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자크와 함께 하는 이집트 여행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김병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11월
품절


덴데라, 사랑의 여신의 영지

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신전은 신성과의 연계를 이루고 있는 기념물들 가운데 마지막 기념물이다. 이 왕조의 여신의 이름 하토르는 <호루스의 거처>를 뜻한다. 그녀는 독수리 호루스가 탄생하는 하늘이요, 별들의 조화가 지배하는 우주다. 종종 하토르는 암소의 예민한 귀를 가진 여자의 모습이나, 혹은 파라오에게 영원한 젊음의 젖을 바치는 천상의 암소의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118쪽

아몬은 <숨어있는 자>를 의미한다. 그는 너무나 신비로워 아무도 그의 참모습을 모른다. 그는 두 개의 높은 깃을 세운 영관을 쓴 인간의 몸으로 화신한다. 때로 그의 피부는 푸른색이다. 활기를 주는 대기의 신인 그는 뱃사공들의 수호신이 아니었을까? 신성한 두 동물에 그의 온갖 신비가 깃들어 있다. 그 하나는 끊임없이 갱신되는 에너지의 상징인 숫양이요, 다른 하나는 세상이 시작될 때 최초의 비명을내지르며 알을 낳아 거기서 우주를 탄생시킨 나일강의 기러기이다.-129쪽

카르나크의 유적들은 백 헥타르가 넘는 면적에 걸쳐 펼쳐져 있다. 고대 이집트의 신성한 건물들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이다.
부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카르나크는 약 8만 명이 살고 있었고 65개의 마을과 2000km2 이상의 땅, 그리고 상당수의 가축들과 조선소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 신전은 왕이 일단의 대사제들에게 경영을 위임한 엄청난 사업들의 핵심이었다. 파라오는 카르나크에서 왕위에 즉위했다. 아침에 그는 왕궁을 떠나 신전으로 갔으며 거기서 심신을 정화시켰다. 그리고는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 옆에 있는 홀로 들어가 두 개의 왕관을 받았다. 그런 다음 <왕의 상승>의식, 즉 위대한 종교의식에 입문하는 의식을 치렀다. 새 파라오는 그렇게 아몬과 하나가 된 후에야 박수 갈채를 받으며 파라오로 인정받았다.-131쪽

룩소르 신전

여러 개의 오벨리스크들 중 하나(높이 25m, 무게 250톤)가 아직 남아 있으며, 다른 하나는 파리로 옮겨져 콩코드 광장에 세워져 있다. 이 오벨리스크들과 황금으로 도장된 소형 피라미드들 덕택에, 이곳은 성화(聖化)되어 위험한 힘들이 흩어졌으며 천상의 힘들이 이 신전 쪽을 향했다. 이 뾰족한 돌탑들의 토대에는 토트 신의 동물인 비비 원숭이들이 빛의 탄생에 갈채를 보내고 있다. -151쪽

(룩소르 신전) 탑문에 표현된 장면들은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족들의 이집트 침략을 막고 그들의 진군을 멈추게 하기 위해 벌인 카데시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왕이 이 전투를 여러 곳(카르나크, 라메세움, 아부심벨)에서 상기시킨 것은 그것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파라오는 이 전투 때 배신을 당해 홀로 버려졌었다. 혼자서 다수의 적과 맞서게 된 그는 아버지인 아몬 신의 구원을 받아야 했다. 하나됨과 빛의 화신으로서, 왕은 대형화된 모습으로 현신하여 다수의 적과 어둠을 물리쳤다.-155쪽

남서 방면에서 우리는 예배행렬을 하나 보게 되는데, 봉헌물들을 지닌 열일곱 <왕자들-여기서 왕자란 하나의 호칭일 뿐이다. 이 칭호를 갖는다고 왕의 혈육인 것은 아니다-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행렬의 스타>는 역시 제물로 바치기 위해 살찌운 여섯 마리의 거대한 황소들이다. 황소들은 단장된 모습들이며 두 뿔 사이에 꽃 장식까지 달고 있다. 그들 중 두 마리의 등에는 흑인 한 명과 아시아인 한 명이 타고 있다.-156쪽

나일강 서안의 지하분묘들과 다른 신전들을 향해 가다 보면, 마치 들판에서 길을 잃은 듯한 두 개의 거대한 조각상을 보게 된다.
이 초대형 동상들은 하푸의 아들 아멘호테프 시공장이 아멘호테프 3세를 위해 건설한 그 방대한 '수백만 년의 신전'의 유적들이다. 석공들은 하나의 조각상을 만드는 데 하나의 사암 덩어리를 사용했다. 그 재료는 북쪽 700km 지점에 위치한 붉은 산 광산에서 채굴했는데, 어떤 마술적/상징적 이유들로 인해 거리나 운송 수단이 어떻든 이 사암 덩어리를 이용해야만 했다.
아멘호테프 3세의 '카'가 거대한 옥좌에 앉아 있고, 옥좌에는 두 대지의 결합이라는 중요한 의식 행위가 형상화되어 있다. 나일강의 두 신이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백합과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파피루스를 결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왕의 에너지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왕의 어머니와 딸이 조각상의 양쪽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기원전 27년, 지진이 일어나 테베 지역을 뒤흔들면서, 이들 대형 동상들에 뜻밖의 명성을 안겨주었다. 지진의 충격으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동상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균열들이 돌에 <이상 작용>을 일으켜 괴이한 현상을 빚어냈다. -164쪽

해뜰 무렵이면 동상이 어떤 노래 소리 같은 기이한 소리를 내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죽은 에티오피아의 영웅 멤논이 매일 해가 뜰 때마다 구슬픈 탄식을 내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닌게 아니라 그의 이름은 대형 동상들을 가리키는 데 쓰이는 말인 <기념물>을 뜻하는 이집트어 '메누'에 가깝다. 그의 어머니, 장밋빛 손가락들을 가진 여명은 이슬을 만들어 아들에게 다시 생명을 줌으로써 그의 호소에 응답했다. 그 대형 동상들에 깃든 '카' 역시, 매일 아침 의식에 쓰이는 말 <평화 속에서 깨어나라>가 발설될 때마다 되살아났던 게 아닐까?
이 기적은 고대 세계 전체에 유명해졌다. 기원후 130년, 동양에 관심이 많았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수차례나 이 기묘한 연주를 들으러 왔다. 한데 또 다른 로마 황제 루시우스 셉티미우스가 199년에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그 동상들을 복원하고자 손을 댔던 곳이다. 뜻은 좋았으니 그 결과는 통탄스런 것이었다. 노래가 그쳐버렸기 때문이다.-164쪽

하트셉수트는 이집트 왕 투트모시스 2세의 첫째 왕비였다. 왕이 죽자 그녀는 후궁이 낳은 10살 나이의 아들 투트모시스 3세의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파라오가 되어 기원전 1498년부터 1483년까지 이집트를 통치했다. 여성이 왕의 지위에 오른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며, 또한 그것은 이집트의 어느 누구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트셉수트 여왕이 죽자 그 다음 왕으로 예정된 투트모시스3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투트모시스 2세와 하트셉수트 여왕의 통치 기간을 은폐하면서 자신을 투트모시스 1세의 통치에 곧장 연계시키고자 했는데, 그리하여 이 여 파라오의 이름으로 된 일부 카르투슈들에 망치질을 했다. 하지만 그중 여럿은 손을 대지 않거나 알아볼 수 있는 상태로 남겼다.-168쪽

라메세움

첫번째 안뜰, 제2탑문 앞에 있는 벼락맞은 초대형 동상 하나가 이곳에서 펼쳐진 예술이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던가를 짐작케 한다. 이 <왕자들의 태양>은 높이가 20m에 무게는 천 톤이 넘는다. 이 '카'의 조각상의 강력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석공예술은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정교하다. -180쪽

허물어진 제1탑문에는 람세스 2세가 통치 5년 차(카데시 전투)와 8년 차 때 히타이트족과 시리아인들을 상대로 한 전쟁의 일화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집트 군대가 적의 요새 여러 곳을 탈취하여 적들을 항복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파라오가 신성한 빛을 대신하여 카오스의 힘을 물리치고 있다. 그의 앞에는 화살 맞은 시신들과 흩어져 달아나는 도망자들뿐이다. 파괴를 모면하기 위해 카데시 市는 파라오에게 굴복한다. 오론트 강 위에는 박살난 수레들과 시신들이 떠가고 있다.-181쪽

메디네트 하부

사람들은 이 유적이 대체적으로, 람세스 3세가 모델로 여긴 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 라메세움을 모방하여 세워진 것으로 간주한다.
보존 상태가 훨씬 좋은 메디네트 하부는 '도시 신전'의 놀라운 예라 할 수 있다. 파라오의 대신전 외에도, 다른 여러 신성한 건물들과 왕궁, 사제들의 거처, 신성호수, 나일강의 수위표, 작업장, 행정청, 선창, 창고, 도서관, 마구간, 우물 등은 아직도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6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일했으며, 재상이 여기에 자신의 사무실을 두고 법정을 주관했다.-184쪽

서 테베 : 왕들의 계곡

<계곡>이란 말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나무와 풀들이 우거진 공간을 기대했다가는 당황하게 될 것이다. 태양에 그을린 돌들의 세계를, 가파른 절벽 사이에 갈색과 황적색 돌들로 된 성소를 발견하게 되니 말이다. 그런 준엄한 풍경을 고독과 메마름이 지배하고 있으며, 이곳을 보호하는 여신, '서방의 첨봉'인 바위산 위를 새매들이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 아무래도 그 일부가 인간의 손에 의해 재단된 듯한, 왕들의 계곡을 굽어보는 이 피라미드(산)는 시선을 끈다. 왕의 무덤들이 이 피라미드의 제실들로 여겨지는 것처럼, 이곳이 유적지로 선택된 데는 이 산의 존재도 한몫했다.
왕들의 계곡은 신왕국 파라오들의 마지막 거처이다. 아멘호테프 1세(기원전 1551-1524)가 이 장소를 선택했다. 신성한 주인으로 숭배받기는 했으나 그는 이곳에 매장되지 않았다. 이 유적지의 최초 거주자는 투트모시스 1세(기원전 1524-1518)다.-196쪽

왕들의 계곡은 험하고 은밀하지만, 여왕들의 계곡은 개방적이고 다가가기가 쉽다. 바로 그래서 이 계곡은 많은 고통을 받았다. 도굴꾼들이 무덤을 약탈했고 개중에 어떤 무덤들은 불살라지기도 했다. 후기 왕조 시대에는 여러 분묘들이 미라와 석관 안치소로 이용되었다. -208쪽

'네페르'라는 말은 <미, 완벽, 성취>를 뜻하는 말로, 그 완벽함은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조화로운 발전(이 경우는 천상의 낙원에서의)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갖는다.
분묘의 수는 대략 아흔 개로 헤아려지나, 많은 무덤들이 파괴되거나 단순한 동굴로 변해버렸다. 발굴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체계적인 탐사를 해나간다면 여러 가지 놀라운 발견들을 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는 신왕국 때(특히 제19왕조와 20왕조의)의 여왕들과 <왕자들>이 묻혀 있다.-208쪽

부활을 위해 남성은 오시리스가 되어야 했으나, 여성은 오시리스이자 하토르가 되어야 했음을 상기하자.-211쪽

서 테베 : 데이르 엘-메디네흐, 진실의 광장

장인들은 세속의 <눈들과 귀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비밀리에 작업을 했다. 그들은 파라오와 재상의 직속이었고, 자기들 고유의 법정과 학교를 소유했으며, 독신으로 지내거나 가정을 꾸려, 밤낮으로 파수병이 지키는 높은 담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서 함께 생활했다.
평화로이 살며 자신들의 예술에만 헌신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이 정부로부터 제공되었다. 빨래를 하는 이들, 빵 굽는 이들, 도공들, 직조공들, 어부들, 정원사들이 그들을 위해 일했다. 물은 당나귀가 끄는 마차와 짐꾼들이 매일같이 날라주었다. 약간만 지체해도 심한 항의를 받았다.-227쪽

숫양의 머리를 가진 도자기의 신 크눔은 도자기를 빚을 때 쓰는 둥근 회전원판인 녹로 위에서 신들과 인간들과 동식물들을 빚어냈다. 크눔은 대지가 아직 어둠에 잠겨 있을 때 어느 언덕에 출현했다. 태초의 물과 하늘이 뒤엉켜 있었다. -235쪽

규모로만 본다면(길이 137m, 너비 80m) 에드푸는 이집트에서 카르나크 대신전 다음으로 큰 신전이다. 이 신전이 다른 요소들(사제들의 거처, 창고들, 작업장들)은 사라져버리고 없는 한 성지의 심장부였음을 잊지 말자.

이 건물은 고왕국 이후 호루스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일련의 건물들 중 제일 나중에 세워진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 통치 때인 기원전 237년 8월 23일에 착공되어 57년에 완공되었다. 그리고 건축가의 이름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사카라의 계단식 피라미드의 창조자요, 이집트의 모든 신전의 건설자인 임호테프가 바로 그다!-242쪽

콤 옴보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어느 정도 번영을 누리던 도시였다. 프톨레마이오스 5세 때, 古 호루스에 해당하는 그리스의 아폴론을 기리는 새 신전 건설에 결정적 도움을 준 이들은 바로 이 지역에 주둔하던 부대 소속의 기병들과 보병들이었다.-253쪽

고대에 아스완은 누비아와의 국경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에는 좀스런 세관이 하나 있었고, 황금이며 상아, 흑단, 동물가죽 등 아프리카로부터 들여온 산물들이 거래되는 큰 시장이 열렸다. 아스완이라는 이름 자체가 <무역>을 의미하고 있지 않은가?-259쪽

엘레판티네 섬에는 그 유적들로 미루어 판단해볼 때 웅장한 건물이었을 크눔 신전 외에도, 제6왕조 때의 위대한 인물 헤카-이브라는 현자에게 바쳐진 작은 성소가 있었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수위표와 90계단으로 된 돌층계를 보게 된다. 층계 벽에는 물의 높이를 잴 수 있는, 쿠데(약50cm)별로 나뉜 눈금들에 해당하는 표식들이 있다.
그리스인 에라토스테네스가 기원전 230년에 지구의 둘레를 잰 곳이 바로 여기다. 그것은 발견이라기보다는 재발견이라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집트 신전의 기술자들이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기 때문이다.-261쪽

아스완은 특히 방대한 채석장들로 이름 높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최상급 화강암뿐 아니라 사암과 섬록암 등을 채굴했다. 시공장들은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돌들을 찾아 이곳까지 왔다. 게다가 적재할 짐의 하중에 맞는 배들을 만들기도 했는데, 거대한 돌들과 오벨리스크들을 운송한 그 노동 조직에는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채석장에는 종종 태양이 매섭게 내리쬔다. 햇살이 바위들 위에서 반사하고, 열기가 무시무시한 가뭄으로 풍경을 압살한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석공들의 노동 흔적들과, 길이 42m에 무게가 1200톤이나 나가는 소위 <미완성> 오벨리스크 하나를 볼 수 있다. 아마도 지진 때문인 듯 화강암 덩어리에 갈라진 금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막 다듬기 시작한 이 엄청난 거석을 그 자리에 내버렸던 것이다.-262쪽

필레는 여마법사 이시스의 영지이다. 아스완에 첫 번째 댐이 세워지기 전, 여행객들은 이 유적지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댐은 이 섬의 불행이었다. 일년에 몇 달씩이나 물에 잠기게 했다. 12월부터 6월까지, 기념물들의 꼭대기만이 물 밖으로 나와 있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조만간 훼손될 것을 염려했다.

1960년에는 첫 번째 댐보다 훨씬 큰 새 댐의 건설이라는 새로운 위험이 이 불행한 필레 섬을 위협한다. 이제 신전은 결정적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국제사회가 동요했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신전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해체 작업은 1974년에 시작되었다. 낱낱이 해체된 건축물들은 필레 섬을 떠나, 일년 내내 물에 잠기지 않는, 근처의 작은 섬 아길키아로 옮겨졌다. 24개국이 협력했고 4만 5천 개의 벽돌들이 옮겨졌으며 원래의 섬과 같은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준공식은 1980년 3월 10일에 거행되었다. 신전이 다시 태어난 날이었다.-265쪽

문자 기록들이 가리키고 있듯이, 이시스는 생명의 원천이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마법사이며, 천신들에게 별자리를 정해주는 여군주이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그의 동의없이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모든 것에 그의 봉인이 표시되어 있다.-273쪽

1960년 3월, 전세계는 누비아를 위협하는 위험을 발견하고서 동요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제1서기장 후르시초프와 동맹을 맺은 나세르가 아스완에 새 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렇게 되면 누비아는 물에 잠길 터이므로 주민들을 몰아내야 할 뿐더러 다수의 빼어난 기념물들과 문화가 파괴될 수밖에 없었다.
누비아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여러 나라들의 재정적 지원과 유네스코 덕분에 모든 건물들이 물에 잠기게 되는 상황은 면했다. 일부 건물들은 해체되어 나세르 호수 기슭에 다시 세워질 수 있었고, 또 어떤 것들은 외국으로 옮겨졌다. 덴두르 신전은 현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고, 데보드 신전은 마드리드에 있으며, 타파 신전은 레덴(네덜란드)에 있고, 엘-레시야 신전은 토리노 박물관에 있다.-275쪽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많은 노력을 기울인 누비아의 심장이다. 그가 황량한 사막 유적지에 치세 24년에 착공한 이 건축물은 그의 통치 때 이루어진 건축들 중 최고의 걸작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281쪽

상하 이집트의 왕관을 쓰고, 이마에는 우라에우스 뱀이 있고, 가짜 수염을 단 모습으로 옥좌에 앉아 있는 대형 동상들은 엄청난 기세를 과시하고 있다. 그 동상의 샌들 아래에는 왕의 적들이 영원히 굴복당해 있다.

대형 동상들 사이사이로 여성 형상들이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 옆의 보호자들에 비하면 매우 연약해 보인다. 그들은 람세스 2세의 어머니와 아내와 딸들이다. 그들의 역할이 결코 장식적인 것만은 아니다. '카'의 에너지를 관리하여 그것이 대형 동상들 속에 머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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