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담긴 병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33
최양숙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2002년 11월
절판


우리 나라 작가가 쓰고 그린 것이지만 영어로 된 작품이었기에 번역되어 출간된 책이다.
유심히 들여다 보니 작가의 이름이 보인다. 최양숙.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은혜가 처음으로 학교에 간 날.
학교 버스 안에서 친구들은 은혜의 이름을 이상하게 발음하며 웃었다.
은혜는 귀밑까지 새빨개져서 교실로 들어갔다.
자기 소개를 할 때 이름을 말해야 했지만 은혜는 영어 이름을 정하지 못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지 못했다.

영어 이름을 짓겠다는 은혜에게 엄마는 '은혜'라는 이름이 얼마나 예쁜지를 강조하셨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국 아이들이 발음하기엔 힘든 이름.

싱크대 위 벽에 걸린 '하면된다'라는 글자가 사뭇 무겁다. 해도 안 되는 게 무수히 많은 세상이지만, 저런 마음으로 이민 사회에서 적응하며 열심히 살았을 테지? 저 말이 나쁘거나 싫다는 게 아니라, 저 말을 자주 사용하던 어느 정치인이 싫을 뿐. ^^

김씨 마켓의 김씨 아저씨.
은혜의 이름은 '베푼다'는 의미의 예쁜 이름이라며 은혜를 환영해 주셨다.
그렇지만 은혜는 아직도 갈팡질팡.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할지 고민이다.
아만다, 로라 등등 이것저것 미국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보지만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음 날 학교에 가보니 은혜의 책상 위에 유리병이 하나 올려져 있다.
그 안에는 아이들이 써 놓은 이름들이 담긴 쪽지가 한 가득.
자기 동생 이름인데 써도 된다고 하는 신디,
자신이 읽은 책의 주인공을 추천하는 네이트.
네가 온 날이 수요일이라고 '웬즈디'란 이름을 적어 넣은 랠프까지...
친구들의 마음씀이 예쁘다. 제일 맘에 드는 것으로 고르든가, 아님 다 골라서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을 쓰라고 하는 재미있는 랠프!
유리병 너머 은혜의 얼굴이 발갛게 홍조되어 보인다.

첫날 교실로 인도해 준 곱슬머리 친구가 다시 한 번 은혜의 이름을 묻는다.
은혜는 부를 수 있는 이름 대신 보여줄 수 있는 이름을 알려준다.
한국을 떠날 때 할머니가 선물해준 자신의 도장이었다.
최은혜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예쁜 내 도장을 하나 찍어서 같이 올리고 싶었는데 도장이 직장에 있다. ^^

매일매일 유리병엔 새 이름이 가득 차고, 은혜는 여전히 갈등 중.
그러다가 드디어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학교에 간 날, 유리병이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다 함께 찾아 나섰지만 깜깜무소식.
앞에 나왔던 그림을 보고선 선생님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남자다. 하하핫!

은혜는 유리병을 포기하고 자신의 이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베푼다는 의미도 강조했다.
친구들이 발음을 제대로 못하자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이제 친구들은 은혜를 '은혜'로 제대로 부른다.
역시 은혜는 '은혜'로 불릴 때 가장 자연스럽다.
은혜 역시 제 이름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마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적응하기 힘든 시기에 방황도 될 법 하건만 은혜는 잘 견뎌주었고 자신의 정체성도 잊지 않았다. 그런 어려운 단어로 고민하진 않았겠지만.^^

이야기가 재밌고도 따뜻하다.
특히 곱슬머리 친구 조이가 보여준 우정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이름'이 주는 의미는 늘 각별하다.
대학 때 회화 시간에 쓴 내 이름은 Lunar였다.
음, 당시 레드문을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짓게 된 이름인데 발음이 힘들어서 그렇지 무척 맘에 들었더랬다.
실제 내 이름을 외국 사람이 발음하긴 무척 힘들 것 같다. 아무래도 받침있는 이름은 그렇다. 사실 한국 발음으로도 좀 어렵긴 하다.^^
그렇지만 어려운 이름도 기꺼이 불러주는 것, 또 마음을 담아 사랑을 담아 불러주는 이름의 힘은 대단하다. 내 이름의 주인공, 나를 표현하는 이름, 소중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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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6-20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친구들의 마음이 이쁘네요. 병에다 쓸 이름을 적어주다니.^^
전에 저는 외국인한테 가운데 이름만 알려주었더니, 그걸 성으로 알고 부르는...(아, 페이퍼에도 썼었다.ㅋㅋ)
저는 그냥 귀찮아서 냅뒀다지요.ㅋㅋ

마노아 2010-06-20 16:29   좋아요 0 | URL
엘신님은 한 글자로 불러도 엘신님처럼 들려요. 하핫^^
친구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려고 애쓰는 모습도 예뻐요.
여러 나라 말로 자기 이름을 가지면 그것도 무척 재밌을 거예요.

hnine 2010-06-21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아이가 읽어보라고 권해서 보았던 책이어요.
읽고 바로 반납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그때 느낌이 다시 되살아나네요.

마노아 2010-06-21 14:11   좋아요 0 | URL
아이가 읽어보라고 권하다니 무척 근사해요. 엄마와 아이 사이의 교감이 그려져요.^^

같은하늘 2010-06-22 00: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hnine님 서재에서 이 책을 보고 마음에 들어 찜해 두었던 기억이...^^

마노아 2010-06-22 08:45   좋아요 0 | URL
제가 나인님 덕분에 이 책을 샀던 걸까요? 어쩌다가 구입했는지도 잊어버렸어요.ㅜ.ㅜ

집요정 2010-07-01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마노아 2010-07-02 06:28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