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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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는 사십칠 일간 계속되었다. 이십 일째부터 신병들이 투입되었는데, 칠 일 이상 살아 있으면 고참병이 되었다. 대원이 다섯 명 남은 중대장에게 연대장은 고지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돌격하라우!"
시화평 전투는 쌍방이 모두 손실을 돌보지 않고, 죽음으로써 삶을 제거하고 죽임으로써 죽음을 갚는 무한소모전이었는데, 그 전략적 득실관계는 지금 분석이 불가능하다고 유해발굴단장 강중령은 전사戰史에 썼다.-150쪽

여름의 숲은 크고 깊게 숨쉬었다. 나무들의 들숨은 땅속의 먼 뿌리 끝까지 닿았고 날숨은 온 산맥에서 출렁거렸다. 뜨거운 습기에 흔들려서 산맥의 사면은 살아 있는 짐승의 옆구리처럼 오르내렸고 나무들의 숨이 산의 숨에 포개졌다.
소나기는 산맥의 먼 끝자락부터 훑으며 다가왔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 안으로 눌려 있던 숲의 날숨이 비가 그치면 골짜기에 가득 차서 바람에 실려왔다. 비가 그친 한낮에 어린 벚나무 숲의 바람은 가늘고 달았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내리쪼이면, 잎이 넓은 떡갈나무숲의 바닥에는 빛들이 덩어리로 뭉쳐서 훝어져 있었고, 뭉쳐진 빛들의 조각이 바람에 흔들리는 잎그림자 사이를 떠다녔다.-177쪽

아이들에게도, 그들 나이의 고유한 더러움이 있다. 어른에게서 옮겨온 더러움도 있을 테지만, 아이들에게 자생적인 더러움이 있는 것이다. 그 더러움은 원색적이고 본래적인 것이어서 어른들의 더러움보다 훨씬 더 가여웠다.
(...)
-너네 집 몇평이니?
-우리 집 서른네 평이야.
-뭐? 우리 아빠가 너네 아빠보다 더 높은데, 왜 너네 집이 더 커?
-너네 아빠는 높아도 돈은 못 버니까 너네 집이 작은 거야.
-우리 아빠한테 일러서, 너네 아빠 혼내줄 거야. 너네 집도 뺏을 거야.-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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