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어제의 계획은 조카들과 함께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오는 거였지만, 감기 기운으로 비실거리는 언니네 식구들의 컨디션으로 인해 나혼자 나들이로 바뀌었다.
조조로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가뿐하게 보고, 롯데리아 햄버거로 배를 채운 뒤 지하철을 탔다. 아무 의심 없이 '삼각지' 역에 내린 나는 어느 출구에도 국립중앙박물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아 당황했다. 여기가 아닌가? '신용산'역이었던가?
처음 용산에서 박물관이 개관했을 때 어무이가 홀로 산책 삼아 가셨다가 '신용산' 역에서 내려서 걷다걷다 나오지 않아 포기하고 돌아오셨던 일화가 기억난다. 그래서 거기서 한 정거장 차이라는 걸 기억해 내고 '삼각지'에서 내린 건데 어찌된 걸까.
지하철은 환승 할인이 안 되니 버스를 탔다. 그리고 신용산 역으로 가서 출구 번호를 살폈지만 역시나 나오지 않고...
지하철 타고 더 가야 하나 싶어서 다시 지하철을 탔다. 이럴수가! 이촌(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써 있는 게 아닌가!
아, 충무로역에서 지하철 탄 내가 박물관까지 세차례나 운송 수단을 바꿔서 도착할 줄이야....ㅜ.ㅜ
10월 초에도 한 차례 다녀왔지만 그때는 자가용으로 갔고, 워낙 길치인 나는 게다가 목적지를 잘 확인하지 않는 나쁜 습관까지 있다. 그리고 늘 헤매고, 그러려니 하고...;;;;;
몽유도원도 전시 당시 두세 시간씩 기다리던 게 기본이었던 걸 생각하면서, 주말이니까 역시 줄이 길 거라고 예상하고 기다리면서 읽을 책을 골랐다.
바람구두님 책을 구입하고 아직도 못 읽은 게 생각나서 차분하게 읽기 좋다고 여기며 한 권 고르고, 미술관 가는데 이 책이 딱이야! 하며 키티님께 중고로 구입한 책을 고르고, 9월에 사서 아직 랩핑도 뜯지 않은 세븐시즈 14권을 가방에 채워서 간 나였다. 지하철 안에서 세븐시즈를 다 못 읽고 내렸는데, 박물관에 도착해 보니 줄이 한 개도, 단 한 줄도 없는 거다.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줄 서서 들어갈 수준은 아니었다. 아, 갑자기 어깨가 뻐근해지면서 어찌나 가방이 무겁게 느껴지던지...ㅜ.ㅜ
상설 전시관은 지난 번에 갔으므로 특별 전시관만 갔다. 몽유도원도와 천마도는 복제품이 대신 전시되어 있었다. 예상은 한 거지만 그래도 좀 섭섭했다.
10월 초 계획은 김훈의 강산무진(단편)을 한 번 더 읽고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보리라...했지만, 책은 다시 펼쳐보지 못했고, 그래도 그림은 반갑기 그지 없었다.
(오주석 샘의 강산무진도는 아직 구입 못함...)
실제 그림은 가로 폭이 8.56미터.
가로로 길다. 몽유도원도는 그림보다 옆으로 실은 시 때문에 길었지만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 국립중앙박물관이었는데, 특별전시관에서 전시된 것을 보니 평소에는 잘 개방하지 않나 보다. 김훈 작가가 강산무진을 쓸 때는 어땠나 모르겠다. (책 찾아보기는 좀 귀찮고...;;)
비단에 그린 그림은 500년을 가고, 한지에 그린 그림은 천 년을 간다고 하니, 놀라운 생명력이다.
얼마 전에 발견된 미륵사지 석탑 사리구와 사리봉안기도 인상적이었다. 사리가 담겨 있던 유리는 깨졌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나? 암튼 전시장에는 없었다. 같이 발견된 기록에 따르면 백제 무왕의 왕비를 사택적덕의 딸 사택공주로 밝히고 있는데 이것 때문에 '선화공주' 이야기가 시끄러운가 보다. 유물 발견 전에도 당시 백제와 신라 사이를 생각할 때 신라 공주가 백제에 와서 공주가 되는 게 말이 되냐는 건데 그 말도 설득력이 있고, 사택공주는 '계비'일 것이다... 라는 가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 문제는 좀 더 연구에 연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밖에 금년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도 보고, 지난 번에 왔을 때 놓쳤던 수월관음도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전시실 안은 어둡고, 유물도 바래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오히려 건물 밖에 나갔을 때 안내 포스터에서 화려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이직의 부인과 이직의 나이대를 달리한 초상화, 그리고 아들 이익정의 초상화도 흥미로웠다. 정말 같은 화가가 그린 것은 아닐까? (아님 말고~)
------------------------------- 그리고 추가 사진 ---------------------------------
나오는 길에 벽면을 찍었다. 한복이 너무 고와서. 뒷쪽에 계시던 어느 관람객이 이영애쇼라고 하던데, 이영애 한복 홈페이지에 가보아도 같은 옷은 보이지 않았다. 암튼, 너무 고와서 치마만 다시 찍어보았지만, 핸드폰 카메라가 그럼 그렇지....;;;;(게다가 너무 어둡고!)
요 사진은 추석 직전에 갔을 때 상설전시관 입구에서 찍은 거다. 운치 있는 그림을 날짜가 가려버리는구나....
이건 그때 당시 찍은 하늘과 구름 사진. 어제는 카메라도 잊고 갔다능...;;;
보름달 하루 전의 사진이다. 정작 보름날엔 달이 안 보여서 보지도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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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전시회도 갔다 오고, 아주 충만한 시간.
그러나 책은 다 싸들고 돌아와야 했다는 슬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