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미자 씨 낮은산 작은숲 12
유은실 지음, 장경혜 그림 / 낮은산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멀쩡한 이유정으로 유쾌함을 선사했던 유은실 작가님의 책이다. 장경혜 작가님의 그림은 처음인데 이 작품의 분위기를 너무 잘 반영해서 조금 아팠달까. 

식구도 일가친척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미자씨. 낡은 옷차림에 후줄근한 인상. 동네 아이들의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빼앗아 먹는 철없는 어른 미자 씨는 '미자' 혹은 '아줌마'로 불리는 아가씨. 

그런 미자 씨가 좋은 일을 해 주고 치약 한 상자를 받았다. 사우나 용으로 무려 60개나 들어있었다. 치약을 슈퍼에 갖다 주고 외상값을 갚고 싶었지만 사우나 용이어서 그러지도 못했던 미자 씨는 슈퍼 아줌마한테 8개나 내주고 말았다. 도둑 맞는 느낌이 들어서 눈물이 핑 돌것 같았던 미자씨. 슈퍼 아줌마 나쁘다고 생각될 무렵, 작가님은 소박한 반전을 마련해 주니, 미자씨 얼굴에 다시금 미소가 솟는다. 이 책에서는 줄곧 그런 즐거움이 있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속 마음, 속 뜻, 속 이야기.  

미자씨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외롭고 가난한 어른이었다. 반면 주인집 조카 성지는 까칠하고 똑똑한 척을 하며 신경질도 잦았지만 역시 외롭고 외로운 아이였다. 치약을 큰엄마에게 갖다 드리고 칭찬 받은 것이 기뻐서 치약 하나 더 얻고 싶은 마음의 아이, 미자씨가 귀찮지만 마을 회관 컴퓨터를 이용해서 치약으로 할 수 있는 일 10가지를 뽑아 오기도 했고, 동태 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법도 알아오기도 하였다. 성지 덕분에-사실은 작가님 덕분에-모기에 물렸을 때 치약이 요긴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미자씨가 부식 차 장수에게 마음이 있어 아침 식사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무척 귀여웠지만 가난한 살림살이와 옷차림이 오래오래 밟혔다. 뿐이던가, 그렇게 준비한 그녀의 식사 대접이 시작도 되기 전에 벽에 부딪쳤을 때는 안타까움을 넘어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맛없는 것도 '보통'이라고 말해서 긍정 마인드를 가질 줄 알았던 미자씨. 다시다 살 돈은 없지만 라면 스프를 조금씩 모아서 양념으로 쓸 줄 아는 알뜰한 미자씨, 순대 소금을 비밀 양념이라고 뻐기던 유쾌한 미자씨. 그러나 현실은 좋아하는 남자에게 밥 한끼 같이 먹자고 말할 수 없는 처지, 일손 필요할 때나 상대해주는 동네 아줌마들, 외로운 아이 성지만이 상대해주는 어른 미자씨.  

가슴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미자씨처럼, 독자도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이 안타까운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도 있으니까.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 어린이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기대하는 건 촌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참 먹먹하다. 어린이 친구들은 이 책을 읽고서 어떤 느낌을 받을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미자씨의 마음을, 성지의 마음을 너무 어린 친구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도 아이들의 가슴에 남아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면서 되살아나 깊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미자씨에게도 사랑이 필요하다. '어른' 미자씨에게도 위로가, 다독임이, 칭찬이 필요하다. 미자씨는 어디에나 있다. 미자씨가 보이지 않는다면,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 속이 너무 포화상태여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7-04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4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