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연인의 공통점은 의외로 많다. 때론 베개가 되기도 한다. 끝까지 읽어도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외출할 때마다 데리고 다닐 수는 없다. 짐이 되기 때문에. 그러나 기차 여행을 할 때는 동반하고 싶다. 침실까지 따라올 때도 있다. 겉모양이나 표지가 멋있다고 내용이 충실한 것은 아니다. 크고 두껍다고 많은 것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때때로 쓸데없이 비싼 것도 있다. 오래 묵히면 그것에서 추억의 냄새가 난다.
어쩌면 당신의 연인은 독특한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불행히도, 그 책을 읽을 줄 모르고 품기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은 자기 자신조차도 하나의 책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연인에게 읽힐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별한 자는, 파지가 몇 장 섞인 불안정한 책이거나, 시인 기형도가 말했듯이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인’ 책일 것이다. 이제 당신이라는 책을 다른 책의 힘으로 다시 편집하고 제본할 차례이다. -12쪽
자본주의에 살면서 자본주의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미를 따르고, 자본주의의 성공담을 부러워하며,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자신이 갇혀 있다고 느끼면서 박탈감을 느낀다. 자본주의는 우리의 일상을 재단하는 물신 이상의 신인 듯 여겨진다. 어쩌면 자본주의적 삶을 냉소하는 것만이 겨우 자본주의에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61쪽
그런 사건(황순원 소나기)은 잊히지 않는다. 이별은 오래오래 인정되지 않고, 다만 기억 속에서 ‘사랑했던 시절’, 혹은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 ‘화양연화’로만 기억된다. 첫사랑이 그러하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 첫사랑과의 이별을 오랜 기간 부정한 탓이다.
-92쪽
때때로 영화관을 혼자 찾을 때마다, 이렇듯 혼자인 사람들에게 영화관이 이별의 여행지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나를 사랑스럽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영화는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나르시시즘을 채워줄 누군가의 말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씁쓸하게 인내된다.
-111쪽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날이라기보다는, 별 일도 없는데 자신이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날이다.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집에 편안히 있으면서도 어쩐지 사회관계의 패자가 된 것 같은 열패감에 젖기도 한다.
한편으로 크리스마스는 연인들에게 사랑으로 가득 찬 날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 회의하는 날이 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가 상대에게 무언가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항상 기대치는 그 높이만큼의 실망을 예비하고 있다. (...)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는 기대를 해야 하는 날이 아니라 도리어 기대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날이며,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애쓰는 날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날이라고 스스로 위로해야 하는 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텔레비전을 통해, 라디오를 통해 성탄특선을 하나씩 섭렵하는 것이다. -117쪽
외로운 것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외롭지 않으려고 애를 쓸 때 자신이 애처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냥 물같이, 외로우면 그만이다.
-138쪽
이별할 때에도 공정거래법을 지켜야 한다. 상대가 그 법을 어기고 전횡한다면, 그 아픔을 어찌할 바 몰라 단지 자기 자신을 파먹으면서 집 안에서 유령처럼 떠돌거나, 부조처럼 벽으로 숨어들 것이 아니라, 분노해야 한다. 그것이 또한 실존을 수호하는 방법이다.
-161쪽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실패를 완성해야 한다. 이별은 분명 관계의 실패이다. 이별이 관계의 실패가 아니라고, 이별했지만, 실패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별을 완성할 수가 없다. 이별은 도피해야 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완성해야 하는 중립적인 것이다. 누구나 이별할 수 있고, 누구나 이별 때문에 아프다. 그 실패의 아픔은 반드시 겪어내야 할 과정이다.
-193쪽
좋은 이별은, 좋은 사랑을 위한 희망이 된다. 사랑했다면, 그것이 이별로 끝난다 하더라도, 그 사랑에 대한 존중은 계속되어야 한다. 억지로, 헤어진 연인을 떠나보내려고 할 필요는 없다. 찰나의, 그/녀와 찬란했던 순간이 섬광처럼 터졌다 지더라도, 그런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에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기억은 그렇게 몸속 어디에서 폭죽처럼 켜졌다가 사위어가기도 하는 것이므로, 등 어딘가에서 폭죽이 터지고, 그것이 이내 뜨거운 눈물이 되더라도, 조금만 덜 안타까워하고, 덜 슬퍼하면 된다.
-202쪽
희망은 느리다. 희망에 대해서, 모든 연인들은 겸손해야 한다. 희망은 경계함으로써 비로소 도래하는 역설적인 것이다.
-251쪽
‘희망이 있느냐고…….’가 아니라, "희망을 믿느냐고……."이다. 희망은 ‘존재와 부재’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와 불신’의 문제일 것이다. 희망을 조심스럽게 믿는 사랑과, 희망을 불신하는 위악적인 사랑, 그것의 차이는 얼마나 깊은가.
-253쪽
나는 정신대 할머니처럼 직접 당한 사람들의 원한에다 그걸 면한 사람들의 한까지 보태고 싶었어요.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 면하긴 했지만 면하기 위해 어떻게들 했나요? 강도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얼떨결에 10층에서 뛰어내려 죽었다고 강도는 죄가 없고 자살이 되나요? 삼천리 강산 방방곡곡에서 사랑의 기쁨, 그 향기로운 숨결을 모조리 질식시켜버리니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그 여자네 집 中》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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