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을 넘어선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 [제 1045 호/2010-03-15]


“첫사랑은 누구인지 기억하니? 그럼 네 번째 사랑은?”
“백화점 1층에서는 뭘 팔지? 그럼 6층에서는?”

첫사랑은 기억해도 그 다음 사랑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백화점 1층에서 명품을 판다는 것은 쉽게 떠오르지만 2층 이상에서 무엇이 어떻게 진열돼 있는지 아는 사람은 적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초로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에 버금가는 천재 과학자, ‘테슬라’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기를 얻고 있는 개그프로그램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를 들으면 비운의 과학자, 테슬라가 떠오른다. 에디슨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그의 인생을 돌아보며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1등지상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미국의 주간지 ‘라이프 매거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의 한 사람으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를 꼽았다. 이보다 앞서 2005년 말 크로아티아는 테슬라 탄생 150주년을 맞아 2006년을 ‘니콜라 테슬라의 해’로 정했고, 세르비아는 2006년 3월 베오그라드 국제공항이름을 ‘테슬라 공항’으로 바꿨다.

테슬라를 두고 미국,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가 서로 자기 나라의 발명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856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으로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테슬라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과학자 테슬라,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세계가 이렇게 새롭게 주목을 하는 것일까?

테슬라는 현대 전기문명을 완성한 천재 과학자다. 현대 전기 문명의 근간이 되는 교류를 발명했으며, 수많은 전기 실험으로 ‘거의 모든 현대기술의 원조’라는 칭호를 갖고 있다. 시대를 앞선 과학적 통찰력과 독특한 삶 덕분에 많은 문학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의 업적을 대표하는 교류발전기와 송·배전 시스템은 웨스팅하우스사(社)에서 일하면서 만들어냈다. 교류는 전기가 흐르는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전기다. 직류에 비해 적은 손실로 전류를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현대 전기 문명을 일으킨 원천기술이다. 이 발명은 1895년 웨스팅하우스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교류발전기를 사용한 수력발전소를 만들면서 빛을 보게 된다. 지금 보고 있는 컴퓨터, 인터넷은 등 수많은 전기문명이 테슬라의 교류 전기시스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1891년에는 유명한 테슬라코일(Tesla Coil)을 제작했다. 테슬라코일은 간단한 장치로 수십만 볼트의 전압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당시 60Hz에 불과했던 가정용 전기를 수천Hz의 고주파로 바꾸며 엄청난 고전압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를 사용해 테슬라는 최초의 형광등과 네온등도 만들었다.

고주파를 발생시키는 테슬라코일은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테슬라코일을 이용하면 물체에 자기장을 걸어 순간이동 시킬 수 있다는 황당한 이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말 개봉한 ‘프레스티지’(Prestige) 영화를 보면 마술사 로버트가 순간이동마술을 펼치기 위해 테슬라를 찾아가 테슬라코일을 얻는 장면이 나온다. 테슬라코일의 유명세와 신비주의를 따르는 추종자 덕분에 테슬라는 ‘몽상가’ ‘미친 과학자’ ‘마술가’ 등의 호칭도 갖고 있다.

또 테슬라는 한 발 앞선 발명가로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알려 줬다. 그가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후대 과학자들이 테슬라의 이론으로 만들어낸 기기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는 테슬라코일을 이용한 실험 도중 라디오 신호를 같은 진동수로 공명시키면 송수신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원리는 현재 라디오나 TV 등에 응용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무선조종장치를 연구하던 테슬라는 현대 로봇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무렵 잠수함을 탐지하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2차 대전에서 레이더로 실용화됐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은 그의 발명노트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하고 있다.

테슬라의 발명을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그는 전기기계용 전류전환장치, 발전기용 조절기, 무선통신기술, 고주파기술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기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리고 전자현미경, 수력발전소, 형광등, 라디오, 무선조종보트, 자동차 속도계, 최초의 X선 사진, 레이더 등도 그의 작품이다.

많은 발명품을 만들고 현대 과학기술을 예견하고 아이디어를 준 테슬라는 그의 업적만큼 살았을 때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라이벌이었던 에디슨 때문에 그의 업적은 많이 가려졌다. 1882년 테슬라가 에디슨 연구소에 들어가 발전기와 전동기를 연구할 때부터 에디슨은 천재적인 테슬라의 재능을 질투에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애초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하면 거액을 안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류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돈을 주기로 한 약속을 어겼고,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사표를 던진다.

직류방식을 고집한 에디슨은 테슬라의 교류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고압 교류로 동물을 죽이는 공개 실험을 하고, 교류 전기의자로 사형집행을 했다. 이 과정에서 테슬라는 교류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자신의 특허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1915년 뉴욕타임즈에 테슬라와 에디슨이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났지만 결국 둘 다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데, 테슬라가 에디슨과 함께 상 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기이한 삶처럼 그의 성격도 특이했다. 식사 전 광택이 나도록 스푼을 닦아야 하는 결벽증이 있었고, 손수건은 하얀 비단으로 된 것만 썼다. 호텔방의 호실은 3의 배수여야만 했고, 비둘기에 집착해 말년 그의 호텔방에는 비둘기 새장이 가득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발명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테슬라는 1943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다.

그러나 세상은 시대를 앞서갔던 테슬라를 잊지 않았다. 1961년 국제순수 및 응용물리학 연맹(IUPAP)의 표준단위 및 그 정의에 관한 위원회는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테슬라의 이름을 딴 T(Tesla)를 쓰기로 했다. 전기를 이용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던 테슬라의 이름에 걸맞는 단위라 하겠다. 이를 통해 테슬라의 이름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살아나게 되길 기대한다.

글 : 남연정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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