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전작 '고백'으로 무척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미나토 카나에의 후속작이다. 이 작품의 제목을 '고백'이라고 적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비슷한 구조의 내용이 전개되는데, 내용은 여전히 강한 충격을 추어서 얼떨떨한 느낌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초등학생 강간 살해 사건. 범인을 목격한 여자 아이가 네 명이나 있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고 아이들은 횡설수설하며 범인의 얼굴조차 그려내지 못한다. 사건 발생 3년 후. 희생자의 어머니는 도쿄로 떠나기 전 네 명의 아이들을 모아놓은 채 협박하듯 말했다. 


그런 얘긴 이제 지긋지긋해. 얼굴은 생각 안 나요. 생각 안 나요. 이 말밖에 할 줄 모르니?! 너희가 그 모양이니까 3년이 지나도 범인을 못 잡는 거라고. 이런 멍청이들이랑 놀아서 우리 에미리가 죽은 거야.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는 살인자야!

난 너희를 절대로 용서 못해.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 그렇게 못하겠으면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속죄를 하라고. 그것도 안 하면 난 너희들에게 복수할 거야. 난 너희 부모보다 훨씬 더 많은 돈과 권력이 있어. 내가 기필코 너희들을 에미리보다 더 처참하게 만들어 놓을 거야. 에미리의 부모인 나한테만은 그럴 권리가 있어.
 
페이지 : 95-96  

이 엄포가, 네 소녀들의 앞날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모두 다는 아니었지만 대개는 그 메시지에 사로잡혀 인생을 저당잡혔고, 왜곡된 길을 걷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필연적으로 혹은 우발적으로 기막히게 살인 사건에 모두 연계되었고, 그 직후에 각자 저마다의 '속죄'를 털어놓았다. 그들은 모두 범인을 잡는 대신 속죄의 길을 걸었지만, 놀랍게도 그네들의 진술을 모두 연결하다 보면 진짜 범인에게로  다가가는 징검다리가 완성된다. 

마지막 속죄는 에미리의 엄마, 아사코의 몫이었다. 자신이 충동적으로 내뱉은 몇 마디가 아이들의 인생을 어떻게 좌우했는가에 대한 충격과 죄책감과 반성과 변명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다보면 마지막 퍼즐 조각이 모두 완성되면서 이 비극적인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게 된다. 

미나토 카나에는 입담이 좋은 작가인데 단지 말장난에 가까운 아멜리 노통브와는 다른 흡인력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다만 소재의 잔혹성과 전개의 비극성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꺼리는 독자들도 많을 듯하다. 재미를 포기하되 상처를 보호하는 한 방법일 수도 있을 테지만 재밌게 읽은 독자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은 단순히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문화 충격과, 또 도시에서만 살아온 부유한 여인이 시골마을에서 융화되지 못하고 배척당하며 갖게 되는 상실감과 배신감을 꽤 실감나게 그렸다. 이 사람의 입장에서 들어보면 그의 말도 일리가 있고, 또 저 사람의 입장에서 독백을 듣다 보면 그의 입장이 이해가 가고, 저마다의 상황과 이해가 모두 다름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모두가 피해자이고, 모두가 서러운 사람들임을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빠른 전개로 속도감을 느끼며 읽게 되지만 제법 뒷여운이 길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스타일을 고려할 때 빠른 다작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직 두 작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장차 세상에 내놓을 그녀의 다른 작품들이 몹시 기다려진다. (그런데 작가가 여자 맞던가?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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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0-04-14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별이 다섯개!!!

마노아 2010-04-14 11:08   좋아요 0 | URL
빠르고 강렬하게 읽히는 힘이 있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