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지식의 탄생 - 지식채널e는 어떻게 태어나고 진화했나
김진혁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지식e 1권을 처음 보기 전까지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나와 지식채널의 첫 만남은 문자로 시작되었다. 영상도 없고 음악도 없는 상태에서의 만남이었건만 충격적이었다. 화면에서 자막으로 처리되는 그 문구들이 책에서는 줄간을 이용한 '시간 차'가 있었고 그것은 운율을 담아 내 가슴에 꽂혔다. 그래서 지금까지 5권이 나온 중에 1권이 가장 좋았고 애착이 남는다.  

그 후 2권부터는 영상을 먼저 접하고 책에서 다시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두 일장일단이 있었다. 영상은 영상대로의 장점이, 책은 책대로의 장점이. 그렇게 아꼈던 지식채널. 이 방송을 책임졌던 김진혁 피디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될 때 얼마나 분개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연이 끊기지 않고 이렇게 그의 손길이 담긴 책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무척 반갑다.  

이 책은 말하자면 지식채널e가 탄생하기까지의 전 과정, 그러니까 a부터 z까지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어떻게 하다가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는지, 프로그램의 길이는 왜 5분을 넘지 않는지, 왜 자막에 그리 힘을 쏟는지, 편집의 방향은 어떠하며, 어떤 메시지를 추구하는지, 피디와 작가와 음악은 누가 담당하고 있는지, 이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과, 수상했던 방송상이며 시청자들의 궁금증 등등, 우리가 궁금해할 법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물론, 그런 질문들과 답변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을 눈으로 보고는 와야 할 것이다. 워낙 유명해졌으니, 그런 걱정은 기우겠지만. 

보통의 프로그램은 자막이 화면을 설명하는 부수적 요소에 지나지 않지만, 지식채널e는 반대로 자막이 중심이고 화면을 부차적인 요소로 잡았다고 한다. 나로서는 책으로 제일 먼저 만났기 때문에 자막-텍스트-에 대한 기대와 의존이 더 컸던 편이다. 자막을 단순히 문장이나 단어를 보여주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효과'를 적절히 사용함에 따라 영상 화면으로의 느낌을 주는 편집도 늘 마음에 들었다. 자막이 등장할 때의 효과음도 물론 일등공신. 

지식채널e는 '지식'을 다룰 뿐 아니라, 교훈과 메시지를 늘 잊지 않는 편임에도 그게 불편하지 않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직접적인 훈계가 아니라 좀 더 은유적이고 한 번 더 걸러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제작진의 원래 의도였다는 것이 반갑다. 교육방송이면서도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그 교육스러움이 아니라서 말이다.  

영상과 편집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로서는 피디가 직접 설명해주는 화면의 효과는 신기하고 재미날 수밖에 없었다. 박지성 선수 편에서 그에 대한 비난의 문구는 뒤로 물러나며 사라지는 '소멸'의 감정을 담았고, 반대로 의지에는 '극복'의 감정을 담아 앞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는 것.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런 효과에도 제작 의도와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박지성 선수 편을 보았는데 소름이 돋고 말았다. 이래서 아는 만큼 더 잘 보인다고 하는 것일 게다.  

지식채널e에 관한 13문 13답도 인상적이었다. 최근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김진혁 피디는 약한 쪽에 '양보'를 말할 수 있지만 '굴복'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문득 지난 6월 선거 때 진보신당에 쏟아진 비난과 통합에 대한 강권이 떠올랐다. '양보'와 '굴복'은 천지 차이인 것을...  

더불어 프로그램의 성격을 '보수'라고 말한 것이 꽤 충격적이었다.  

<지식채널e>의 정치적 입장은 ‘보수’에 가깝다. <지식채널e>가 말하는 기본적인 메시지가 ‘착하게 살자’는 일종의 ‘보편적인 선’이고, 이것이야말로 보수적 가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67쪽  

우리에겐 자칭 보수라고 외치는 이상한 정당이 있어서 어느덧 우리에게 '보수'의 의미가 왜곡되어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가치관을 내세운 프로그램이 보수적이다고 하니 괜히 놀랄 수밖에. 진정한 보수란 이렇게 근사한 것임을. 웬지 이 부분은 읽고 나서 한숨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정치 판에서 '보수'라고 쓰고 '수구 꼴통'이라고 읽어오던 습관이 있어서 말이다.  

지식채널e는 '소외'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서 흥미를 느껴 클릭했다가 마음이 아파서 한숨을 쉴 때가 많았다. 그게 원망스럽다는 건 결코 아닌데 제목에서 내용을 짐작하기 힘든 부분은 다소 아쉽기도 하다. 나중에 다시 찾아보려고 할 때 바로바로 해당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서 언급된 영상들을 많이 찾아보았는데 이미 보았던 것인데 제목에서 바로 떠올리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뭐, 내 탓이기도 하지만. 

지식채널e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재미'와 '교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단 5분 동안에 보여주다. 경제적 효과로도 최상의 결과가 아니던가. 최근에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으로 '유럽의 문제아'편이 있었다. 핀란드의 이야기였는데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잡고 말았던 아주 뭉클한 이야기였다. 책 속에서 '프레임'으로 설명했는데, 우린 늘 그 둘을 극단적 대비로 묶어서 하나를 원한다면 다른 하나는 꼭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세뇌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해보지도 않고서 말이다.  

요즘엔 드라마 앞에 '막장'이란 수식어가 자주 붙는데 드라마들도 이 프로그램처럼 '재미'와 '의미'를 같이 추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명품 드라마가 없는 건 아닐 테지만 점점 드물어진다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일일 드라마가 좀 변했으면 하는 삼천포 바람이 있다.   

김진혁 피디의 마지막 연출작은 드라마 형식으로 어렵게 완성한 <거대 우주선 시대>는 아직 영상으로 접하지 못했다. 6부작이라고 하는데 차차 찾아볼 생각이다. 아무튼 이 작품이 결국은 피디님이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의 완성이 되고 말았다. 표현하자면 이렇다.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구하는 것. 

머리와 가슴을 함께 강타하는 메시지다. 신선한 것이 아님에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메시지.  

소외에 대해서 말을 하고, 직접 가르치려 들지 않고, 우리가 몰랐던 지식뿐 아니라 잘못 알고 있는 것까지 파고들어 진실에 다가가고자 애썼던 마인드로 만든 프로그램.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결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공존.  

우리의 삶 전반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게 우리를 살게 하는 길이기도 하고.  

책으로 보는 지식e보다는 좀 더 통통 튀는 느낌의 책이었다. 고된 산고의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 수고로움에 더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비록 김진혁 피디를 다시 지식채널에서 만나기란 당장에 어렵겠지만, 어쩌면 앞으로도 힘들지 모르겠지만, 지식채널e는 여전히 그 전통을 계승하며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고백하자면, 지식e 5권은 사두고서 아직 읽지 못했는데 당장 비닐을 뜯어야겠다. 너무 좋아서 아껴둔 거라고 한다면 사실 핑계일 테지? 아무튼, 지식채널e의 끝없는 진화를 기대하겠다.

덧)111쪽 중간에 오타가 있다. 정 작가님 얘기 중에 '번뜩하고 아이디가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적혀 있는데 문맥상 '아이디어'가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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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00: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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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1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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