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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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을 보기 위해서 밀렸던 최규석 만화를 몇 권 먼저 읽었다. 그의 유년 시절과 성장기를 함께 더듬어 보면서 그가 갖고 있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민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 '울기엔 좀 애매한'을 읽으면서 그의 주체할 수 없는 고뇌와 안타까움, 일종의 부채 의식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뭐라고 말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 와르르 밀려온다. 작가는 울기엔 애매하다고 말하지만, 내 보기엔 펑펑 울어도 지나치지 않는 마음으로 말이다.  

 

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파키스탄 아저씨의 표현이 찌르르 울린다. 착한 사람을 위해서 하는 고생은 힘이 들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에게 그런 고생 쯤이야 하나의 훈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그런 마음일랑은 이 책 전반을 다 뒤져도 찾기 어렵다. 힘든 건, 그냥 힘든 거다. 울기엔 좀 애매하다고 괜찮은 척을 하지만 사실은 모두들 괜찮지 않다.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모두.  

 

주인공 원빈 군을 보시라. 이름과 상반대 되는 외모로 인해 벌써부터 한숨 져주고 들어간다. 저 삐질삐질 흐르는 땀방울이 리얼함 그 자체다. 

고3 학생으로 뒤늦게 미술학원 입시반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굳은 각오로 지원을 약속 받았지만, 마음과 달리 현실이 녹록치 않다. 열심과 성실과 노력으로 기를 쓰며 달려나가는 우리의 원빈군.  다행히 학원에는 괴짜 선생님이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그런 훈훈함이 아니라 현실의 각박함을 살벌하게 알려주지만 밉지 않은 스타일이랄까.  

자본주의를 찬미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여린 마음을 가진 선생님의 '어른' 현실도 사실 만만치는 않다. 공모전에 낼 숙제를 대신 그려달라는 학생과 학부형. 그런 아이들로 인해 다른 아이가 피해를 보는 상황에 대해 항변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다. 

 

은수는 또 어떻던가. 제법 그림을 그리고, 또 좋은 대학에 붙었지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하는 수 없이 재수를 하게 되었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은 통장에 들어오기가 바쁘게 다른 구멍으로 새나가고, 원망이라도 해볼라치면 더 기막힌 현실이 발목을 붙잡고, 연애란 사치가 되어버리는 기구한 청춘일 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머지 않아 원빈의 모습이 될 처지이기도... 

 

은수의 등줄기에 그늘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건만, 세상의 모든 짐이 다 저기에 얹혀진 것 같은 착각마저 인다. 그런 은수도 울기엔 애매하다고 말을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울 수 없어 애매하다고만 말하는 청춘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게임이 끝나버린 출발선에서 신호만 기다리고 있는 불쌍한 우리의 아이들이다. 그리거 그 출발선에는 아직도 대기 중인 예비 학생들이 너무도 많이 깔려 있다.  

 

그런 이들에게도 좀 배울만한, 존경할 만한 어른들이 있어줄 것 같았다. 그런 어른들이 있어야 마땅했다. 줬다가 빼았는 것은 더 나쁜 거니까, 차라리 아무 희망도 주지 말고 기대도 걸지 말게 해야 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던가. 가장 만만한 상대부터 등쳐먹는 이 버르장머리 없는 세상 인심을 어찌하면 좋을까. 

작품은 작가의 유머 감각이 제대로 녹아 있어서 무척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사이사이의 버거운 인생살이 때문에 한숨이 더 깊었다. 청소년들을 위한 작품인데 청소년들이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너희 앞의 인생은 여기서 크게 달라지지 않아... 라고 미리 친절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지갯빛 인생을 그려라도 보라는 의미로 이건 만화일 뿐이야...라며 비켜가야 하는 것일까. 판단은 알아서들 하겠지만, 참 마음이 아프다. 이런 책을 권하는 게 마땅하다고 여기면서 그 다음엔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참, 서러운 현실이다.   

아프고, 아프지만... 그래도 이런 흔적은 자랑하고 마는 이 철딱서니라니....

작가님의 다음 '수채화' 작업도 기대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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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9-28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한 심정은 결코 청소년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고, 어른들이 꼭 봐야 하는 책으로 추천해요!
먹먹함과 더불어, 세상을 꼭 이 따위로 만들어가야겠니? 라는 물음을 던지는 훌륭한 만화라고....

마노아 2010-09-28 12:14   좋아요 0 | URL
1318이건만 청소년에게 보여주기 힘든 작품이라니, 참 아이러니해요.
엄청 재밌었는데, 또 엄청 슬프고, 아주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좋은 작품 소개해주시고, 선물도 해주시고, 사인도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최규석 콤보였어요.^^

2010-09-28 1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