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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13 : 중국 1 근대 편 - 청나라의 멸망과 중화민국의 수립 ㅣ 먼나라 이웃나라 13
이원복 지음, 그림떼 그림 / 김영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먼나라 이웃나라가 출간되었다. 여태 나오지 않은 게 신기했던 중국 편이다. 방대한 중국 역사를 처음부터 담아내진 않았고 근대부터 시작한다. 그나마도 이 책은 1권이다. 한 권으로 담기엔 근대의 역사가 너무 파란만장했다. 뭐, 중국만 그런 건 아니었지만.
made in China라는 말이 우스개 소리가 될만큼 중국이 웃기게 묘사되던 적이 있었다. 아직도 품질로 따지면 중국제가 그다지 내세울 수준은 못 되지만, 이제 중국이라는 나라를 우습게 여길 나라는 없는 듯하다. 힘차게 날아오르던 일본이 한참 주춤거리고 있고, 미국도 제동이 걸려 있고, 이제 과거의 영광을 '제국' 규모로 다시 일으킬 나라는 중국 뿐인 것도 같다. 불과 백년 전에 우리만큼이나 처참하게 찌그러져 있던 그 중국이 대체 어떻게 지금의 위상까지 올라갔는지 궁금할 법도 하다. 아니, 그 전에... 과거 그토록 찬란했던 문명과 역사를 자랑하던 그 중국이 어떻게 19세기 20세기에 그렇게 종이 호랑이가 되었는지부터 궁금해하는 게 맞아 보인다.
문명의 근간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서양과 동양. 각자의 문명을 기반으로 성장해간다. 그런데 확실히 중세까지는 동양이 서양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잘 살았다. 생산 규모의 차이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중세에 벌어졌던 무수한 전쟁은 동양, 정확히는 중국과의 상권을 뚫기 위한 전쟁이었다. '성전'이라 이름 붙였던 십자군 전쟁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육로를 통과하기엔 장애가 많았다. 그리하여 뚫어야 했다. 바닷길을!
필요가 발전을 불러왔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간 정신이 발전의 속도를 바꿔놓았다. 해양 강국이 마구 떠오르면서 전 세계를 땅 나눠먹기를 했다. 그래도 그때까지 중국은 안전했다. 당시 왕조의 이름은 청나라. 모든 게 풍요로웠던 그들은 통상 좀 하자고 떼 쓰는 영국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벌어진 아주 민망한 이름의 '아편전쟁'
두 번의 아편전쟁의 패배로 커다란 땅덩어리와 세계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위상은 땅으로 떨어졌다. 당시 영국 군의 숫자는 4천 명에 불과했다. (아편전쟁에 대해서는 영화 '아편전쟁'을 추천한다. 이해되기 쉽게, 그리고 재밌게 구성해 놓았다.) 서양의 무기와 과학 기술이 얼마나 진보해 있었는지, 중국의 경험을 스승 삼아야 했지만, 중국 자신도 조선도 실패했다. 거기에 대한 변신은 일본만이 성공한다.
(옆의 사진은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에 입성해서 마구 약탈을 자행할 때 훔쳐간 개다. 진시황 때부터 황실에서만 키워왔다니 대체 역사가 얼마인가! 그런데 생김새가 거의 빗자루다!)
어쨌든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중국도 변신을 시도하기는 했다. 그것이 양무운동. 무려 30여 년 동안 막대한 예산을 쏟고, 힘과 에너지를 들이 부으며 애썼지만, 청일전쟁의 패배로 그 조차도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이 무렵의 중국은 하는 전쟁마다 모조리 진다.
태평천국운동으로도 나라가 들썩였고, 적은 숫자의 이민족 왕조인 청나라는 밑바닥으로부터 흔들린다. 하드웨어만 바꿔서는 아니 됨을 깨닫고 소프트웨어도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으니 그것이 변법자강운동. 하지만 100일 천하로 끝나버린다. 거의 50년을 채워서 권력을 쥐고 있는 서태후는 변화를 추구하는 듯하다가 다시 보수화되고 만다.
얼굴에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포스가 팍팍 풍긴다. 저자는 그동안 서양인의 시각으로 인해 왜곡된 서태후 상을 지적했는데, 으레 역사에서 '여자'에게는 더 가혹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주 틀린 지적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녀가 구국 영웅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집권자로서 그녀의 책임은 무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반세기를 장악한 권력이라면 더욱 그렇다.
불같이 일어났던 의화단 전쟁도 실패했고,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함으로 인해 열강의 중국 침탈은 더 가속화되었다. 청나라는 당장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저렇게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살리려고 애쓰는 들끓는 피가 없을 리가 없다. 중국의 국부 쑨원이 등장할 때다. 기대보다 훨씬 과격했던 쑨원은 사실 중국 땅에서는 별로 활동을 하지 못했다. 끝없이 거사를 준비했지만 무수히 실패했고, 망명을 밥 먹듯 해야 했다. 친일적이었고 친미적인 성향이 다분했지만,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애국임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저자가 그의 일본 이름을 빗대어 우리나라라면 가당키나 하겠냐고 물은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중국이 외세로부터 받은 핍박도 적지는 않지만, 완전히 식민지가 되어 꼬박 35년을 피흘린 우리 정서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책은 재밌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학구적이다. 이 책을 소화하려면 일단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 보인다. 극동 3국이 맞물려 있는 민감한 시기였고, 서로의 이해관계와 부침이 너무나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잡혀 있다면 근대화에 뒤쳐져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는 것과, 입헌군주제와 공화정을 주장하는 무리들의 대립, 자꾸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복벽주의, 신학문을 공부하고 새로운 사상에 도취되어 있는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열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내부의 싸움과 공산주의가 자연스럽게 퍼져가는 분위기도 쉽게 읽힐 수 있을 테고 말이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결과, 그 이해를 두고서 전승국들의 잔치와 우리의 3.1운동과 중국의 5.4 운동 등등 그 모든 것들을 인과관계로 다루기 때문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역사를 짚어나가게 된다.
근대사기 때문에 사진 자료가 많은 것도 장점이다. 쑨원은 전처가 사망한 직후 오랜 비서이자 혁명 동지인 27살 연하 쑹칭링과 재혼을 한다. 그녀는 후에 중화민국을 지배했던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의 언니였다. 자매의 사진이 같이 실렸는데 둘 다 빼어난 미모다. 정면 사진이 아니어서 확언하기 힘들지만 쑹칭링이 더 고와 보인다.
젊었을 적의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의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저우언라이는 순진한 청년의 인상이다.
1권은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는 장면에서 끝났다. 1921년이다. 남은 이야기가 길다. 앞으로 한 권이 더 나올지 두 권이 더 나올지는 모르겠다. 모르지만, 여전히 그 안에서 우리와의 관계가 긴밀하게 다뤄질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관계다.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끝나지 않고, 북한의 체제가 불안하면 할수록 중국에 대한 촉각을 더 세워야 하는 우리다. 공통의 문화권을 가진 이웃 나라로서도 우리의 관심은 지당해야 하지만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입장을 생각할 때에도 역시 언제나 주시해야 하는 중국이다.
초등학생 권장도서로 손꼽히는 책이지만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이 읽기에도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고대까지 다루어 통으로 넘어가는 내용이었다면 좀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근현대사로 들어가면 내용이 더 세세해지고 복잡해지기 때문에 사실 어린이들은 사전공부가 더 필요하다. 부모가 함께 공부하는 책이라고 할까.
그나저나, 이 책이 먼저 나왔으니 가로세로 세계사는 더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것일까? 그 시리즈도 끝을 보고 싶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