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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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둘째 주. 인류는 한 명의 천재를 잃고 새로운 천재를 맞이한다. 월요일에 비틀스의 전 멤버 존 레넌이 광적인 팬에게 살해당했고, 금요일에는 애플 주식의 공모가 시작되면서 스티브 잡스라는 청년이 하룻밤 사이에 2000억 원을 번 ‘미국 최고의 자수성가 거부’가 됐다. ‘애플’ 음반사의 비틀스는 한 시대의 막을 고했고, 같은 시기에 ‘애플’ 컴퓨터는 새로운 시대를 알린 것이다. 한동안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라는 이름 때문에 비틀스 저작권자들과 싸워야만 했는데, 그가 아이팟을 출시해 음반 시장을 장악하면서 두 애플의 악연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 이후 가장 유명한 ‘사과’를 소유한 역사적 인물이 됐다.
-28쪽

그가 한 강연에서 했던 말은 분석의 틀에만 매몰된 합리적인 (척하는)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양식의 삶을 전해준다.
"시장조사는 하지 않았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할 때 시장조사를 했느냔 말이다! 천만의 말씀.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혁신이다."
이제 책상 위에 ‘디지털 시대의 구루’ 스티브 잡스를 올려놓고 ‘과학적 사고’, ‘창조적 사고’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할 때다.
-33쪽

잡스는 컴퓨터 산업에 미학을 도입했다. 그는 최초로 컴퓨터에 서체의 아름다움을 부여했고, 자신이 개발하는 모든 제품에 미적 디자인을 구현했다. 한때 ‘번거로운 케이블은 물론이고 언젠가는 모니터와 키보드와 본체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애플의 뛰어난 디자인 때문에 이제 기기의 물질성은 사라질 수 없게 됐다. 애플 사용자들은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구현한 자신의 기기가 남들 눈에 보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심지어 고장 난 기기의 이어폰을 끼고 다닌다고 하지 않는가. 애플의 미학은 빗물질화를 지향하던 디지털 기술을 재물질화 쪽으로 돌려놓았다.

-38쪽

문자가 등장하기 이전에 정보를 저장하는 유일한 장소는 두뇌였다. 예나 지금이나 ‘아는 것이 힘’이다. 푸코의 표현을 빌리면 ‘지식과 권력’은 한 몸이다. 이 때문에 사회 성원 대다수가 문자를 모르던 때는 가장 많은 기억을 가진 자, 즉 연장자가 사회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문자가 등장하면서 비로소 인간은 정보를 외장 할 수 있게 된다. 지식이 외장 되면, 그것은 인간 두뇌의 자연적 한계를 넘어 무한히 축적되기 시작하는 우리는 이것이 이른바 ‘문명’의 시초임을 알고 있다.

-44쪽

지난 몇 년간 구글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작은 회사 ‘23andMe'에 40억 원 이상의 돈을 투자해왔다. (...) 서비스를 신청하면 일주일 안에 키트와 간단한 설명서를 집으로 보내준다. 이 키트 안에 침을 뱉어서 다시 우편으로 보내면, ’내가 유전적으로 유방암과 당뇨병 등을 포함해 118가지 유전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확률로 표시해 알려준다.
그뿐인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내 조상은 어디에 살았으며, 내 몸속에 다양한 민족의 피가 얼마나 섞였는지, 내 혈육의 뿌리를 찾아준다. 이미 시판되고 있는 ‘23andMe' 서비스의 가격은 399달러(약 45만 원). 필요한 분석 기간은 8주다. 구글은 지금 침 한 번만 퉤 뱉으면 내가 누구인지, 내 몸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세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유전자가 포함된 인간 염색체의 개수가 23이라 ‘23andMe'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8년 ≪타임≫지가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한 ‘23andMe'서비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구글이 세상에 떠도는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몸속에 있는 바이오 정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52쪽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다’와 이미 동의어가 되어버린 구글은 지난 5년간, 세상 모든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줄기차게 진행해왔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모든 책을 스캔해서 서비스하는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1000만 권에 이르는 책의 디지털 작업을 완료했다. 저작권이나 출판권 등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페이지뷰에 따른 비용 지불’ 등의 방식으로 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55쪽

20세기 사회와 문화, 예술, 그리고 과학을 접두사 ‘포스트Post’의 시대라고 표현한다면, 21세기는 예상컨대 ‘프리Pre’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난 100년간 지구 상에는 정치사상적으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뒤를 잇는 이데올로기가 수없이 등장했다가 제대로 검증도 받기 전에 사라진 ‘포스트 사회주의’, ‘포스트 민주주의’의 시대였다.

-60쪽

예측·예방 시스템이 우울한 이유는 그 앞에서 우리 모두는 잠재적 범죄자, 잠재적 환자라는 데 있다. 치료해주고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데 얌전히 속수무책일 수밖에. 그 대신 우리는 ‘발병 확률 50~60%’, ‘범죄 확률 70%’라는 낙인이 찍힌 채 항상 감시받아야 한다. 미리 약을 먹으려고 ‘치료 기간보다 훨씬 더 긴’ 기간 동안 예방약과 정기검진에 돈을 지불해야 하며, 하지도 않은 범죄, 앓지도 않은 병 때문에 직장을 잃게 된다.(‘간질 발병률 30%’인 비행사가 항공기 기장으로 취직할 확률은 그 비행기에 타겠다는 승객 수만큼 희박하다).

-62쪽

영화(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선 범죄예방국의 형사들이 범죄 현장을 덮쳐 살인을 막고 살인자를 ‘살인미수자’로 바꿔 감옥에 넣는다. 미수 사건의 범죄율은 늘지만 살인 사건과 같은 중범죄의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에 위안을 얻어야 한다. 그렇다면 만약 살인이 예측 가능할 정도로 결정된 운명이라면, 다른 누군가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같은 일이 벌어졌을 거란 말 아닌가? 그렇다면 살인을 저지른 자의 도덕적 죄는 과연 무엇일까?

-64쪽

앞으로 창의적이지 못한 기술은 기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기술도 이제는 예술과 문학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다.

-71쪽

수백만의 신을 모시는 다신교 문화는 특정 종교의 독단에서 자유로운 법. 다른 나라에서는 이단, 혹은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집단들도 일본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일상으로 존재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상적 생활의 바깥에 존재해 그저 영화를 통해서나 볼 수 있는 폭력 조직도 일본에서는 그저 좀 껄끄러운 ‘친구’로서 일상생활 속에 용인된다. (20세기 소년)

-101쪽

키티는 1974년 플라스틱 동전 지갑에 그려진 캐릭터로 처음 등장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이름이 없어 그냥 ‘이름 없는 하얀 고양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 고양이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듬해인 1975년. ‘키티’라는 이름은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키티 화이트’. ‘화이트’라는 성은 물론 나중에 붙인 것이다. ‘키티’라고 하면 분홍색부터 떠오르지만, 고양이 자체는 하얀색이다.

-106쪽

인형에 서사를 부여하는 전략이 키티에게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 올해로 쉰 살 생일을 맞은 바비 인형이 있잖은가. 바비 역시 교사, 요리사, 스튜어디스, 에어로빅 강사, 우주인 등 100개가 넘는 화려한 이력서를 갖고 있다. 키티에게 다니엘이 있다면, 바비에게는 켄이 있다. 이들의 연애사도 극적이다. 몇 년 전 바비는 43년간 사귀었던 켄과 결별하고, 서핑보드를 탄 멋진 남자 블레인과 새롭게 만났다. 바비 인형의 매출이 떨어진 게 결별의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블레인이 켄이 떠난 자리를 채울지는 미지수. 그 사이에 켄도 새로운 변신을 거듭하며 다시 바비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110쪽

물론 키티와 바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전 세계 어린이에게 미국 백인 중산층 여성의 욕망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바비는 매우 이데올로기적이다. 이 한계를 넘고자 마텔 사는 동양인 바비, 흑인 바비, 히스패닉 바비를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다른 인종 바비에게서 우리는 매우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바비가 철저하게 백인 여성의 미를 절대화했다는 고백을 읽는다. 반면 키티는 ‘무국적성’이라는 일본 대중문화의 전형적 특성을 갖는다.

-110쪽

기쁨(:-))이난 슬픔(:-()을 표현하는 미국식 이모티콘이나 스마일 표시(☹,☹,☹)를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주로 입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주로 눈 표정에 변화를 주어 감정을 표현한다. 일례로, 우리들의 이모티콘(^.^, ㅠ_ㅠ, ㅜ_ㅜ, @@)을 떠올려 보시라.

-115쪽

키티의 표정이 오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입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 눈이 아무런 감정 상태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흰자위 없이 까만 눈동자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키티는 그저 멍하니 우리를 바라볼 뿐, 아무런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덕분에 사람들은 키티의 눈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해 다양하게 감정을 읽는다.

-117쪽

내가 찍는데도(혹은 내 가장 가까이에서 찍는데도),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가장 왜곡된 모습’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셀카는 ‘삶의 기록’이 아니라 ‘욕망의 기록’이다.

-127쪽

졸리는 형해화한 기존 도덕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도덕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바로 여기서 묘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졸리 특유의 도덕이 탄생한다. 이를테면 졸리는 이혼을 두 번 할 정도로 인습에서 자유로우나, 그렇다고 가족의 가치를 우습게보지 않는다. 그녀는 세 아이를 입양하고, 스스로 세 아이를 낳을 정도로 가정적인 사람이다(사진을 보니 자녀의 구성도 다양하다.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코카서스계.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다). 덕분에 여전사와 팜므파탈은 동시에 모성의 상징, 모유 수유를 강조하는 동상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165쪽

단순하면서도 지적이고, 대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가방과 구두들. 여기에 덧붙여 프라다는 마케팅도 얄밉도록 잘한다. 그들의 마케팅 중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현대예술과 자사 제품을 병치시킴으로써 고급 이미지를 강화하고 ‘문화의 선두주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180쪽

우리 기업들이 프라다에게 배울 것은, 21세기는 브랜드를 넘어 명성을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제품의 성능과 질, 가격, 디자인은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하지만, 제품과 함께 파는 ‘문화’는 기업의 명성을 높인다. 21세기 명품은 브랜드를 잘 만들고 마케팅을 어떻게 하느냐를 넘어 ‘제품과 함께 기업이 어떤 문화와 스타일을 파는가’로 결정된다. 프라다는 일찌감치 장인 정신은 버렸지만, 혁신적이고 세련된 문화를 가방 속에 끼워 팔았기에 ‘21세기 명품의 대명사’가 됐다.

-183쪽

생수의 공식 명칭은 ‘먹는 샘물’이다. 그러나 빙하를 녹이고 200미터 심층 바다에서 지하수를 뽑아내 "이것이 살아 있는 물生水이다!"라고 주장하는 순간, 수돗물과 보리차는 졸지에 ‘죽은 물’이 되어버렸다.
인간이 하루에 먹는 물 소비량은 약 2리터, 1년이면 730리터, 70년이면 5만 1100리터. 평생 먹을 물을 프랑스 고급 생수 ‘에비앙’으로 채우려면 7700만원. ‘제주 삼다수’로 채우려면 2100만 원 정도가 든다. 그러나 수돗물로 채운다면 단돈 1만 6380원. ‘삶의 질’을 중히 여기는 21세기 현대인들은 제 몸의 70%를 차지하는 물의 수질 관리를 위해 수천만 원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186쪽

영국에서 볼빅의 생수 1리터가 판매될 때마다 아프리카에 10리터를 보내주는 자선 사업을 하고 있다. 에비앙에서도 물 부족 국가에 물을 보내거나 지구 온난화를 막는 캠페인을 벌여 ‘빙하를 녹여 판다’는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생수 한 병을 마시는 것은 자동차 1km를 운전하는 것과 동일한 정도로 환경에 영향을 주며, 생수 1리터를 만드는 것이 같은 양의 수돗물을 생산할 때보다 600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환경단체들이 2조 원이 넘는 생수산업에 반기를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191쪽

생수가 비싼 것은 물 때문이 아니라 그놈의 ‘병’ 때문이다. 4800미터의 알프스 산맥(에비앙), 해저 200미터 이하에 존재하는 청정한 고유수(마린 워터), 캐나다산 빙하수(휘슬러), 프랑스산 탄산수(페리에), 남태평양 피지 지하 암반에서 뽑아낸 암반수(피지워터), 핀란드에서 수입한 자작나무 수액(버치 샙) 등 전 세계 산천에서 귀하디귀한 물들을 한반도까지 공수하려니, 리터당 1만 원이 넘을 수밖에.
그다지 몸에 좋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지구에 유익하지도 않지만, 생수는 이제 휴대전화처럼 ‘패션 액세서리’가 됐으며, 상류 사회에 대한 ‘대리 체험’이자 ‘자기 과시 소비’의 아이템으로 ‘21세기의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192쪽

굳이 물을 사다 마시는 게 의아해서 물어보니, 독일은 지층 전체가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물에 석회가 너무 많이 섞여서 그런단다. 하긴 그곳에서는 설거지를 하고 나서 꼭 천으로 물기를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잔이나 접시에 허연 석회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197쪽

선거일 전날 "당신은 투표할 의향이 있습니까?"라는 설문 조사에 참여하게 되면, 그들이 투표할 확률이 무려 25%나 올라간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는 예년에 비해 투표율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는 뉴스를 접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투표에 참여할 확률이 20% 이상 올라간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 사람들의 의도를 측정하는 설문 조사가 그들의 구매 의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209쪽

보수적인 사회에서 사회적 풍자의 길이 사실상 가로막혀 있다 보니, 희극에 내재된 공격성이 쓸데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일까? "너희들 오토바이 타는 형들 부럽지? 가스 마시는 형들 부럽지? 걔들 지금 오토바이 타고 가스 배달하고 있어." 이런 개그를 들으면서 대중은 폭소를 터뜨린다. 하지만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며 열심히 사는 청년들은 이런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교양과 반성이 없는 개그는 쓸데없이 비열해질 수 있다.

-229쪽

‘정체성identity'이라는 말은 동시에 ‘동일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현실은 우리에게 오직 하나의 정체성만을 갖도록 강요한다. 예를 들어 남자는 남자로 확인되어야 하고, 여자는 여자로 확인되어야 한다. 이 규칙을 깨고 남자가 여장을 하거나 여자가 남장을 할 경우, 곧바로 ‘변태’라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마와 아니무스, 즉 남자 속의 여자, 여자 속의 남자가 있다. 다만 그것이 ‘정체성’의 미시정치 속에서 발현되지 못할 뿐이다.

-259쪽

9시 뉴스가 메인 뉴스가 된 가장 그럴듯한 근거는 ‘직장인의 일주기 생활 패턴 가설’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주로 보는 시청자층은 중장년의 남자들. 그들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해서 집에 와 싯고 텔레비전 앞에 앉기까지 가장 빈도수가 높은 시간대가 밤 9시라는 주장이다. 일찍 퇴근하는 문화가 정착된 미국이나 영국은 메인 뉴스를 오후 6시에 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직장인을 고려한 시간 배치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진다. 그것이 일 때문이든, 술 때문이든.

-271쪽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장난감은 ‘쓰레기 더미와 자연’이다. 잘 갖추어진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보다 장난감이 하나도 없어 장난감을 ‘만들어서’ 노는 아이들이 실제로는 창의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장난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실제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은 레고를 조립하며 노는 어린이가 아니라, 레고 회사에서 ‘장난감’을 만드는 기술자들이다!).

-283쪽

과거의 백과사전은 필자와 독자의 신분적 구별 위에 서 있었다. 이 관계에서는 유식한 지식인이 무식한 민중을 깨우치는 일방적 ‘계몽’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위키피디아는 필자와 독자의 이 신분제를 무너뜨렸다. 거기서는 독자가 필자가 된다. 계몽주의가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일환이었고, 민주주의가 자기가 자신을 다스리는 ‘자치’의 이념이라면, 위키피디아는 이 계몽주의가 목표로 삼았던 민주주의의 궁극적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민중은 스스로 가르치고, 스스로 배운다.

-297쪽

위키Wiki란 하와이 원주민어로 ‘빠르다’라는 뜻이며, ‘What I know of it(이것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의 머리글자를 딴 말이다.

-302쪽

웹 2.0 시대인 오늘날, 위키피디아의 미래는 밝게만 보인다. 더 크게 성장할 것이며, 더 많은 사용자가 위키피디아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위키피디아가 소중한 이유는 다음 세대에게 "공유할수록 서로 부유해진다"라는 인생의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주었다는 데 있다. 위키피디아는 우리들에게 지식을 운반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참여와 공유의 습관을 가르치고, 그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305쪽

우리나라에 있는 대학의 수는 1970년 152개에서 2008년 368개로 두 배 이상 증가했고, 대학 진학률도 28.6%(1970)에서 83.8%(2008)로 급증해 일본(49.1%)이나 미국(63.3%)에 비해 훨씬 높은 편이다. 이 중 이공계 대졸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238.9명으로, 미국(111명), 독일(82.1명), 일본(126.9명)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이공계 박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9명으로, 스위스의 1/5, 독일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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