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감 짜기 전통 과학 시리즈 2
김경옥 지음, 정진희 외 그림 / 보림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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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의 전통 과학 시리즈가 우수하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았지만 '옷감짜기' 편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어린이 책으로만 분류하기엔 많은 지식이 가득 담겨 있다. 그냥 내가 갖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추석이니 조카에게 줄 선물로 내밀기 위해서 미뤄둔 리뷰를 쓴다.^^

옷감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그 변천사부터 다루고 있다.
태고적 시절에는 풀잎이나 가죽옷이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담과 하와 시절부터랄까. 그들도 풀에서 가죽으로 업그레이드된 옷을 입었더랬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대표 유물로 '가락바퀴'를 들곤 하는데 그 바락바퀴의 쓰임새를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이 늘 시원하게 이해가 되지 않곤 했는데 이 책도 나의 갈증을 100% 달래준 것은 아니지만, 기존 책보다는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대학 시절 내가 발굴했던 반쪽짜리 가락바퀴가 떠오른다. 요즘 같은 때라면 사진을 많이 찍어뒀겠지만, 그때 찍은 사진이라곤 땀에 절어 토막 휴식을 취하고 있던 흙범벅 옷차림이 전부다. 그것도 추억이지만.

여러 가지 옷감 짜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옷감 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인데 직물과 편물이 그것이다. 가로 실과 세로 실을 서로 얽어서 짠 것을 직물이라고 하고, 한 가닥의 실을 바늘로 얽어서 짠 것을 편물이라고 한다. 흔히 뜨개질이 그것!
서양에서는 편물이 주로 발달했었고 우리나라는 주로 직물이 발달해왔다. 우리의 전통 옷감은 모두 직물이다.
그렇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직물로 옷을 지어본 경험은 거의 없을 듯. 뜨개질은 많이 해봤지만. 그러고 보니 날이 선선해지는 게 또 뜨개질이 생각나는 철이다.

삼실로 짠 옷감을 삼베라고 한다. 삼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옷감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생산되었다. 삼실 만드는 과정을 찍어보았다.
일단 삼 껍질을 벗기기 좋게 증기로 찐다.
삼 껍질이 벗겨진 후의 속살까지 섬세하게 그림으로 표현했다.
너무 고된 노동 작업이다. 고된 줄도 모르고 했을 것 같지만.

내가 덮고 자는 이불은 삼베 이불인데 시원해서 여름용으로 딱이다. 그런데 조금 날씨가 선선해지면 그 거친 질감이 피부에 아프다. 모시 옷은 부드러워서 그렇진 않겠지... 짐작해 봤다. 촘촘함의 차이가 한 눈에 보인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짠 옷감을 비단이라고 한다. 비단은 자연 재료로 만든 옷감 가운데 가장 보드랍고 아름답다. 겨울철 옷감으로는 따뜻해서 적격. 그렇지만 빨래하는 사람 입장에선 참 고된 옷감이었을 것이다. 비단 옷을 입을 수 있던 부잣집 사람들이 그런 것까지 고려했을까마는...

여러가지 비단을 구분해 놓았다.
무늬없이 평직으로 짠 명주, 무늬 없이 두껍게 짠 공단, 얇고 발이 성기게 짠 사, 무늬를 넣어 두껍게 짠 양단까지...

무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다. 목화 씨를 뿌려서 꽃이 피고 지고 목화 송이가 피기까지.
목화송이에서 수확한 솜의 뭉치. 딱 보아도 보온에 짱이다.
총알도 막을 수 있었던 솜의 결속력에 잠시 감탄!

솜 다듬는 여러 과정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첫번째 그림의 도구는 '씨아'다. 솜 속에 박혀 있는 목화씨를 빼는 도구이다. 암카락과 수카락 사이에 솜을 넣고 씨아손을 돌리면, 암카락과 수카락이 돌아가면서 솜이 납작하게 되어 밖으로 빠져나간다. 딱딱한 씨들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아래쪽에 떨어진다.
솜을 다듬는 사람들의 숙련된 솜놀림에 눈길이 간다.
활 끈을 당겨 진동을 주면 활끈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면서 솜은 부드럽게 피어 오른다. 마치 솜사탕이 피어오르는 느낌이다.
그리고 솜을 떼어 적당한 크기로 고치를 마는 모습.
정말 손이 많이 간다. 그래도 그 고생이 솜옷 입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환희에 비할까.

첫번째 그림은 날실 풀먹이는 장면이다. 날실을 팽팽하게 당겨 풀을 먹인다. 풀먹인 날실은 잘 끊어지지 않는다. 이 과정을 '베 매기'라고 한다. 밑에서 불을 피워 풀먹인 실이 쉽게 마르도록 한다. 여름에는 더워서 못하겠다. 덥고 습하고...

두번째 그림은 베 짜는 장면이다. 각각의 명칭과 그 쓰임새를 읽느라 힘들었다. 이걸 다 어떻게 그렸누. 사진도 아니고 그림으로 말이다. 양손과 양발, 어디 한 군데 쉴 틈이 없다. 이렇게 한 번 베를 짜기 시작하면 화장실 가기도 힘들었을 테니 보통의 강행군이 아니겠다. 기술 문명이 보다 발달된 시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쪽물 들이는 장면이다. 여러 번 물들여 더 깊은 푸른빛을 낸 옷감이 눈부시다.
'쪽빛'이라는 단어 자체도 강렬하다.
하늘빛 더 파래진 가을에 어울리는 단어다.

무늬 놓기!
수놓은 단추가 예쁘다. 매듭도 마음에 든다.
서울 역사 박물관에서 분기별로 매듭과 전통 자수 배우는 강좌가 열리곤 했는데 한 번쯤 배우고 싶기도 하다.

금박이 찍힌 저 화려한 옷을 보시라. 사극을 보면 시각적으로 눈이 참 즐거운데 옷 때문에 그렇다. 요새 꽂힌 드라마는 '성균관 스캔들'인데 궁중 사람 별로 안 나와도 유생들 반듯한 옷차림만 봐도 눈길이 시원하다. 특히 '여림' 도령은 유독 화려한 옷차림을 자랑하듯 입고 나오는데 이젠 남자 배우로도 옷자랑을 할만큼이 되었다. ^^

모시 옷을 입은 여자란다. 햇볕을 가리기 위해 대나무로 엮은 방갓을 쓰고 있는데, 거대한 방갓이 눈길을 끈다. 오늘날의 양산 같은 용도라는 건데 무겁겠다...

옆에 있는 '미투리'는 문학 시간에 배웠던 어느 시에 나왔던 것 같은데... 미투리 엮어다가... 어쩌고 저쩌고... 뭐 이런 전개였던 것 같다. 자세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렇게 생겼구나. 샌들 같다. ^^

조선 전기에 일본이 우리나라로부터 많이 수입해 간 것이 무명이었는데 주로 '돛'의 재료로 쓰였다 한다. 그 전에는 '짚'으로 만들었다나. 짚으로 만든 돛과 무명으로 만든 돛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였을지는 자명한 일.

승복은 삼베에 먹물을 들인 거구나. 그런 어두운 색깔은 어떻게 만드는가 했는데 먹물 색이었다. 정감 가는 색상이다.

고쟁이와 다리 속곳. 역시 사극 보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되는 속옷 아이템이 아닌가. 꽤 섹시한 속옷이다.

제주 해녀의 옷차림이 과감하다. 물안경(!)도 있다. ^^

동양화 밑판으로 비단이 많이 쓰인다고 한다. 고운 비단에 그림을 그리면 물감이 옷감에 스며들어 접혀도 물감이 떨어지지 않고 오래간다.
오래된 그림을 보면 종이 뒤 밑판이 비단인 것도 그런 이유일 테지?

책 표지로도 각광을 받던 비단.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쳐들어왔을 때 '의궤'를 보고 눈이 돌았었다지. 비단으로 만든 표지에서부터 일단 값 나가는 책이 될거란 감이 오지 않았을까?

옷감 손질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빨래하고 삶고 풀 먹여서 구김을 펴서 다시 바느질하기까지.
어휴, 너무 고된 작업이다.
비록 이런 한복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우리 어머님들이 흰옷을 절대로 싫어하는 이유를 100% 이해한다.

오타가 눈에 들어와서 체크해 보았다. ㅎㅎ
용어풀이도 섬세하게 신경을 써두었다.
어린이들은 '백과사전'처럼 느껴져서 재미가 덜할 수도 있겠지만,
교육적으로 아주 훌륭하다. 아이들 취향의 그림은 아니지만 정성이 가득 들어간 그림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내가 소장하고 조카더러 빌려보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그럴 수는 없지.
조카에게 선물하고, 내가 궁금할 때 다시 빌려봐야겠다. ^^

추석 빔 선물받는 나이는 지났고, 이젠 선물할 때가 되었다.
아까 '대한민국 원주민'을 읽어서인지 더더욱 시간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때아닌 물난리로 명절이 더 고되어진 사람들이 많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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