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 그림책 보물창고 13
모디캐이 저스타인 지음, 천미나 옮김 / 보물창고 / 2008년 4월
절판


찰스 아이브스는 귀를 활짝 연 채 태어났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으로 들은 소리는 아마 코네티컷 주 댄버리 마을에 찰스의 탄생을 알리는 아버지의 트럼펫 소리였을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앞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혹 소리도 바로 듣지는 못하는 것일까?
그림 속 아이의 표정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아버지의 트럼펫 소리가 온 방안을 가득 메우고, 그 소리의 여운을 아이도 알아차리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 찰리는 아기 침대에서부터 온갖 소리를 몸으로 체득했다. 엄마의 긴 드레스 자락에서 사라락 소리가 났고, 큰 시계 소리와 작은 시계 소리를 들었고, 마차 소리와 말발굽 소리도 들었다. 개 짖는 소리, 귀뚜라미 소리, 교회의 종소리까지.
뿐인가? 아버지가 트럼펫 부는 소리, 피아노 치는 소리, 바이올린 켜는 소리도 들었다.
아버지는 음악 선생님이자 마을 관악대의 단장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음악과 온갖 소리들을 좋아했고, 심지어 소음까지도 좋아했다. 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에는 온갖 소리들이 그림으로 화면을 꽉 채우며 장악하고 있다. 그림만 보고 있어도 소리가 그림 밖으로 뚫고 나올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우리 말의 의성어에 해당하는 영어식 표현이 그림 속에 잔뜩 담겨 있다. 화면이 너무 꽉 차서 답답할 정도로. 모디캐이 저스타인의 그림에 어울리는 기법이기도 하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작가가 얼마나 신이 났을지 상상해보는 건 어렵지 않다.
이 집안에서는 말들도 닭들도 오리들도 이 시끄러운 소음을 즐기면서 지내지 않을까?
저리 행복한 얼굴로 연주를 하는데 불협화음조차도 아름답고 청량하게 들리지 않을까 싶다.

빗속에서 천둥 소리를 듣고는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와서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는 아버지.
폭풍 속의 종소리가 어우러지는 그 화음을 잡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엉뚱하면서 괴짜스러운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버지만큼 괴짜가 된 찰리.
그들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소리들, 소음들, 음악들.
찰리는 드럼을 배웠고, 트럼펫과 피아노도 배웠다.

어느 마을의 축제 때, 아버지는 두 관악대를 서로 반대쪽으로 행진시켰다. 각각 다른 곡을 연주하면서 말이다. 과연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했던 것을 바로 실험으로, 실행으로 옮겨보신 아버지.
그 굉장한 소음을 찰리와 아버지는 즐길 줄 알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재밌어 했다.
지켜보는 관중들은 아마 놀랐을 것이다. 당황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시끄럽다고 역정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중에선 분명 이들 부자처럼 그 대단한 소음을, 소음이 만들어내는 화음의 즐거움에 몸을 맡겼을지도 모른다.

찰리는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고 곡을 쓰기 시작했다. 가곡과 춤곡, 오르간 연주곡을 썼다.
찰리가 만든 음악의 가치는 아버지만이 알아주셨다.
찰리는 흥겨운 행진곡을 썼다. 죽은 애완동물에게 바치는 슬픈 행진곡도 썼다.
그렇게 열심히 작곡을 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음악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이른 아침에 울린 전화벨 소리.
찰리는 위대한 침묵의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 결혼에 이른 찰리. 아가씨의 이름은 하모니였다.
찰리의 연인에게 꼭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크게 성공한 찰리. 돈 때문에 음악을 만들지 않아도 되었던 찰리는 더 자유롭고, 더 독특한, 놀라운 곡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찰리와 하모니가 입양한 어린 딸 에디스도 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의 음악을 좋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찰리의 음악을 들을 줄 몰랐다.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시끄러운 소음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호기심에 들어보는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보시라. 연주하는 찰리와 그 옆의 하모니, 그리고 에디스까지. 얼마나 행복한 표정들인가. 그들의 천국이고, 천상의 하모니다.

찰리의 음악은 오래도록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곡을 연주하려고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고 번번히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의 진심이 우주에 닿았던 것일까. 마침내 그의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찰리를 꼭 닮은 그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또 듣기 시작했다.
찰리는 퓰리처 상도 받았다. 그의 음악은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온 세상 만물과 산과 들, 이 모든 것을 한 곡의 음악에 담고 싶었던 찰리는 '우주 교향곡'이라는 미완성 작품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우주는 여전히 세상의 온통 다양한 소리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화음을 아직도 행복하게 즐길 것이다.

눈치 챘는가?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실존인물이다. 찰스 아이브스. 정말 저런 아버지 밑에서 저렇게 성장했던 찰스 아이브스. 그의 음악은 오랜 기다림 끝에 사람들의 귀를 열었다.
지식e 2권에 '아버지의 아들'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문장이 워낙 짧기 때문에 이 내용은 책보다는 영상으로 보는 편이 더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영상을 마치고 참고자료로 이 책이 소개된다. <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
정말, 찰리는 무엇을 들었을까? 그는 놀라운 소리를 발견했고, 만들어냈고, 그리고 그것들을 재현시켰다. 우리도 들을 수 있게.
"사람들은 익숙한 소리를 아름다운 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생각이야 말로 음악 발전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하지 않은 소음 속의 화음, 그 오묘한 조화. 우리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듣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