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물이 흘러가도록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57
바버러 쿠니 그림, 제인 욜런 글, 이상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바버러 쿠니의 그림도 매력적이지만 이 책을 집어들게 만든 건 글을 쓴 제인 욜런의 힘이 더 컸다. '부엉이 보름달'을 너무 감동 깊게 본 까닭으로.
이 책의 쿼빈 저수지에 얽힌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뉴잉글랜드에서 물이 가장 맑다고 소문난 곳이라 한다. 지금은 저수지가 되었지만, 한때 이곳은 스위프트 강이 흐르는 야트막한 골짜기였었다. 거기서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의 보금자리였던 곳. 그랬던 이곳이 1927년에서 1946년까지 물이 차 올라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묻어 있던 마을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주인공은 샐리 제인. 여섯 살 때의 기억에 의하면 아름다운 마을에서 살았더랬다.
오래된 돌집 방앗간과 마을회관과 교회를 지나 네거리까지 걸어가면 조지랑 낸시를 만날 수 있었다.
계절이 묻어나는 바버라 쿠니의 그림이 정겹다.
공원 묘지에서도 아이들은 얼마든지 즐겁게 놀 수 있었고 소풍도 즐길 수 있었다.
검은 돌판은 뜨거운 여름 햇살을 빨아들여 온종이 따스하기까지 했다.
우리네 옛 이야기 안에서 공동 묘지는 귀신이 출몰할 것 같은, 아니 출몰해야 마땅한 으시시한 분위기이건만, 문화의 차이가 확 드러나는 대목이다. 저기 보이는 흰 강아지는 너무 인형같다.^^
여름날 밤에 단풍나무 아래에 잠자리를 펴고 잠이 든 아이들. 개똥벌레가 하늘을 나는 밤 풍경과 아이들의 평범하면서 특별한 추억이 예쁘게 포개져 있다. 그러고 보니 개똥벌레는 책 속에서만 보고 실제로는 본 적이 없다. 그런 시골 풍경에 어울리는 예쁜 추억이 없는 탓이다. 개똥벌레 노래는 참 좋아하는데... ^^
그런데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이 마을에 변화가 생겼다. 100km나 떨어진 보스턴 시에 물이 엄청나게 필요해서 이곳 골짜기의 물을 끌어간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물을 내어주는 대신 돈을, 새로운 집을 받기로 결정했다. 물을 내어주는 대신 더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맨 먼저 무덤을 옮겼다. 그렇지만 인디언 유골만큼은 그 자리에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인디언들은 그 신성한 땅에 그대로 누워 있게 놔 두는 것이 옳다고 여겼던 것이다.
물을 내주기로 결정한 마을 사람들 중에도 인디언의 후예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 역시 조상들의 무덤을 그 땅에서 옮기지 않았을 것만 같다. 그들에겐 그 자리가 어울리니까.
그리하여 댐과 둑이 만들어지고 마을은 물에 잠겼다. 실제 연도 상으로는 20년 동안에 걸쳐서 물이 채워진 듯하다.
쌀쌀맞은 이웃처럼 높이높이 언덕 절반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한다. 이 동화 속에서는 7년이란 세월 동안 강물이 마을을 삼켜갔다고 나온다.
세월이 흘러 여섯 살 꼬맹이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보트를 저어 쿼빈 저수지로 들어갔다.
아빠가 기억하는 마을의 곳곳을 아이는 뚜렷하게 기억해내지 못했다. 충분히 다 떠올리기에 그때 그녀는 너무 어렸고, 지금은 또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하지만 추억의 힘은 강한 법.
날이 어두워지자 별들이 나타났고, 물 위로 별빛이 비쳤다. 깜박깜박 개똥벌레가 빛나고, 별빛에 반짝이는 물을 떠 보는 샐리 제인.
영원히 잊혀졌던 것 같던 추억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책이 참 맑고 예쁘다. 물에 잠겨버린 마을, 마을을 포기했던 어른들, 그들이 찾아가려고 했던 다른 삶에 대해서 작가는 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건 독자들이 미뤄 짐작하고 상상할 뿐이다. 다만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도 여전히 마을을 추억하고 그 추억 속의 아름다운 흔적들을 되새기길 원한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그 안에는 이해와 성장의 폭이 있다. 제인 욜런답다. 그림도 잔잔하고 아련하게 마음에 찬다. 원제는 Letting Swift River Go인데 우리 말 어감이 참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