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놀이 산하작은아이들 20
권정생 지음, 윤정주 그림 / 산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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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간된 책인데 글도 그림도 옛스럽다고 느꼈는데 오래 전 작품인 '하느님의 눈물' 중 단편 세 개를 따로 출간한 책이었다. 그림이야 새로 입힌 것이지만 글에 맞추어 분위기를 조정했을 것 같다. 선정된 세 편의 단편 제목은 '산 버들 나무 밑 가재 형제'와 '찔레꽃잎과 무지개', 그리고 표제작인 '학교놀이'다.  

서문에서 선생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축구를 일등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모두 사이좋게 사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씀. 백 번 지당하다.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대동강 마을 아이들과 백두산 마을 아이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그날을 꿈꿔본다. 그날은, 모두가 같이 바랄 때 더 빨리 우리에게 올 것이다. 점점 더 멀게 느껴지는 이 거리감이 점점 옅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가재 형제다. 좀 더 덩치도 크고 힘도 좋은 언니 가재와 좀 더 체격도 작고 집게도 작은 아우 가재. 아우가 맏이더러 '언니'라고 불러서 처음엔 자매인가 했다. 읽다 보니 장가든다는 얘기가 나와서 형제라는 걸 알았고, '추노' 한참 볼 때 예전에는 '언니'라는 표현이 동성 형제 자매 사이에서 모두 쓰인 단어라는 걸 찾아본 기억이 났다.  

언니 가재가 장가 들고 나자 아우 가재는 슬퍼졌다. 할아버지 가재가 위로를 해주자 언니가 더 많이 울었다고 괜찮은 척하는 아우 가재. 할아버지 가재는 헤어짐의 아픔을 하느님이 곧 잊게 해줄 거라고 말해준다. 그리하여 무엇이든 다 보고 듣고 헤아리고 계시다는 하느님의 존재를 찾게 되는 아우 가재. 별빛 가득한 밤에 하늘을 향해 외쳐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그럼에도 제 할 말을 다 쏟아내는 아우 가재. 물어보는 질문이 애틋하기만 하다.   

"하느님네 언니도 장가갔나요?"
"엄마하고 아부지 돌아가셨구요?" 
"하느님도 이담에 튼튼해지면 장가가셔요?"
"하느님은 밤중에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으셔요?"
"대답 않으셔요?"
"자꾸 가만 계시면 내가 울 거예요."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고 아우 가재는 얼마나 슬펐을까.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실망한 아우에게 할아버지 가재가 전해주는 위로는 어찌나 현명하던지... 아우 가재가 겁쟁이가 아닌 용감한 가재가 되라고 대답하고 싫어도 참았다는 얘기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또 하느님이 대답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조용히 말씀하셔서 못 들었을 수도 있다는 말에도 귀가 기울여진다. 조용히 대답하신다는 하느님. 그러니까, 조용히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내 소리에만 취해서 내 울음에만 겨워해서 들려오는 대답을 놓치고 살던 것은 아니었는지...... 

두번째 이야기에는 꽃잎이 등장한다. 예쁜 아기 찔레 꽃잎이 바람에 실려 시냇물 위로 떨어졌는데, 장난꾸러기 시냇물이 마구 장난을 해댄다. 와서 쓰다듬어 보고 입도 맞추고 하니 울상이 되어버리는 찔레 꽃잎. 이게 꽃잎과 물이니까 그림이 예쁘지만 사람이었으면 '희롱'이 되어버리니 약간 긴장도 되었다. 하핫...   

시냇물은 찔레 꽃잎을 넓은 세상으로 흘려 보내 주었다. 지나면서 학교 운동장의 아이들을 보고 교실에서 수업하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어느 때나 아이들을 향한 권정생 선생님의 시선이 꼭 느껴진다.  

평화로울 것 같았던 여정은 갑작스럽게 쏟아진 소낙비로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고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소낙비는 어디까지나 지나가는 비. 곧 해님이 얼굴을 내밀었고 들판도 때때옷으로 갈아입어 싱그럽다. 그리고 마주친 무지개. 아기 찔레꽃은 넓은 세상과 마침내 마주쳤다. 험한 길도 있지만 이리 예쁜 보상도 있음을 찔레꽃은 잊지 못할 것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참 찡했다.  

울타리 저쪽에 병아리 11마리가 엄마 닭의 구령에 맞추어 학교놀이를 하고 있다. 나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도 저리 구령 붙여가며 큰 소리로 운동장을 행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좌향좌, 우향우 정도였는데 중학교에 입학하니 좌향 앞으로 가! 우향 앞으로 가, 뒤돌아 가! 등등 구호가 늘어나더니 발 맞추기가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울타리 이쪽에는 엄마 없는 병아리 7마리가 있다. 엄마 없는 자기들 처지가 서러워 괜시리 울타리 너머 병아리들에게 심술이 나버린다. 부럽고 설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던 병아리들은 꿈속에서 엄마 닭을 만난다. 아이들이 애처로운 엄마 닭은 아이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준다. 내가 너희와 함께 갈테니 너희 중 하나가 이곳에 남으라는 말. 대체 누구를 고를 것인가. 아무리 보고 싶은 엄마라 할지라도 제 형제와 맞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꿈에서 깨어난 병아리들은 자신들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고 만다. 살아있는 형제의 중함을 깨달은 그들은 저희들끼리 학교놀이를 하면서 씩씩함을 내보인다. 서로서로 선생님이 되어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익히고 배운다. 위험이 닥쳐왔을 때 알려주는 일, 한 번 죽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것,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것 등을 말이다. 병아리들이 구호처럼 외치는 다짐과 맹세는 선생님의 육성처럼 들린다. 

"약한 자는 돕자."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자."
"죽이지 말고 사랑하자."
"서로서로 사랑하자." 

모두 인간이 아닌 다른 대상에 빗대어 이야기했지만, 그 모두가 우리에게 해주는 이야기임을 모를 수 없다. 문장 하나하나에 사람에 대한, 자연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우리 말을 잘 살려낸 말씨들이 정감있고 예쁘기만 했다. 고운 이야기지만 잊지 말아야 할 교훈도 빼먹지 않고 다 담아냈다. 오랜 이야기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들. 오래오래 기억하고 새겨야 할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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