 흘러 애니에게도 지금의 할머니처럼 가야할 때를 설명할 시간이 올 테지요. 애니의 손녀도 애니처럼 할머니의 손때 묻은 베틀 짜는 막대기를 소중히 쓸 테지요.
그렇게 이들의 노래는 영원히 끊기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져 내려올 겁니다.
아침에 동쪽에서 뜬 해가 저녁에 땅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림이 담백합니다. 펜선인지 판화인지 잘 모르겠지만, 색을 많이 쓰지 않고 거의 흑백에 강조하는 부분만 약간의 컬러를 썼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은 채 욕심없이 사는 인디언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렇지만 그림보다 글이 더 마음을 울리는군요. 이렇게 인생의 큰 깨달음, 자연의 순환, 삶의 이치...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그림책이 무엇이 있던가 꼽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좋은 책이어서 내 책 한 권, 조카 책 한 권을 따로 구입했어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