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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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 황제에게는 생존하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고, 역시 생존하는 형제들이 있었다. 적은 여전히 야만이라 대통을 미리 정해두는 법도가 없었으니, 생존하는 모든 황자들과 대왕들이 황위 계승의 자격을 가졌다. 그리하여 모반도 정변도 아닌, 모반보다 더하고 정변보다 더한 싸움이었다. 모두가 모두를 죽일 수 있었고, 가차 없이 그렇게 할 태세였다. 누구도 죽이려 하지 않는 자도 죽을 수 있었고, 죽지 않으려고 몸을 낮출 데까지 낮춘 자도 죽을 수 있었다.

-21쪽

새 황제가 났으니 그들은 다시 전쟁을 준비할 터였다. 전쟁은 일상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으나, 섭정왕의 포부가 크니 전보다 더 큰 전쟁이 될 게 틀림없었다. 조선은 그들의 적의 축에도 끼지 못했으나, 성가신 후방임에는 틀림없었다. 뒤를 걱정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전쟁 때마다 그들이 조선의 출병을 요구하는 것은 조선의 군대가 힘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후방을 비워두기 위해서였다.

-97쪽

꿈을 믿는 자들이란 꿈이 필요한 자들일 터...... 만상은 밤마다 깊은 잠이 들어 흉몽이고 길몽이고 꾸지 않았다. 더 높이 올라갈 데도 없었고, 더 낮은 데로 떨어질 데도 없었다. 그는 가장 낮은 바닥에서 뒹굴어 간신히 그 낮은 바닥을 기어 나왔을 뿐이었다. (...) 높이 오를 수 있는 자는 높이 있는 자들이었다. (...) 그의 꿈은 그저 오래 살아남는 것뿐이었다. 밤마다 잠이 깊어 해몽이 필요한 꿈 같은 것은 뀌지지도 않았다.

-98쪽

세자가 강 건너 청의 성도에 있으니, 강 가까운 곳의 백성들은 세자를 먹여살리는 일에 자신들의 뼈를 깎았다. 달마다 올라가는 세자의 삯찬에, 대신들의 녹봉에, 쇄마에, 날이면 날마다 동원되는 군역까지 의주부의 백성들이 적에 볼모로 있는 세자로 인하여 헐벗고 굶주리고, 목숨이 죽어나갔다. 전쟁에는 한 목숨 잃으면 그만이었으나, 전쟁 뒤끝에는 살아남은 목숨들이 더욱 고되었다. 오래 살아 그 모든 것을 다 목격한 늙은이들의 울음이 그래서 더욱 장하였다.

-145쪽

명이 그의 적이었다면, 그리고 적이 그의 편이었다면, 세자에게도 그 전쟁에 대한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바라보며 두려운 것이 아니라, 두려운 것을 깨고 부수고자 저들처럼 눈알이 붉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자는 바라볼 뿐이었고, 바라보며 두려울 뿐이었고, 그 두려움이 비루하여 환멸을 견딜 수 없음이었다.
응전하는 명의 장수들은 장했으나, 그들의 나라는 이미 비루했다. 숭정은 황제로서의 위엄을 이미 잃어, 아침이면 이자를 죽이고, 저녁이면 아침에 이자를 죽인 저자를 죽이라 하는 식이라고 했다. 조선은 명에서 멀고, 또한 저들에 의해 육로와 해로가 모두 끊겨 조선에까지는 가지 못하는 명의 참담한 소식들이 세자의 관소에는 속속 들어왔다.
-157쪽

봉림은 종군했던 전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낯빛이 차가워 세자라도 쉽게 말을 건넬 수가 없는 지경이곤 했었다. 봉림이 보았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세자는 이때에 알았다. 그것은 말로 전해질 수 없는 것이며, 글로도 적어 올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명이 끝났습니다. 미천한 최래는 외칠 수 있었으나, 세자는 말할 수 없었다. 봉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적의 땅에서, 그야말로 너무 오래, 모든 것을 보았다. 그들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사람은 세자, 한 사람은 대군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160쪽

조선의 대신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명과 청의 전투는 무의미했다. 소식이 멀어 전황이 늦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지고 이기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명이 이겨도, 져도 그들은 명을 받들 것이다. 숭정이 사라져도, 그들은 숭정을 이을 것이다. 성현의 뜻이 거기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입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광해를 쳤던 대의가 모두 거기에 있었다. 임금의 반정은 명의 재조지은을 잊은 광해를 내몬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임금의 자리가 거기에 있었으니, 임금이 수백 번 수천 번 적의 황제 앞에서 이마를 찧는다 하더라도, 임금이 명나라를 받들어 임금이 되었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임금을 임금의 자리에 올린 자들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적에게 굴복한 것은 치욕이 될 것이나, 또한 원한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을 등지면 남는 것이 없었다. 광해를 치면서 씨를 말리듯 내몰았던 광해의 정파가 다시 일어선다면, 그들에게 돌아올 것은 한때 광해의 정파가 그러했던 것처럼 멸문과 죽음뿐이었다.
-160쪽

세자는 임금의 아들이었다. 임금이 그들에 의해 임금이 되었으니, 세자도 그들에 의해 세자가 되었다.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기원의 말처럼 세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세자는 적의 땅에서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적의 땅에 머물며 낮과 밤마다 홀로 삭였던 고독이 조선의 땅에 돌아와서는 고독을 넘어 슬픔이 되었다.
그러한데, 임금은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정녕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161쪽

상은 오래 아프셨다. 보위에 오른 후 반란과 전쟁이 끊이지를 않아 심화가 병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다. 노여움은 불안이 되고, 불안은 몸속 깊은 곳의 농증이 되었다. 상이 스스로 보위에 오를 때 소망이 없으셨겠는가. 그러나 소망은 적에게 짓밟히고, 능욕은 사관의 기록으로 역사에 남았다. 기록이 새로운 영광으로 채워질 날은 보이지 않고, 적의 내부를 깊이 알 수 없어 보위는 늘 위태하게 여겨졌다. 아프지 안혹, 세월을 어찌 견디실 수 있으실 것인가. 의관 하나 곁에 두는 일조차도 들고 일어서 가타부타 하는 대신들이 임금은 지겨웠다. 대신들이 삿되다 하는 의관을 부러 곁에 두고, 삿된 의관이 사술로 혈을 맘껏 찾으라고 벗은 몸을 아낌없이 내주었다. 심화가 마음을 닦는 성현의 도리만으로는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었다. 세월이 임금의 소망을 넘쳐서 흐르니, 임금의 세월이 임금의 것이 아니었다.
-173쪽

임금이 몸을 돌려 누웠다.여윈 몸의 등뼈가 세자를 향해 드러났다.
"울거라. 네 몸에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
세자에게 울라 하고 돌아누운 아비의 등이 흔들렸다. 상께서 울고 계셨다.
-176쪽

상소를 읽고 상소에 답하는 일로 임금의 하루가 새고 저물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욕은 오래 남았다. 궁이 정한 기운을 받는 자리에 있지 못하니 창경궁과 창덕궁을 버리고, 법궁인 경복궁도 버리고, 다른 궁으로 이어하시라는 상소가 또 난데없이 올라왔다. 대신들이 임금의 말을 받아, 백성들이 너나없이 곤궁한 이때에 새로운 궁으로 이어 운운한 자를 파직하시라는 상소를 다시 올렸다. 삿된 상소를 임금께 바친 승지도 파직하시라 했고, 그 상소를 올려 바쳤던 승지도 자신을 파직하시라 했다. 심화가 더쳐 다시 침을 맞으니, 삿된 침은 이제 그만 맞으시라, 또 상소가 올라왔다.
"경들의 뜻이 가상하다."
상이 답하셨다.
"가상하나 그만하라. 너희들이 나를 임금으로 보느냐!"
마침내 상이 참지 못한 말을 내뱉어 언로에 막힘이 없는 간원들이 다시 벌떼처럼 일어섰다.
몸에 가득한 울음은 임금의 것이었다. 누구도 누구를 위해 대신 울어줄 수 없었다. 세자가 임금의 곁에 있었으나, 임금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177쪽

세자가 심양에 들었을 때 날씨는 이미 초여름의 더위로 익어 있었다. 은근히 계절이 다가오고, 또 은근히 계절이 지나가는 조선과는 달라 북방은 모든 것이 급하고 뜨거웠다. 유목하며 살던 사람들은 무엇이든 머문 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계절을 쫓아 달리고, 계절을 피해 달렸다. 가다가 먼저 있는 자들이 있으면 치고, 그 자치를 차지했다. 그것이 그들의 피의 뜨거움이었다. 봄에 이르러 파종하고, 가을에 이르러 수확을 기다리는 조선 사람들의 일처럼 그들에겐 전쟁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하늘이 그들을 그런 땅에 보내었던 것이다.

-204쪽

"성 밖에를 나가보았느냐?"
"아바마마께서 밖에 계시니 제가 안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가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리 말하더냐?"
"......제가 그리 알았습니다."
세자의 눈빛이 쓸쓸했다. 원손의 말에 거짓이 없었다. 누구도 원손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나 원손이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스스로 그것을 알았을 터인데도 누가 귀에 대고 꽝꽝 소리를 질러대는 것 같았을 것이다. 원손의 자리란 것이 그런 것이었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 가장 먼저 배우는 일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었다.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겹겹이 쌓여 마침내 남는 것이 없었다.
-206쪽

임금은 늘 전란 중에 있었다. 피와 군사의 목숨으로 보좌를 얻은 임금에게 세월은 피와 군사의 목숨으로 되갚았다. 광해를 몰아냈던 자들이 다시 광해를 세우겠다고도 했고, 적에게 무릎 꿇은 임금을 상으로서 받들 수 없다고도 했고, 적에게 당한 굴욕과 적을 향한 원한이 임금을 향한 굴욕과 원한이 되었다고도 했다. 임금 대신 새로이 보좌에 올릴 자들의 이름으로 폐주인 광해부터 시작하여 무수히 많은 종친들이 거론되었다. 역모의 고변이 올라왔을 때 임금이 가장 먼저 물은 것은 누구냐는 것이었다. 역모를 일으킨 자가 아니라 역모를 일으키려던 자들이 추대하려고 한 자의 이름이었다.

-214쪽

적의 땅에서 사는 동안 수도 없이 본 것이 바로 역모였다. 역모가 역심을 가진 자들에게서 일어나지 않고 역모를 필요로 하는 시절에 의해 일어났던 것이다. 필요치 않은 모가지들이 역모에 의해 남김없이 잘려나갔다.

-222쪽

역모에 세자의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했다. 그 진위가 어떠하든 간에 조선의 임금이 자신의 아들을 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어느 임금에게 적이 아닌 자식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 수위가 역모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으니, 세자의 입지가 더할 수 없이 위험한 정도에 이르렀음은 분명한 일이었다.

-224쪽

틈은 어디에서나 벌어진다. 손톱 밑에 찔린 가시 하나 때문에 온몸이 썩을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세자는 믿을 만한 자였다. 청에 굴복하는 마음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기다림을 아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믿을 만하나 그래서 두려운 자였다.

-224쪽

산해관이었다. 장성이 시작되는 곳이었고 중원이 시작되는 곳이었으며 죽음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누르하치부터 시작하여 도르곤에 이르기까지 자들이 이곳에 이르기 위해 수십 년 동안의 전투를 멈추지 않았다. 죽어나가는 자들이 들판의 거름이 되고, 산 자들이 다시 전쟁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여자의 배를 부르게 했다. 아들은 다시 전쟁에 나가고, 딸은 전쟁에 나갈 아들을 낳기 위해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는 법을 일찌감치 배웠다.

-274쪽

"누구나 영원히 적입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걸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년 전, 조선은 그걸 몰랐습니다. 조선의 적이 청뿐만 아니라 명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셨어야 했습니다."
-312쪽

(작가의 말 중)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이 있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복할 당시의 기록들, 그 격변의 시기의 기록들을 중국 학자들이 조선왕조의 기록에서 빌려다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의 기록 문화는 그야말로 놀랍다. 경의를 금할 수가 없다. 너무나 냉정하여 너무나 무한한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있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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