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배용준 지음 / 시드페이퍼 / 2009년 9월
품절


천연잿물을 쓴 한지는 종이의 질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윤택도 질감도 매우 우수하다. 양잿물과 달리 천연잿물은 인체에 무해하다. 심지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어, 예전에는 사약을 내릴 때 천연잿물에 섞어 먹였다고 한다. 천연잿물을 내리기 위해서는 콩, 고추, 메밀, 볏짚, 목화태 등의 재료를 쓴다. 천연잿물로 만든 종이는 태웠을 때 하얀 재가 나오고, 약품으로 만든 종이는 까만 재가 남는다고 한다. -128쪽

이곳 암자의 해우소는 아직도 옛날식이다.
자칫 소홀하면 냄새나 관리가 엉망일 수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
정갈한 상태로 남아 있다. 아궁이에서 타고 남은 재를 뿌리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희미하게 남아있던 불씨로 인해 종종 화재가 나곤 해서
그 대신에 그때그때 톱밥을 뿌려주는데, 효과는 같다.
이렇게 쌓인 것을 직접 퍼내 한쪽에서 말려 밭에다 뿌리면 최고의 퇴비가 된다.

특이한 것은 스님이 아닌 일반인용 해우소에서 나온 것은
별도로 구분해 그냥 버린다는 점이다.
인스턴트 음식을 많이 먹어서인지 독소가 많고 영양이 없어
퇴비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157쪽

오대산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상원사와 숱한 전설로 유명하다. 고려 때의 고승 나옹선사의 허름한 토굴은 아직도 스님들이 홀로 거하며 수행하는 곳으로 남아있고, 조선왕조 7대 임금 세조는 비극의 역사를 써내려간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오대산에서 수많은 불사로 만회하려고 했다. 세조는 경주 에밀레종과 더불어 국내에 두 개밖에 없는 신라 범종을 전국에 물색해 찾아낸 다음 이곳에 옮겨놓았다. -159쪽

사찰에는 휴식이 있다. 삶의 성찰이 있다. 자신을 채찍질해 나아가는 수행이 있다. 문화가 있고 전통이 있다. 차가 있고 음식이 있다. 건축이 있고 유물이 있으며, 무엇보다 이야기가 있다. 그것들이 그저 숨죽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정중동, 산사의 고요함 속의 움직임이다.-170쪽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예전에는 찻씨를 주머니에 넣어 시집가는 새색시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부리가 유독 튼튼하고 처음 심겨진 곳에서 옮겨 심으면 잘 자라지 못하는 차나무처럼, 시집간 곳에 뿌리를 내리고 일부종사하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꽤나 엄한 속내를 가진 전통이지만, 그보다 다감한 의미도 있었다. 찻씨는 한 구멍에 두 개를 넣어도 한 뿌리로 자라는 특성이 있는 것처럼, 부부는 어떤 순간에도 일심동체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186쪽

야생차밭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무성한 풀밭으로 오해하기 쉽다. 차나무는 잡초 등과 함께 자연스럽게 자라기 때문이다. 잡초와 경쟁하며 자란 찻잎의 자생력이 강한 것은 당연하다. 벌레들은 6~7월경에 남아있는 뻣뻣한 묵은 찻잎을 먹지 않고 차나무 곁의 부드러운 잡초를 먹기 때문에 약을 칠 필요가 없다. -186쪽

벌레들은 야생찻잎보다는 잡초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화학비료를 주면 찻잎이 달아져 자연히 벌레들이 찻잎으로 몰리게 되니, 화학비료에 제초제, 농약까지 추가되는 셈이다. 그래서 야생차나 유기농 차의 가치가 높은 것이다. -186쪽

'작설'이란 명칭은 익제공이 송광사의 방장스님으로부터 찻잎을 받고 보낸 답시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작설은 참새의 혀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작고 귀여운 참새의 부리 안에 자리 잡은 그 작고 작은 혀라니, 놀라운 상상력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녹차라는 말보다 작설차라는 말을 사용했었다. '작설'은 귀한 차를 뜻하는 말이었다.-186쪽

흔히 세계 3대 명차로 중국의 무이차, 인도의 다즐링, 스리랑카의 우바를 꼽는데, 이 차들의 공통점은 고산지대에서 자란 차라는 점이다. -194쪽

"자신의 키보다 뿌리를 깊게 내리는 나무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재래종 차나무는 뿌리가
제 키보다 세 배까지 자라
땅의 기운을 빨아들일 수 있는 심근성 식물입니다.
그래서 깊은 맛이 나는 것이지요."

(신광수 선생님)-195쪽

17세기 이전만 해도 세계 도자사에서 자기를 만들어 쓴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었다. 중국의 경우 이미 10세기 후반부터 청자를 만들었고, 한국은 11세기부터 독자적인 상감 기법으로 비색의 고려창자를 '강진 용운리 가마'와 '고창 용계지 가마'에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유럽은 18세기부터, 일본은 '아리타 가마'에서 만드는 데 1616년 백자를 만들면서부터 자기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하지만 '차이나'라는 발음이 중국인 동시에 도자기를 뜻하는 단어로 세계에 통용되고, 일본의 명품 도자기 브랜드 노리다케가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동안 한국의 도자 문화는 다수의 무관심 속에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203쪽

경주는 1500년 전에도 도시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 경제 정치의 중심지였다. 일반가옥과 우물, 이를 둘러싼 담장과 골목길로 이뤄진 8천 평 규모의 구획을 방(坊)이라 불렀는데, 경주에는 360개의 방이 반듯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전성기 때는 17만 8천 936호의 집이 있었다고 하니, 대략 계산해도 인구가 80만 명이 넘는다. 현재 한국에서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가 8개(서울, 수원, 인천, 대전, 광주, 울산, 대구, 부산) 밖에 되지 않는 걸 떠올려보면 실로 대단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관청이나 사찰, 시장 등의 시설을 국가 차원에서 설치하고 운영하기 마련이다. 시장은 주로 인파가 붐비는 사찰 부근에서 열었다. 물건을 사고 팔 때 세금을 걷고, 혹시 저울 눈금을 속이지 않는지 감시하며, 다툼이 나면 이를 중재하기 위해 관원들이 상주했는데, 그 수가 30명이었다. 당시 중국 당나라의 장안성 시장 관원이 28명이었다니, 경주 시장의 규모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있다.-234쪽

오래된 도시를 방문할 때면 비어있는 아름다움이 가슴을 적신다. 칼날 같은 현대의 도시가 주는 긴장감에서 벗어나 느긋함과 편안함을 만끽한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거대한 건축물들, 욕망을 마음껏 표현한 건축물들. 그곳에 사는 사람은 오히려 그것에 짓눌리게 된다. 오히려 단순하고, 절제된 공간에서 비로소 사람은 주인공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건축미를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 거장 안도 다다오 선생의 작품에서 자주 느끼곤 한다. -234쪽

황룡사는 80미터가 넘는 동시대 동양에서 가장 큰 목탐이 있었던 만큼 8쳔800평에 달하는 그 거대한 규모 자체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도 재현이 쉽지 않을 정도로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9층목탑은 전쟁에 의한 화재로 불탔을 당시 그 재가 하늘을 수십일 동안 덮었다고 한다.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보다 4배나 큰 범종은 49만 7천 근(80톤)의 구리를 녹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엄청난 양의 황금이 들어간 거대한 금동불상 등이 존재했다고 하니, 그 방대한 양의 재료를 어디서 구해 왔는지조차 궁금하다.-238쪽

한글은 우주 만물의 형상을 나타내는 철학적인 문자다. 한글의 가장 기본이 되는 모음자 셋을 살펴보면 그 안에 천지인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ㅣ'는 인간이며, 'ㅡ'는 땅이다. 그리고 '.'는 하늘이다. 한글에 대한 최초의 해설서인 <훈민정음해례>는 '천지의 탄생은 본디 하나의 기운으로부터 생겨나며, 음양과 오행이 서로 돌고 돌아, 만물이 그 안에서 형체와 소리를 갖추었다. 이러한 이치에 따라 한글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꼴을 본떠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음자 또한 'ㄱ'에서 'ㅍ'까지 점, 선, 면의 변화를 묘사할 수 있는 모든 양상을 표현한다. 심지어 마지막 자음자인 'ㅎ'은 ㅏ, ㅡ,.의 집합체다. -262쪽

한 부호가 하나의 소리만을 대표하는 일자일음의 문자 체계는 한글이 유일하다. 그만큼 세밀하게 소리를 분석해 표기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제임스 맥콜리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글은 현존하는 문자체계 가운데 가장 독창적으로 창조된 것이며, 세계의 문자체계 속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문장을 단어로, 음절로, 그리고 음소로 분해하며 동시에 기본적으로는 음절문자의 형태를 유지하는 유일한 문자체계다. 한국인들이 1440년대에 이룬 업적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그로부터 500여 년이나 지난 오늘날의 언어학적 수준에서 보아도, 그들이 당시에 수행한 일은 탁월한 것이다."
-262쪽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音)을 가진 글자인데, 한글의 총수는 무려 1만 2천 768자에 달한다고 한다. ‘바람 소리, 학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무엇이든 소리 나는 대로 글자로 쓸 수 있다’는 『훈민정음해례』의 호언장담이 꼭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한글은 창제당시인 15세기부터 일본어나 중국어, 만주어, 몽골어 등 외국어의 소리를 표기하는 발음기호로 사용되기도 했다. 쉽고 간결한 한글 덕분에 한국의 문맹률은 0%에 가깝다. 유네스코는 전 세계에서 문맹을 퇴치하기 위해 헌신하는 개인, 단체, 기관에 수여하는 상의 이름을 ‘세종대왕 문해상’이라고 명명해 부른다.
-262쪽

세종대왕은 경연을 3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대왕의 즉위 첫 마디가 당시 도승지 하연에게 말한 "우리 논의합시다"였다고 한다. 꼭 내 의견에 동조하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반대하더라도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더 큰 것을 얻는 지름길일 것이다. 자신과의 대화, 세상과의 대화를 포기한 사람과 집단은 당연히 정체되고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서울의 기와나 대로가 지금처럼 전해지는 것도, 대화재를 극복하고 길을 넓히고 기와를 저렴하게 공급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재건한 세종대왕의 업적이다. 즉위 초 밀어닥친 7년의 기근 및 서울의 대화재 사건 때 보여준 솔선수범은 그의 인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대기근 당시 그는 몸소 왕의 침소를 등지고 초가 한 칸에 기거하며 채식 위주의 소박한 끼니를 이어갔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원래 육식을 좋아하고 잔병이 많았던 터라 신하들의 걱정이 컸다지만 대왕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명령하기보다 솔선함으로써 이끌고 나갔던 세종대왕의 리더십이다. 위기가 닥칠 때 스스로 몸을 낮춰 행동하는 지도자는 많지 않다.
-265쪽

세종대왕은 노비들의 출산휴가마저 3단계로 진행했다고 한다. 관청의 노비들에게 7일간 주던 ‘아이 돌보기’ 휴가를 100일로 늘이고, 출산 1개월 전부터 산모의 복무를 면제해주고, 나중에는 남편 노비에게도 출산휴가를 주었다.
-267쪽

때론 잊고 지내던 세계에 눈을 돌려 제멋대로 상상을 풀어놓는 것은, 우리 삶을 보다 윤택하게 만든다. 신화도, 전설도, 다 그렇게 나고 자랐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이 우리를 전지(全知)하게 하고, 기술이 우리를 전능(全能)하게 할 거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류의 삶이 오랫동안 별반 나아간 것은 없는 것 같다. 때때로 어떤 결과를 얻는 것보다도 과정 자체가 더 즐거울 때가 있다. 살림살이가 늘어갈 때, 우정이나 사랑이 커나갈 때, 아이가 커나갈 때, 일이 잘 진행될 때. 이렇듯 아는 것도 알아나갈 때가 재미있다. 안다는 것, 그것은 ‘미지의 것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뜻도 된다. ‘알 수 없는 것’, '미지의 것’을 마음에 품고 살 때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유익한가를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람을 순수하고 겸손하게 한다. 그리고 노력하게 하며 반짝이게 한다. 배움의 열의를 갖게 한다. 너무 많으면 바보가 되고, 너무 적으면 교만하게 만들지만 적당히 가지면 유익한 것이 바로 그 미지의 것이다.
-280쪽

윷놀이는 고조선 때부터 전해진 아주 오래된 놀이다. 그런데 윷놀이 할 때 윷말을 옮기는 윷판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한 사신의 별들을 나열한 것이라고 한다. 윷놀이는 윷말이 마지막으로 남쪽에 있는 곳을 통과하면 끝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곳은 남두육성이 자리한 곳이다. 북두칠성은 사후 천상세계를 담당하는 역할을, 남두육성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주관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관장하는 남두에 이르러 비로소 그것을 얻는다는 상징적인 취지가 윷놀이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놀이를 통해 지식을 전승하던 한국적 전통으로 미루어 보아 가능한 일인 것도 같다.

윷판은 현재 네모난 형태지만 옛날에는 둥근 원형이었다. 별들이 하늘을 한바퀴 도는 천체의 운행 원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윷판 안에 찍혀있는 점은 모두 29개인데, 그 중 가운뎃점이 북극성에 해당하고 나머지 28개의 점이 이를 중심으로 도는 하늘의 28수 별자리다. 옛사람들은 이를 놀이화해서 하늘의 법도를 인간의 삶에 투영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287쪽

"난 가야 문화에 왜 이렇게 마음이 가지? 가야 사람이었나 봐."
동료 중 한 명이 조용히 듣고 있다가 진지하게 대꾸한다.
"아니에요. 형은 고구려 사람인데 가야국을 침략했다가
가야국 여성의 아름다움에 반한 걸 거예요."
그런가….
-313쪽

한국 전통주는 불행히도 그 맥이 약 90년간 끊겼다. 1907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주세령이 발령된 이래 수백 종에 달하는 한국 전통주가 사라져갔다. 1916년엔 밀주 단속강화로 모든 주류가 약주(청주), 탁주(막걸리), 소주로 획일화되었고, 1917년부터는 자가양조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각 고을마다 주류제조업자를 새롭게 배정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주세법>에 의한 밀주금지령은 약 48년간 시행되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의 식량난과 1965년 양곡관리법 시행으로 쌀을 주로 사용하는 전통주의 단절은 가속화되었다. 여기에는 가양주 비법이 여인들의 구전과 경험에 의존하여 기록과 보존에 소홀했던 탓도 있었다.
-326쪽

한옥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집 안으로 품어 끌어안은 환경친화적인 건축물이다. 난방을 위한 구들과 냉방을 위한 마루가 상호보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한옥의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구들과 마루는 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한반도에서 더위와 추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던 독특한 주거양식이다.

온돌은 옥스퍼드 사전에도 고유어 ‘Ondol'로 등재될 만큼 그 독창성을 널리 인정받고 있다.

지리산 칠불암에 있는 아자방(亞字房)이라는 큰방은 한국에서도 최고의 구들방으로 손꼽힌다. 문헌에 따르면 불 지피는데 일주일이 걸리고, 무려 세 무더기의 장작을 때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불이 한번 붙으면 약 40일간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고구려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온돌은 무공해와 에너지 절약이라는 측면에서도 몹시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353쪽

꽤나 아이러니한 정의지만, 한옥은 자연친화적일 뿐 아니라 인간 중심적인 건축물이기도 하다. 한칸(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의 기준치수를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모든 구조의 치수가 완벽하게 계산되는데, 기준치수는 거주하는 이의 신체 사이즈에 맞춘다. 집에서 살 사람의 키가 작으면 천장이나 건물 전체의 크기도 다소 작아지고, 반대의 경우 집 크기도 조금씩 커진다. 그러니 이보다 인간중심적인 디자인은 동서고금의 건축사를 모두 살펴봐도 다시 없을 게 분명하다.
-358쪽

한옥이 쉬는 숨은 이런 것이다. 집 안에 습기가 차면 나무와 흙이 숨을 들이마시고, 건조하면 내뿜는다. 문풍지를 통해 들어온 가느다란 바람은 온 방 안을 돌아다닌다. 공기를 순환시키고 습도를 조절하며 바깥 소식을 들고와 놓고 나가는 바람이다.

한옥의 움직임이란 또 이런 것이다. 집에 이상이 생기면 나무의 뒤틀림으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집이 갑자기 폭삭 무너지는 법은 없다. 그전에 미리 알려준다. 뚜닥뚜닥 장도리질 몇 번에 건강을 회복했다가, 또 나이 들어 쑤시고 아프면 하소연을 한다. 같이 자라고 함께 늙어가는 생명체에 가까운 집이다. 노크 대신 인기척을 전달하는 발밑의 삐걱거림 또한 은근한 아름다움이 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낡고 헌 집이 아니라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지는 따뜻한 집이 된다.
-362쪽

한옥은 가격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집은 오래가야 한다. 강산이 수십 번 바뀌어도 대대로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야 한다. 한국의 적송은 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다. 그런 나무들로 지은 한옥들이 오랜 세월을 버텨 지금까지도 우리 앞에 꿋꿋이 서 있는 것이다. 튼튼한 한옥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소나무를 심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미륵사지는 몇 년 전부터 복원이 결정된 곳이다. 하지만 숭례문이 불타자 미리 준비했던 목재들 전량이 그쪽으로 우선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 바람에 미륵사지 뿐 아니라 복원을 계획 중이던 많은 유적지들은 소나무가 원활히 공급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콘크리트 건물은 100년을 가기도 힘들다고 한다. 열 번을 다시 지을 비용으로 제대로 한 번 짓는 것이 낫다는 생각은 억지일까.

모던한 건물은 내가 먼저 다가가 설득하고 이야기해야 할 차가운 거래 상대처럼 여겨지는 반면, 전통적인 건물은 내게 다가와 나를 설득하고 이야기를 거는 것 같은 다정함이 느껴진다.
-3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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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0-06-03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용준이 썼다해서 요 책 많이 궁금했는데...

마노아 2010-06-04 12:29   좋아요 0 | URL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진지하고 깊었어요. 천천히 보기 좋은 책이에요.^^

2010-06-04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4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5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5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