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 - 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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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 세계의 난민은 2천 7백만명.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전쟁은 있을 것이고 전쟁이 있는 한 난민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여자와 어린아이, 그들이 난민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돕지 않으면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73쪽

부하라 구시가지는 무려 140개나 되는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구시가지는 사방 걸어서 30분 정도니까 넓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옛날 대상들이 묵었던 여관들, 수십개의 아름다운 회교사원들, 마드라세라는 회교 신학교들, 궁전, 역사적 인물들의 간결하면서도 품위있는 묘지들이 있고 실크로드 대상들의 가장 반가운 길잡이였던 탑이 있다. 높이가 47미터나 되는 이 탑은 수백년간 세상에서 제일 높은 탑이었다고 한다.
이 탑은 칭기즈칸의 침략으로 온 도시가 초토가 될 때도 무사히 남을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칭기즈칸이 이 탑 앞을 지나갈 때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서 그 모자를 주우려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부하들이 칭기즈칸도 고개를 숙인 이 탑은 부술 수 없다며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87쪽

기원 전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왔을 때 이곳은 이미 육중한 성벽에 둘러싸인 실크로드상의 전설적인 오아시스 마을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여기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마르칸트에 대해 들었던 그 믿을 수 없이 화려한 소문은 한가지만 빼고는 모두 사실이다. 그 한가지란 이곳이 소문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렇게 화려하고 번창했던 도시를 1220년 칭기즈칸이 지나가며 몽땅 파괴해버렸다. 그 후 티무르왕이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고 그의 손자 때까지 80년간 모든 것을 총동원해 지금의 아름다운 도시로 복구했다.-89쪽

인류 역사상 찬란한 꽃을 피웠던 수많은 문명이 터키를 거쳐가며 전 국토에 그 흔적을 뚜렷이 남겨놓았다.
그리스 로마 문명이 시작되기 전인 기원전 2,000년에서 1,200년 사이에는 앙카라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히타이트 문명이 그 찬란했던 영화의 파편들을 흩뿌려놓았고, 에페소스 등에는 그리스 로마문명의 자취가 선명하게 남아있으며 이스탄불에는 옛날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천년간 번창했던 비잔틴 문화의 유적들이 세월의 흔적없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남서부 지대에는 초기 기독교 교회의 흔적이 흩어져있고 동부 에르줄름 등에는 서기 600년경에 번성했던 셀주크 터키의 화려한 명성이, 이스탄불에는 그 뒤를 이은 막강한 오스만 터키가 제국의 실력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106쪽

"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정성스러운 게 천성이자 직업이지만 내가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려고 해요. 친절도 도가 넘치면 버겁고 부담이 되는 건 물론, 하고 나서도 내가 이만큼 해주었는데 하는 마음이 생겨 어떤 형태로든 반대급부를 기대하게 된단 말예요. 망국적인 한국병 '섭섭증'은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앙카라 주재 한국 대사관 무관부인 오정희 씨-130쪽

윌드 비스트는 냄새는 잘 맡지만 멀리 볼 수 없고 얼룩말은 멀리 보는 눈은 있으나 냄새를 잘 맡지 못해 사자나 치타같은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생하는 것이란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아남기 위한 지혜는 대단하다.-141쪽

(킬리만자로 산자락의 차가족)
여기서는 미혼모가 그리 흉이 되지 않으며 시집을 가는데도 전혀 문제가 없단다. 미혼모는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다는 증명이 되므로 오히려 더 환영받는다고 한다. -147쪽

마사이 족의 주거지는 한 가족이 한 마을을 이루고 사는 형태다. 마을과 마을은 적어도 걸어서 한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뚝 떨어져 있다. 가족은 축사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집을 지은 '보마' 라는 곳에서 사는데 중앙에 소와 염소, 양들의 축사가 있고 그 둘레에 4,5명의 부인이 각각 집을 한 채씩 짓고 살고 있었다.
놀라운 건 이 집을 짓는 일도 여자들 몫이라는 거다. 부인들끼리 힘을 합쳐 집 한 채 짓는데 보통 두 달 정도 걸린단다. 보마를 방문하자면 첫부인 집부터 시작해서 둘째, 셋째, 넷째 부인 집을 차례로 방문해서 가는 곳마다 내놓는 생우유나 끓인 우유에 설탕과 차잎을 섞은 전통차를 마셔야 한다. -204쪽

"마사이 족은 점심은 아예 안먹고 우유가 아침 식사이자 저녁식사예요. 아니, 그런 줄 몰랐어요?"
조슈아가 오히려 더 놀란다.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곡기는 하나도 집어넣지 않고 밤낮 우유만 먹고 살 수 있담.
그런데 정말로 마사이 족들은 특별한 날은 가끔씩 가축을 잡아 고기도 먹지만 평소에는 우유만 먹고 산다. 우유는 완전식품이라더니 우유만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걸 생활로 증명하고 있다. 우유에서 모자라는 특정한 비타민을 공급하기 위해선지 들판에서 나는 약초와 야생열매를 약간 따먹는단다.
또 하나 마사이들이 먹는 것은 소 피다. 이들은 살아있는 소에서 마치 맥주배럴에서 필요할 때만 생맥주를 따라 마시고 꼭지를 잠가놓듯이 피를 뽑아 마신다.-208쪽

마사이 사람들은 치아가 하얗고 튼튼해 늙어 죽을 때까지 모두 자기 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것 뿐인가. 마사이 족은 대부분 작대기처럼 길고도 가는 다리에 호리호리한 몸매인데도 아주 단단해서 교통사고가 나면 차는 다 찌그러져도 그 차에 타고 있던 마사이 족의 뼈는 안 부러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주식인 우유 덕분이라고 믿고 있는데 얼마간은 과학적 근거도 있는 것 같다.-209쪽

노르웨이 인구가 고작 4백만~5백만인데 입양간 한국인 아이들이 6천명 정도나 되니 노르웨이에서는 적지 않은소수민족 집단이란다.-219쪽

에티오피아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나라다. 우선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유일하게 수천년 역사에 한번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이차대전 중에 이탈리아에 강점당한 적이 있으나 그 때도 강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전쟁 중이었다고 이 나라 사람들은 말한다.

시바의 여왕과 이스라엘 솔로몬 왕 사이에서 태어난 메넬릭 1세가 에티오피아 북쪽 악숨에 정착하여 이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이후 1974년 셀라시에 왕이 하야할 때까지 한 왕조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왕조의 멸망 후 무시무시한 군부 공산정권 때문에 나라가 피폐했다가 1991년 악명 높은 독재자 멩기스투가 짐바브웨로 도망간 후 드디어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 근대화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232쪽

에티오피아 여행은 모든 게 생소하다. 우선 하루도 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이며 그 시작은 우리의 아침 6시. 이들이 0시라고 하면 그것은 아침 6시를 말하는 거다. 처음에 잘 몰라서 여러번 버스를 놓쳤다. 달력도 국제적인 그레고리안 달력을 쓰는 게 아니라 줄리어스 시저 때부터 써 온 줄리안 달력을 쓰고 있어서 1년이 13개월에 한 달은 30일, 그리고 맨 마지막 달은 5일이나 6일로 되어 있다.
서양력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했으나 그 탄생 연도를 달리 잡고 있어서 연도도 다르다. 예를 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1996년 6월 5일이 에티오피아 달력으로는 1988년 9월 13일이다. -233쪽

'악'하고 '숨'이 막힌다고 해서 '악숨'인가. 악숨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악' 소리가 나오고 스릴 만점의 길 때문에 숨이 막힌다.

악숨은 이 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이자 성지다. 전설 속의 시바 여왕 무덤이있고 솔로몬과 시바의 아들인 메넬릭 1세가 이스라엘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모세의 성궤가 여기 교회에 모셔져 있다. 또 이곳이 1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중동 일대를 지배하면서 홍해를 중심으로 한 무역을 장악했던 빛나는 악숨제국의 수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찬란하던 옛날의 영화는 찾을 길 없고 에리트리아와의 30년 전쟁을 치른 후유증만 심하게 앓고 있었다.-266쪽

대통령이 손수 운전을 하며 캐주얼 차림으로 거리 축제에 나와 격의없이 시민들과 신나게 춤을 추는가 하면 유창한 영어 실력과 외교술을 갖춰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대단하단다.
그 날도 직접 차를 몰고와서 연설을 시작하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민박집 식구들에게도 대통령에 대해 물어보니 '정말 좋은 사람이고 우리들의 자랑'이라고 입에 침이 마른다. 이 인기 만점 대통령이 끝까지 국민들의 기대와 사랑을 저버리지 않고 명예로운 대통령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에리트리아)-271쪽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있던 아랍연맹이 독립전쟁을 일으키자 영국이 응원군을 보냈다. 이 때 영국군의 로렌스 장군이 아랍군대를 이끌고 터키와 맞서 싸우던 곳이 바로 이 와디룸이란다. 사막 유목민으로 이루어진 아랍 베두인 군대는 사막전에 강하고 여기 와디룸은 물도 많을 뿐 아니라 바위산들이 많아 게릴라전을 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전설적인 인물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불같은 신념과 와디룸의 지형적 이점을 바탕으로 결국 전쟁에 이기고 아랍의 독립을 이끌어냈다.-299쪽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는 페트라는 로마시대 이전부터 요르단 지역을 지배하던 아랍족, 나바티안족의 수도였는데 이 왕국의 전성기에는 다마스쿠스에서 아라비아에 이르는 향료, 비단, 노예의 전 무역로를 장악하여 엄청난 부를 누렸던 곳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수없이 많던 도시가 4세기 무렵 큰 지진으로 땅속에 묻혀 천년 이상 잊혀져 있다가 1812년 스위스 탐험가에 의해 발굴되기 시작해 1958년에야 전체 모습이 드러났다.
페트라는 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맨 처음 요르단으로 입국한 곳이기도 하다. 이 페트라 안에 와디무사라는 곳에는 모세의 샘이 있다.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쳐 물이 나오게 했다는 바로 그 샘으로 지금까지도 이 마을 주민들의 중요한 식수원이 되고 있다.-300쪽

기원 전 10세기경 다윗이 예루살렘을 유대인의 수도로 정하고 그 아들 솔로몬이 화려한 신전을 지었다. 이것이 기원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파괴돼 지금은 그 북쪽 벽만 남아 유명한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으로 유대교의 성지가 되고 있다.
기독교 쪽에서 보면 예루살렘은 예수가 당나귀를 타고 입성해서 십자가를 지고 길을 걸어 골고다 언덕에서 처형된 기독교의 성지지만 회교 쪽에서 보면 또 그들의 가장 중요한 성지다.
모하메드가 천사 가브리엘의 도움으로 하룻밤에 메카에서 날아와 모든 예언자들을 만나고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성지 엘 아크 사원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307쪽

회교도들이 믿는 알라신은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믿는 유일신인 하나님과 같은 신이다. 회교의 코란에 나오는 아담부터 모하메드까지 28명 선지자 가운데 21명은 성경과 똑같은 선지자다.
유대교는 '토라'라는 구약을 성전으로 삼으며 기독교는 이 구약에 신약을 더하여 성전을 삼고 회교는 이 구약에다가 마지막 예언자 모하메드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 썼다는 코란을 성전으로 삼는다. 그러니까 세 종교 모두 구약으로부터 출발한 셈이다.-308쪽

베두인은 이집트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르는 사막에서 양이나 염소, 낙타들을 키우며 사는 유목민의 총칭. 정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에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며 명예와 체면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다. -310쪽

팔미라에서는 제노비아라는 꺽달진 여왕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와 아랍 피가 반반 섞인 혼혈로 클레오파트라 뺨치는 미인이었던 제노비아는 야망 때문에 왕인 남편을 죽이고 스스로 여왕이 되어 로마를 공격하다가 패망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기울기 시작한 팔미라는 후에 모슬렘 손에 들어갔다가 1089년 지진으로 폐허가 되고 만다. 현재의 팔미라는 최근에 발굴, 재건한 것이다.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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