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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힘든가요, 지쳤나요...
지금 용기가 필요한가요?
오바마, 오프라 윈프리의 멘토 마야 안젤루가 전하는 긍정의 메시지!
멋진 카피다. 읽기도 전에 호감을 주는 문구들이다. 표지의 디자인도, 제목의 글씨체도 모두 예쁘다. 스물 여덟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160쪽의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까지,마음에 들었다. 작가 소개를 책을 다 읽은 뒤에 읽었는데 본문 속에는 그녀가 어린 시절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몇 년 동안 침묵 속에서 지낸 얘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알고서 읽었더라면 그녀의 목소리가 아마도 조금은 더 진중하게 들렸을 것 같다.
세번째 편지에서 그녀의 아이 이야기가 나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첫 성관계를 가진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게 되었고, 그 아이를 출산 직전까지 숨겼다가 새아빠와 엄마에게 그 사실을 밝히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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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아빠가 누구니?"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애를 사랑하니?" 어머니가 물었다.
"아뇨."
"그애는 너를 사랑하니?"
"아뇨. 같이 잔 남자는 그애뿐이었고, 그것도 딱 한 번뿐이었어요."
"세 사람의 인생을 망칠 필요가 뭐 있겠니? 우리 집안에 아주 예쁜 아기가 태어나겠구나." –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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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다르고 사고관이 다르고 또 경제 능력까지 모든 게 다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딸이 학생 신분으로 아이를 출산하게 된 것을 알았을 때 저런 반응을 보일 엄마가 있을까 싶다. 어느 쪽 손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정말 놀라웠다.
더 대단한 것은, 대단한 부자인 엄마에게 전혀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무한 애를 쓴 마야 안젤루의 노력들이었다. 시련이 없거나 좌절이 없었던 게 당연히 아니건만 꿋꿋함 그 자체로 억세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 그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게다가 재능과 영감은 또 얼마나 출중했던지...
그러나 그녀의 사회적 성공과 그를 바탕으로 한 충고와 조언은 그렇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곳곳에서 저지른 실수로 인해 얻게 된 깨달음은 독자도 함께 큰 울림을 받았다. 모로코에서 길가의 촌로에게 대접받은 커피 한 잔. 그 속에서 나온 바퀴벌레 네 마리. 차마 그 앞에서 뱉어내지 못하고 삼켰다가 그들 앞을 벗어난 뒤에 다 게워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건포도였단다. 가난한 그들이 선사한 최고의 성의였다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고, 그들 앞에서 뱉어내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게 된 극적인 순간. 독자도 함께 경악했다가 같이 미안해지고 고마워지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밖에 흑인에게만 식사를 늦게 준비해주는 걸로 여기고 경찰을 부를 각오로 따졌는데 그저 식재료가 준비되지 못해서 지연된 것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가 갖게 된 민망함에서도 교훈을 갖게 된다. 지나친 피해의식과 선입견으로 인해 상대에 대한 불신을 미리 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몇몇 꼭지들이 꽤 감동적이었지만 대체로 평이했다. 에세이 형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더더욱. 게다가 제목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좀 겉도는 기분이다. 그냥 흔한 자기 계발서 느낌인데 저자의 유명세와 매끄러운 컨셉과 홍보로 좀 몰아가는 듯 보인다. 저자에 대한 감동과 놀라움과는 별개로 책에 대한 감상은 좀 낚인 기분이다. 나로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