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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동성혼 이야기 - 방한림전 ㅣ 즐거운 지식 81
장시광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9세기(로 추정되는) 에 쓰여진 조선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중국 명나라. 북경 유하촌의 한 서생이 혼인 수십년 만에 자식을 보았는데 너무도 늠름한 딸이었다. 부부는 어렵게 얻은 딸 방관주를 남복을 입혀서 씩씩하게 키웠다. 부녀자들이 배우는 길쌈과 같은 것을 가르치지 않고 글공부를 열심히 하게 했는데 방관주 8세에 부모를 여의게 된다. 방관주는 입신양명하여 부모님께 효도하기로 결심하고, 문무를 함께 깨우친다. 전형적인 영웅소설 겸 무협소설을 연상시킨다. 12세에 장원급제하여 이름을 떨치고, 황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인사가 되어버린 방관주. 여전히 유모는 여자로서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방관주는 그럴 뜻이 없다.
한편, 병부상서 겸 태학사 서평후의 12번째 딸 영혜빙은 온갖 규제와 압박에 시달리는 여자의 삶을 거부하고자 한다. 모두가 사위로 점찍어 놓은 방관주와의 첫 대면에서 그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부부의 연을 가장하여 평생의 지기로 남고자 한다.
이 대목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남장 영웅은 많이 등장하곤 하지만, 그 남장 여인이 여인과 결혼해서 서로의 지기가 되어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방관주는 전쟁터에 나가 큰 공을 세워 또 다시 이름을 떨치고, 자식이 생길 수 없는 두 사람에게 자식의 연이 닿아 장가까지 보내어 손주까지 품에 안게 되니 도무지 부족할 게 없어보인다.
다만 영혜빙이 친정으로부터 압박을 받긴 했지만 지혜롭게 잘 넘긴다. 방관주는 여자의 몸으로 남자 행세를 하나 여성해방적 시각을 갖는 인물은 아니고 오히려 가부장적 시각이 더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그에 비해서 영혜빙은 방관주보다 더 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 자신이 결혼으로 인해 남자에게 귀속되는 것을 거부하느라 스스로 원해서 여자인 방관주와 결혼을 했고, 그 결혼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나가니 말이다.
작품 말미에 방관주는 하늘의 명을 듣는다. 그가 왜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하늘 속인 대가로 어떤 값을 치러야 하는지에 대한...
해제를 보니 이 책이 당시 사회의 통념을 많이 깨버리는 바, 나름의 안전장치로 삽입한 내용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동성혼 이야기라고 하길래 동성동본을 생각했는데, 나의 예상을 완벽히 뛰어넘은 이야기였다.
낯설어서 신선하고, 뜻밖에도 재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