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북한에 함락되고, 이승만 대통령은 남쪽으로 피신을 떠난다. 이 대통령이 배편으로 여수를 거쳐 부산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ㄴ 나는 그를 인터뷰 하기로 결심한다. 1년 전에도 그를 이니터뷰 한 적이 있던 터였따. INS에 기사를 송고하고 난 뒤, 이 대통령을 인터뷰 한 적이 있던 터였다. INS에 기사를 송고하고 난 뒤, 이 대통령을 인터뷰 하면 어떻게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을지를 고심했다. 당시 나는 미 ABC 방송의 통신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기사 한 건당 얼마를 받는 식이었따. 이 대통령의 음성을 해외로 내보내는 데에는 몇 가지 난관이 있었다. 우선 테이프식 녹음기가 없었다. 누군가 레코드판에 녹음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레코드 녹음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은 라디오 방송국밖에 없었다.
자신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고 싶었던 이 대통령은 매우 협조적이었다. 우리는 부산에서 마련한 이 대통령의 리무진을 타고 라디오 방송국으로 향했다. -42쪽
텔레비전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한참 더 기다려야 하는 시절이었다. 방송국에서 나는 이 대통령을 인터뷰 했고, 이를 옛날 축음기에서처럼 78rpm의 회전 수로 레코드판에 녹음시켰다. 이 대통령의 음성은 레코드판에 담았지만, 이제 이것을 어떻게 미국으로 보내느냐가 문제였다. 수소문 끝에 축음기와 단파 라디오 무전기를 갖고 있는 미군 병사를 찾아냈고, 그와 나는 녹음한 인터뷰를 그날 밤 내내 무전으로 내보내며 누군가 이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ABC 방송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ABC 방송 측이나 다른 그 누구로부터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걸로 봐서는, 그 인터뷰는 끝내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 -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