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기쁨
아베 피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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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파울로 코엘료 류의 책들이 싫다고 했다. 이유는 '가르치려' 든다는 것이다. 그게 짜증난다고. 비록 친구가 읽은 파울로 코엘료의 책이 '연금술사' 뿐이고, 연금술사를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보긴 했지만, 어쨌든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에세이 류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과도 조금 통할지 모르겠다. 에세이의 글감들은 글쓴이 자신의 경험이고, 그의 깨달음이며 그의 감동이다. 그것이 책장을 뛰어넘어 시간과 공간을 건너서 독자에게도 비슷한 감동의 전달을 해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물론 많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려' 든다는 책도 그렇지 않을까. 그 사람의 깨달음에 동의하고, 감탄도 해내지만 그 가르침대로 살 자신이 없는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어휴... 하고 한숨부터 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이 그랬다고 말하는 것인가? 사실 어느 정도는 그랬다. 읽으며 감탄하고, 읽으며 부끄러워지고, 또 잔잔한 감동에 찌르르 전율도 느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충고하려 들지 말고 그저 침묵으로, 따뜻한 공감의 위로만 건넬 것을 거듭 강조하는 피에르 신부님의 가르침은 이 책을 읽는 불특정 다수에게 당신 같은 구도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지 않는다. 강조하지 않아도, 그분의 삶의 행적이 얼마나 숭고했는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객관적 사실들로도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이 책에는 피에르 신부님이라고만 적을 뿐, 본명은 전하지 않는다. 부유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19세에 재산을 모두 포기하고 수도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신부님.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고 전쟁 후에는 국회의원으로 6년간 일했으며, '엠마우스'라는 빈민구호 공동체를 만들어 평생을 집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시다가 지난 2007년에 96세의 나이로 소천하셨다.  

성경에는 한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했으나 가진 재산을 모두 나눠주고 따르라는 말에 힘없이 돌아간 사건이 소개된다. 피에르 신부님은 한 걸음 더 나가지 못한 그 청년의 반대 모습이 아닐까. 국회의원이 될 때의 결심은 제도적으로 더 큰 힘을 갖고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겠다는 목표 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자리에 있어보니 그게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다시 맨 몸으로 현장에 뛰어든 신부님. 어느 쪽만이 정답이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제도권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더 큰 힘으로 움직여줄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고,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어루만지며 고통을 나눠주는 사람도 필요할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혹은 정직한 방법으로, 그런 아름다운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는 게 기적처럼 보이는 오늘날로서는 막막한 도전이긴 하지만. 

꽤 옛날 분이시긴 하더라도 고리타분하지 않고, 또 고전적이신 분이면서도 합리성을 놓치지 않는 점도 신선했다.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참으로 운이 좋군요. 당신이 겪는 고통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두 가지 태도만이 바르다고 마음속 깊이 확신한다. 침묵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 그것이다. – 212쪽

 
   

이 구절에서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얘기가 잠시 언급된다. 그분을 위대한 성인으로 부르는 데에 결코 주저함이 없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바에 대해서는 물러섬이 없다. 그건 교황이라도 마찬가지다. 교회의 수장으로서 역사 속에서 교회가 저지른 인간적 잘못들에 대해서 사과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에이즈가 엄청나게 퍼진 아프리카에 가서는 '금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설파했을 때는 동의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교회가 취해야 할 행동의 방향, 복음의 진정한 의도, 희망과 소망의 차이를 말하는 피에르 신부님의 목소리는 결코 오버하지 않는 성숙하고 차분한 일관성을 보여준다. 그러한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더 깊은 신뢰와 의지하는 마음을 키우게 한다.  

   
 

 반드시 이민자들이 한 행위가 아닌, 불행에서 비롯된 범죄로 인해 살기 힘들어진 구역에 사는 일부 플아스인들의 분노를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못 가진 자들을 위해 프랑스 내에서는 물론이요 프랑스 국경 밖에서도 벌여야 할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연대의 노력만이 그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다. 불법을 저지른 처지에 놓여 있는 이민자들 전부를 국경으로 인도함으로써 그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건 환상이다. 세계화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보다 광범위한 차원의 부의 재분배를 생각하는 문화권을 새롭게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 190쪽

 
   

그가 보여주는 사랑과 봉사는 국경과 민족을 초월하고 구분하지 않는다. 비단 종교인들 뿐아니라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인류애를 보여줘야 하는 당위성, 그로 인해 얻을 문제의 해결을 얘기한다. 그것이 프랑스를 넘어, 또 시간을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고대로 적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당신의 삶이 보여준 지극히 성자스러운 행보는 그의 직분에서, 자리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추구하고 행해온 삶의 자취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일 게다. 같은 삶을 살 자신은 없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너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단순한 기쁨'이 되도록......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기를 바라며..... 

사르트르에게 '타인'이 지옥이라면
피에르 신부에게는 '타인 없는 나'야말로 지옥이다.
타인은 내 삶의 '단순한 기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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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7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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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7 23: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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