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도 과용하면 독(毒)!
제 1285 호/2010-12-20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모 대기업 부장 김남용 씨(가명, 40대)가 병원을 찾아왔다. 그가 걸어 들어오는 모습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김 씨의 건강 기록지는 종합병동을 연상케 했다. 지방간, 고혈압, 고지혈증에 흡연, 음주 등 어느 것 하나 안심할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짐짓 자신만만했다. 술이나 담배를 줄여야 한다고 처방하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줄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렇다면 건강관리를 위해 실천하는 것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대신 가방을 열어보였다. 그 안에는 온갖 비타민 약통들이 담겨져 있었다. 약국을 차려도 될 정도인 그의 비타민 리스트는 지용성, 수용성, 합성, 천연, 국산, 외국산을 총망라하고 있었다.
김 씨는 과음하고 난 다음날 숙취해소용 드링크를 빼먹지 않고 마셨고 아침식사를 거르더라도 종합비타민 한 움큼은 꼭 챙겼다. 그에게 왜 자주 아침식사를 거르느냐고 묻자, 엉뚱하게도 식사를 거르는 대신 종합비타민을 챙겨먹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에게 종합비타민은 아침밥 결식의 면죄부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최신 연구결과들을 살펴보면 비타민이 가진 긍정적 효과에 대해 종종 보고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마라토너, 스키어나 군인들처럼 극한 육체적 상황이나 추운 환경에 노출되는 직군에게 비타민 C가 감기를 예방하는 효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또한 비타민 C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가 심한 직장인들에게는 분명 도움이 되는 희소식이다.
‘비타민’은 유명 건강프로그램의 이름으로 쓰일 만큼 한국인들에게 무척이나 긍정적인 영양소로 느껴진다.
비타민은 외부의 식품이나 약물을 통해서만 공급되기 때문에 적절한 비타민 복용은 중요한 내 몸 경영 활동이다. 식품으로 비타민을 원활하게 공급받기 어려운 이들에게 적절한 비타민 제제나 보조식품은 최선의 건강도우미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타민을 복용할 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비타민은 ‘보조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체가 필요로 하는 대부분의 비타민은 정상적인 식사로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얼마 전 실시됐던 대규모 역학조사는 그간 인류가 갖고 있던 비타민에 대한 환상과 무지가 심했음을 보여준다. 또 현대인의 비타민 사용이 누더기 옷을 기워놓은 것처럼 막무가내였음을 반성케 했다.
일명 비타민쇼크, 코펜하겐쇼크로 불리는 이 조사결과는 잘못된 비타민 사용이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는 위험요소임을 보여 주었다.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집약체 한 알을 복용하는 것으로 모든 건강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보다 편한 건강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는 한국인이 그간 추종해온 ‘한 방에 모두 해결하기’를 위한 빨리빨리 건강법의 한 극단일 뿐이다.
비타민은 필수적인 경우에만 먹거나 보조적으로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 많은 양을 복용할 때는 반드시 영양의학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야 한다.
전문의들이 권고하는 비타민 사용원칙은 정상적인 식사를 하면서 연령에 맞게 한두 알 정도의 종합비타민을 복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몸에 생기는 다양한 문제들로 그 이상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영양전문가를 찾아 체계적인 처방을 받아야 한다.
다이어트를 할 때와 같이 비타민 소모가 많고 음식섭취가 소홀한 특수 상황이라면, 일시적으로 비타민의 도움을 받는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이때도 무조건 약에 의존하기보다는 정상적인 식사패턴으로 신속히 복귀해 음식으로 비타민을 섭취하도록 해야 한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술, 담배의 절제와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만으로도 스트레스 경감 효과를 볼 수 있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비타민을 활용할 수 있다. 만성스트레스는 부신의 기능을 소진시키므로 비타민 C 500~1,000mg, 비타민 B5 100~500mg, 비타민 B6 50~100mg, 아연 20~30mg, 마그네슘 250~500mg 등을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이 영양소들은 대체로 신선한 과일과 야채에 많이 들어있으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제철 과일을 챙겨 먹으면 도움이 된다.
업무과다로 인한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피로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일에 있어 80대 20 원칙 훈련과 휴식, 규칙적인 수면과 운동을 실시해야 한다. 그밖에 일시적으로 기본영양제와 함께 미네랄 보충제를 복용하면 효과가 있는데, 하루에 비타민 C 500~1000mg이나 마그네슘 200~300mg을 1일 3회 복용하면 도움이 되기도 한다.
비만일 경우 과다한 탄수화물섭취로 인해 인슐린 기능이 저하될 수 있으므로 인슐린 민감성을 올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크롬보충제를 복용하면 체중조절과 더불어 혈당조절을 개선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다. 또 코엔자임 Q10은 지방을 적절한 에너지로 전환하고 분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음식 섭취를 줄이고 활동량을 증가시켜 살을 빼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불면증일 경우 스트레스 조절과 수면인지훈련 및 환경 개선이 중요하다. 개선되기까지 취침 전 니아신, 비타민 B6, 마그네슘, 멜라토닌 등을 이용하면 도움이 된다. 이처럼 비타민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병원을 찾은 김 씨의 경우는 어땠을까? 사실 그는 영양과잉상태였다. 영양과잉상태라는 진단을 내리자, 역시나 세포대사를 활성화시키는 건강기능식품을 섭취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가 신봉하는 건강기능식품이 복부비만은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나친 비타민 의존이 그에게 득보다는 실이 되고 있었던 것. 결국 가지고 다니는 비타민 약통의 2/3를 과감히 버리라고 처방했다.
진료실을 떠나면서 불안해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이 처방이 얼마나 성실히 지켜질지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만성피로를 비타민이 구제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은 되새기기를.
비타민이 진실로 한 사람을 보호하는 강성한 무기가 되는 것은 지나친 비타민 의존증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는 것이 내 몸 경영의 진실이다.
글 :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