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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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겠지?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89쪽

남부 수단 현장에서 나는 하느님이 사람을 살리시는 것도, 죽게 내버려두시는 것도 보았다. 왜 어떤 아이는 살리고, 어떤 아이는 죽이셨을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신데 모두를 살려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두를 살려주는 건 정말 안 되는 일이었을까? 그걸 우리가 알 수는 없다.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나 구호요원으로서 알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하느님은 사람의 고통을 치유하라고 우리를 보내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어 그런 엄청난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만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함께 두려워하고,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할 수 있을 뿐이다. 가끔은 고통과 원망과 회의 앞에서 흔들릴지라도 그렇게만 할 수 있을 뿐이다.-132쪽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돈키호테>의 내용이다.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말이지만 나는 이것이 젊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 무모하리만치 크고 높은 꿈 그리고 거기에 온몸을 던져 불사르는 뜨거운 열정이 바로 젊음의 본질이자 특권이다. 이 젊음의 특권을 그냥 놓아버리겠다는 말인가, 여러분.-152쪽

그래서 말인데 나는 이따금 대한민국 전 국민이 '1년에 백 권 읽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곤 한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역시 책을 읽고 있는 옆 사람을 보고는 "이게 몇 권 째예요?"라고 묻고, 길에서 누군가 책을 들고 가면 사람들마다 "어, 저거 작년에 내가 열두 번째로 읽은 책인데", "올해 읽으려고 한 책인데", "내년 목록에 넣어야지" 하는 말들이 터져나옹는 상상.
......
9시 뉴스에는 "올해 첫 백 권 읽기 완독자가 나왔습니다. 충청북도 음성의 한 농부였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 전해 듣겠습니다." 이런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다. 백 권을 다 읽은 사람들이 지역마다 모여 갖가지 축제를 벌이고...... 정부 차원에서는 전국의 백 권 읽기를 달성한 사람을 강변 공원에 초대하여 국빈 대접을 하며 폭죽을 터트리고 축하해주는 행사를 벌일 것이다. 3년 이상 백 권 읽기를 달성한 사람은 세금도 깎아주고 직원 채용 때 보너스 포인트를 주면 어떨까.-164쪽

이 연습의 핵심은 이럴 때 돈이 많아 세 가지를 다 하면 좋을텐데, 돈이 없어 딱 한가지밖에 못해 분하고 초라하다라고 생각하지 말자는 거다. 대신 한정된 돈이지만 제일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다른 건 안 해도 상관없다고 마음먹으라는 말이다. 밥을 굶고 책을 사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사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밥먹는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나는 밥도 못 먹는다고 크게 한탄하지 않을 수 있다.-192쪽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성공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

//이런 성공이라면 나도 꼭 하고 싶다.-210쪽

내 기도가 응답되는 복도 받고 싶지만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 되는 복 또한 한껏 받고 싶다. 언감생심 복의 원천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복을 전달해주는 통로는 꼭 되고 싶다. 복이 들어와 쌓이는 '복의 종착지'가 아니라 들어와 쌓인 복이 골고루 나누어지는 '복의 환승역'이 되고 싶다. 그래서 하느님의 평화의 도구가 되고 싶다.-221쪽

쓰나미의 최대 피해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반다아체는 매우 보수적인 모슬렘 지역인데 긴급구호 초기에 우리 단체의 로고인 별 모양이 십자가처럼 보일 수도 있어 지역 주민들의 반감을 살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왔다. 월드비전 지도부는 망설이지 않고 월드비전 로고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건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며 태극 마크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만큼이나 이례적인 일로 우리 단체의 홍보와 모금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금과 홍보보다 재난 피해자들이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우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한 거다. -264쪽

내 생각에 글로벌 리더십 과정에서 제일 먼저 고려하고 일관되게 강조해야 할 핵심은 '세계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사람이 세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 세계를 이끈다는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
세계시민이란 세계를 내 무대라고, 세상 사람들을 공동 운명체이자 친구라고 여기며 세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세계시민 의식이 있는 사람이다.
-274쪽

나는 이런 세계시민 의식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라고 믿는다. 각 시대에는 저마다의 시대정신이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자주 독립이, 5,60년대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산업화가, 7,80년대에는 군부독재에서 벗어나려는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다면 21세기에는 세계시민 의식을 고취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 특히 우리 젊은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자 역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275쪽

나는 잘 알고 있다. 한국 사람들의 가슴에는 벌겋게 달궈진 고품질 인정이라는 불씨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단지 거기에 바람을 살살 불어넣었을 뿐이다. 작은 바람에도 선홍색으로 활활 타오르는 그 불꽃이 견딜 수 없이 뜨겁고 눈부시게 아름답기만 하다.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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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9-10-28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은가요? 최근 한비야씨 책에 데어서...;;; 이건 좀 망설여지는데 마노아님의 고견 플리즈~~

마노아 2009-10-28 00:25   좋아요 0 | URL
무릎팍 도사 볼 때보다 더 감동이에요. 보면서 왈칵 눈물이 많이 났어요.
베스트셀러라 후딱 읽고 팔 생각이었는데 소장하기로 마음 바꿨어요. 읽어보셔요~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